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가 존재를 이해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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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가 존재를 이해한다는 것
  • 입력 : 2020. 07.30(목) 14:49
  • 김은지 기자
안녕, 인공존재!. 북하우스 제공
안녕, 인공존재! | 배명훈 | 북하우스 | 1만3000원

배명훈 작가의 첫 소설집 '안녕! 인공존재'가 출간 10주년을 맞아 리커버 에디션으로 출간됐다. 저자는 10년 전 2000년대 가장 주목받을만한 한국 SF 작가의 출현을 알렸다.

책에는 저자 특유의 독창성과 재기 발랄함으로 창조된 여덟 편의 세계가 실렸다. 재미, 인간, 철학을 아우르며 배명훈 문학이라는 독보적인 카테고리의 출발점으로 자리 잡았던 '안녕, 인공존재!', 10년 만에 다시 나온 작품은 여전히 시의성 넘치고 능청스러우면서도 뭉클하다. 존재와 삶에 대한 근원적이고 철학적인 질문들 역시 단단하고 고요하게 흐르고 있다.

2010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수상작이기도 한 표제작 '안녕, 인공존재!'에서는 존재를 증명해 준다는 겉보기엔 돌멩이와 다름없는 제품 '인공존재'가 등장한다. 주인공 경수의 옛애인이자 현친구이며 이 상품의 개발자인 우정은 자살을 하면서 이 제품을 그에게 남긴다. 졸지에 기계가 존재함을 증명하게 된 경수. 저자는 경수와 인공존재를 통해 따뜻한 시선과 유머를 잃지 않으며, 존재가 존재를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되묻는다.

코로나19의 등장 이후 세계는 급진적인 AI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10년 전 쓰여진 이 소설은 지금에 와서도 우리에게 인공존재에 대한 인식과 두려움을 다시 한번 각성시킨다.

저자는 새로운 판본을 위해 작품집 전체를 꼼꼼히 다시 읽어나가며 세심해게 조탁해 보다 완전에 가까운 작품들로 다시 다듬어냈다. 더불어 중요한 변화 한 가지는 작품 수록 순서의 재배열이다. 초판의 수록 순서는 주류 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 이쪽과 저쪽이 너무 명확히 나뉘는 방식이라 할 수 있었는데, 이번 책을 통해 저자는 독자들이 그 문지방을 다양하게 넘나들면서 읽을 수 있도록 적절히 섞어냈다.

배명훈의 상상력은 서사의 참신성에만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해와 통찰의 밑받침이 된다. 우주로 뻗어나가는 작가의 상상력은 다시 존재와 본질의 탐구라는 본질로 수렴되는 셈이다.

저자는 그간 자신만의 상상력을 활용하면서 묵묵히 '존재'의 의미를 묻는 멀고 험한 길을 개척해왔다. 그는 가상의 세계 속의 일상적인 상황 또는 평범한 세계 속의 기이한 상황이라는 극적인 대조를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낯선 존재와 사건의 본질적인 메시지에 집중하게 한다. SF 장르에서 시작해 이제 주류 문학계의 인정을 받고 중견작가의 위치에 이른 저자의 지적이며 서정적인 작품세계는 '인공존재'처럼 새로움에 목마른 독자들의 마음속에 돌을 던진다.

김은지 기자 eunji.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