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제6화〉'가득 찬 것과 관계 된 비어 있음의 미학'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제6화〉'가득 찬 것과 관계 된 비어 있음의 미학'
‘무한의 은유’이자 한 편의 시(詩)이고, 예술적 보편성을 집약한 철학
  • 입력 : 2020. 05.12(화) 13:05
  • 편집에디터

김유섭_fundamental_2019

요즘 전 세계적으로 미술관 및 박물관에서는 랜선으로 만나는 온라인 플랫폼 전시회와 경매 사이트가 인기를 끌고 있다.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명화와 작가들이 재조명 되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문화예술 소식들이 쉽고 빠르게 전달되어 지고 있다. 누군가 '우리는 이제 미술관이나 공연장에 갈 일이 더 이상 없어지게 되는 것은 아닌가?' 라고 묻는다. 분명 이에 장단점은 있겠으나 온라인을 타고 모바일 또는 컴퓨터 모니터로 전달되는 원작의 감정, 에너지가 얼마만큼 우리를 감동시켜 줄 수 있을까? 라는 의심을 갖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여섯 번째 큐레이터 노트는 원초적인 예술의 이미지와 작품들이 눈이 아닌 마음을 통해 느껴지는 우리의 감정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하얀 캔버스에 점 하나, 점들이 모인 점과 점의 선, 씨앗으로 시작되는 사진이야기, 무(無)에서 유(有)로 표현되어지는 작품 속 간결한 이미지들은 우리 삶 속의 넉넉함을 넘어 넘쳐나는 것들을 조금은 간결하고 맑게 위로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나라 현대미술 작가로 시점을 좁혀 서세옥, 이우환, 김유섭, 라인석 작가들이다. 이 4명의 작가들은 글에서 소개 되는 작품 외에도 국내외 다양한 활동과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그 중 '점의 이미지와 원초적 예술 형상과 비움의 미학'에 주목한 대표적인 작품들을 소개한다.

한국 화단의 대표 거장으로, '선(線)과 점(點)을 통해 단순하면서도 다채롭게 인간을 표현하는 세계적 작가' 산정(山丁) 서세옥 작가는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국무총리상 수상과 함께 등단해 반세기 이상 한국화단을 이끌어 왔다. 그가 등단했던 1949년은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고 일 년이 지난 시기로 일본에서 벗어나

우리 고유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하는 과제를 끌어안고 있었다. 이 시기 한국 화단은 전통을 회복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문화를 수용해야 했고 60년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의 작업을 통해 그 과제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제시해 왔다.

그는 "그림은 무극(無極)의 세계"라고 말한다. 작가의 작업은 "전통 화단에서의 왜색청산(倭色淸算)과 문인화의 수묵사상을 바탕으로 독자적 현대화를 이루어낸 것"이었다고 근현대미술사에 평가되고 있다. 대표적인 1962년 <점의 변주> 작품은 독창적인 필묵의 선들이 보여 줄 수 있는 세계를 공간성까지 염두에 둔 듯 흘림과 삐침, 농담의 변화로 필묵의 조화를 뛰어나게 구사하고 있다. 점의 변주 작품은 그 다음 작업을 위한 다양한 실험적 성격을 띄고 있으며 변모한 과정 속 이례적인 작품으로 당시 미술계의 파동을 던져 주었다.

이후 이우환 작가가 표현 한 점, 선이 담긴 작품의 등장은 결이 다른 비움의 미학들을 쏟아냈다. <점으로부터 From Point>, <대화 Dialogue> 등 1970년대 대표적인 작품들은 무(無) 또는 무한(Infinity)으로 향한 작업이며 구도자가 고독한 수행과정을 통해 진리에 다다르려 하듯이 극도로 조형요소를 절제하고 자신의 예술적 규율을 엄격하게 따름으로써 무한으로 확장되는 감정 이상의 무언가를 불러일으키려 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이 '무한의 은유'이자 한 편의 시(詩)이고, 예술적 보편성을 집약한 철학적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그림을 향한 시선은 눈이 아닌 마음에 두어야 한다고 하였다. 눈이 아닌 마음에 두는 그림이란 표현은 지금까지도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Emptiness is indeed, the central issue in my work. What interests me more precisely is a certain kind of emptiness, emptiness placed in relation to fullness."

"비어 있음은 정말이지, 내 작품에서 중요한 문제이다. 더 엄밀히 말해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가득 찬 것과 관계된 비어 있음이다."

- 이우환 화백 "점으로부터(From Point)" 인터뷰 중

회화의 본질을 탐구하는 김유섭 작가 <검은 그림> 작품은 시작 되어진 추상화에 자신의 정체성을 담아냈다. 예술의 큰 틀 안에서 수없이 쏟아지는 이슈와 개념의 홍수, 치열한 경쟁과 선택된 몇몇 주류 미술의 흐름들 안에서 작가는 줄곧 회화의 본질을 더 깊이 추구했다. 그는 회화 본질에 대한 성찰과 의미를 되짚으며 회화가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실험들을 지속했고, 스스로의 그림에 대한 검증, 확신은 마침내 '검은 그림'으로 나타났다. '펀더멘탈(fundamental)'은 '근본적인', '핵심적인'이라는 의미의 단어로 작품세계를 함축해 보여주고자 한다. 이에 대해 김유섭 작가는 "검은 그림 시리즈는 회화본질에 대한 성찰과 의미, 그리고 회화표현에 대한 다른 가능성들을 제기하는 시험이었다. 신작 '펀더멘탈(fundamental)'는 '검은 그림' 뒤에 회화적 원형을 이루어가는 영역에 관한 이야기"라고 인터뷰에서 전했다. 작가에게 또 다른 시작의 의미를 갖는 작품들은 시대적 시각을 담은 회화로써 더욱 원초적인 작품들로 끝없이 반복되는 사유와 실험들이 회화적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작품은 사진작가 라인석의 2017년 <씨앗으로부터> 작품이다. 이 작품은 수박씨를 찍은 사진을 현상하고 잉크가 마르기 전 문질러 잉크의 접촉과 함께 생긴 번짐을 기억하는 이미지를 보여 주고자 한다. 작가의 접촉과 행위는 본래 사진이 가지고 있었던 복제성과 원본성에 대한 근본적 존재와 대상을 기억을 가진 작품으로 인식시켜 재탄생 시키고 있다. 작가의 흔적이 더해져 사진의 복제성과 원본성에 촉각적 정동(情動) 현상이 함께 담겨진다. 이것은 디지털의 수치가 아닌 아날로그적인 흔적을 의미하며 사진의 이미지가 갖고 있는 정보의 체계가 작가가 의도한 터치를 통해 흩어지는 사진으로 출발하였지만 다른 사진, 혹은 회화적 사진으로 남는다.

소개했던 위 작품들은 '흑과 백' 그리고 '여백의 미(美)'가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모두 다른 작가와 다양한 재료, 장르 그리고 다른 메시지들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사연이 많은 5월, 본질적인 '예술, 회귀의 본능'을 담은 예술 작품들을 통해서 복잡하고 무미건조한 일상 속 작은 소용돌이 같은 비움의 미학으로 번지는 '삶의 의미'를 느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라인석_씨앗으로부터_pigment based inkjet on paper_2017

서세옥_점의변주_1962년_@국립현대미술관

이우환_Dialogue_oil and mineral pigment on canvas_22 x 27.3cm_2010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