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향기·김강> 트로이 전쟁과 '빨간 원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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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향기·김강> 트로이 전쟁과 '빨간 원피스'
김강-호남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 입력 : 2020. 08.11(화) 13:19
  • 편집에디터
김강(호남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호메로스, 혹은 영어로 호머. 고대 그리스의 장편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의 저자이다. 전설은 그가 시각장애 음유시인이라고도 전한다. 그의 작품들은 유럽문학에서 가장 오래된 시로 쓰인 이야기책이며, 트로이 전쟁과 그 후일담에 대한 역사적이며 신화적인 이해를 어울러서 제공한다.

누구나 한번쯤은 아킬레우스와 트로이 목마의 지략, 그리고 오디세우스의 험난했던 귀향에 대해 읽거나 들어봤을 것이다. 시대를 뒤흔든 영웅들의 도전적인 삶과 기상천외한 술수를 맛깔나게 엮은 작가의 입담 덕분에 고대 그리스에 관한 스토리 중에서는 단연코 압권이다.

호메로스는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에서 거의 20여년의 시공간을 다룬다. 작품의 플롯을 영화에 대입하자면, 전편 오리지널과 시퀄 후편에 해당한다. '일리아드'가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가 이끄는 그리스 연합군과 헥토르와 파리스가 주축인 트로이군 사이에 벌어진 10년간의 전쟁사라면, 속편에 해당하는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목마의 계략으로 승리한 오디세우스가 부하를 이끌고 이타카로 귀향하는 길에 신들의 방해로 무려 10년 동안 바다에서 방랑하는 모험담이다.

여기에는 감미로운 노래로 선원들을 유혹하는 세이렌, 오디세우스 일행을 가둬놓고 한명씩 잡아먹는 외눈박이 거인부족 키클로페스의 폴리페모스, 파이아케스에 도착한 오디세우스를 구출해 준 나우시카 공주,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구혼자들을 속이기 위해 매일 베를 짜고 다시 풀었던 정절부인 페넬로페, 아들 텔레마코스에게 아버지를 찾는 방법을 조언하는 멘토르 등이 등장한다. 이들은 현대 대중문화의 단골 게스트로도 부활중이다.

사실 트로이 전쟁은 신들의 전투다. 신들이 편을 가르고 다툼을 일으켰다. 문제의 발단은 거의 '여자'들이며, 사람을 죽이고 싸운 자들은 '남자'들이다.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 세 여신이 트로이의 둘째왕자 파리스에게 최고의 미녀여신을 뽑아달라는 심판을 맡긴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골랐고, 그 대가로 특별한 선물을 받는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헬레네의 사랑이었다. 비극은 늘 그렇듯 '과도'와 '불의'에서 잉태한다. 헬레네는 이미 그리스 왕 아가멤논의 동생이자 스파르타의 왕인 메넬라오스의 아내였다. 거기에 더해 경쟁에서 패한 여신 헤라와 아테나는 파리스와 트로이를 향한 복수를 획책한다.

파리스는 예언처럼 헬레네를 납치하고, 분노한 메넬라오스는 왕비를 되찾기 위해 각지의 장수들을 소집하여 트로이로 진격한다. 그러나 9년간의 전쟁에 별 진전이 없다. 총사령관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 사이에 트로이의 '여자문제'로 불화마저 생긴다. 노예소녀 크리세이스와 브리세이스를 서로 풀어주도록 요구했던 것이다.

대립의 결과는 참혹하다. 아킬레우스가 전투에서 빠지고 대신 출전한 절친 파트로클로스는 트로이 대장 헥토르 왕자에게 값싼 죽음을 당한다. 격노한 아킬레우스는 보복에 나서 헥토르를 잔인하게 살해하지만 파리스의 독화살이 어이없게도 그의 발뒤꿈치 아킬레스건에 박히어 최후를 맞는다. 오디세우스는 이에 트로이의 목마로 응징하고, 마침내 황금도시 트로이는 전멸한다.

트로이 전쟁의 비극은 비록 신들의 게임으로 비유될지언정, 남성중심의 서사에서 보자면, 여신들의 질투와 절세미녀의 부정이 얽힌, 여자로 인해 벌어진 재앙이다. 오디세우스를 제외한 거의 모든 남자영웅들은 전사하고, 고대사회는 신화 속에 파묻힌다. 여성의 무지와 오판이 국가와 세계를 파멸한다는 남성 쇼비니스트의 퇴행적 해석이다. 고대의 여신이 중세의 마녀로 변신하기 전 발칙하고도 허무맹랑한 남성주의 문학적 상상력이다.

얼마 전 여자 국회의원의 옷차림새가 세간의 입도마에 올랐다. 빨간 원피스를 입은 정의당 류호정 의원, 코리아 여성서사의 새 주인공이다. 온라인에서 누군가는 광기어린 막말마저 토했다. "술집 도우미"와 "새끼 마담." 그들에게 일상적인 성희롱의 지적질이 분명하다. 이는 대체 이념적 팬덤인가, 저열한 여성혐오인가, 아니면 프로이트의 구순기적 욕구불만인가!

벗겨진 머리보호와 신분용 패션을 위해 착용했던 고대 이집트의 가발은 그리스로마시대에 부유함의 표상이 되고, 르네상스에 이르러 전성기를 구가한다. 엘리자베스 1세의 "빨간 가발"과 루이 14세의 긴 머리 패션가발이 대표적 상징이었다. 이제는 엄숙하고 권위적인 영국의회의 가발과 모자도, 바리스타 변호사의 콧수염도 시절에 맞추어 제한적이다.

지금 우리사회는 "라떼"를 고집하는 '꼰대'보다 변화와 진보를 지향하는 '어른'의 연대가 절실하다. 맹신과 야만에서 벗어나 '멋진 신세계'를 내다본 올더스 헉슬리의 도발적 메시지를 되새겨본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