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중항쟁의 핵심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는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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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중항쟁의 핵심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는 여정
  • 입력 : 2021. 05.13(목) 15:58
  • 박상지 기자

지난 12일 오전 광주지역 초등학생들이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윤상원 열사 묘비글을 읽고 있다. 뉴시스

윤상원 평전

김상집 | 동녘 | 2만원

1980년 5월, 광주. 날짜와 지역 이름을 들으면 우리는 하나의 이름을 떠올린다. 아직 제대로 처벌받지도, 반성하지도, 사과하지도 않은 가해자. 계엄군, 탱크, 시민군, '임을 위한 행진곡'. 그리고 잘하면 이름 하나가 더 떠오를 수도 있다. 열사, 윤상원이다. 5·18 시민군 대변인으로 서른의 나이에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에 맞는 순간까지 앞의 이름과 싸운이다. 광주시에서는 그 행적을 기려 생가를 사적지로 세우려 하고, 그의 민주화운동 한 걸음 한 걸음은 광주시 지정 '오월길' 코스 안에 빠짐없이 담겼다.

윤상원의 짧은 삶은 며칠간의 5·18민중항쟁 그리고 이 항쟁의 토양이 된 사회현실과 운동 흐름 모두를 아우른다.

신간 '윤상원 평전'은 그 불꽃같았던 삶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5·18의 전체 모습과 그 뿌리에 닿게 해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물어야 한다. '5·18은 무엇인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 지역에서 이루어진 민주화운동이며, 대한민국 민주화 시위의 도화선이, 그리고 문민정권 수립의 핵심이 된 항쟁이다. 5·18의 핵심은 "광주를 비롯한 전남 전 지역의 무기고를 열어 군부 쿠데타에 항거한 전라 민중 무장봉기"(5쪽)였다는 것, 민중의 항쟁이었다는 것이다. 이 항쟁의 한복판에서 계엄군과 결사항전을 결의하고 이끌었던 민주 인사들은 1970년대에 이미 숱한 옥고를 치르면서 노동·농민·빈민·청년학생 운동을 이끌어온 이들이었다. 그러나 문민정부 들어 진상을 밝히고 재평가하기까지, 이 사건은 오랫동안 '불순분자들의 반동' '김대중의 사주를 받은 폭력 시위'로 왜곡됐다.

이 책은 이 물음에 답하는 여정이다. 그 온전한 답은 5·18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윤상원과 항전의 주역들이 1970년대부터 각 부문에서 어떠한 활동을 해왔는지, 이들의 노력으로 성장한 광주전남 지역의 운동 역량이 "어떻게 죽을 것이 뻔한 상황에서도 결사항전이라는 초인적 결단을 내릴 수 있었는지"(7쪽) 더듬어보아야만 찾을 수 있다. 저자인 김상집은 윤상원과 끝까지 함께 싸운 동지로서 윤상원을 둘러싼 기존의 논의를 넘어 5·18을 광주지역의 민주화운동 흐름 속에서 조망하고, 계엄군에 더해 투항파와도 맞서야 했던 결사항전파의 시각에서 항쟁의 긴박한 며칠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순간순간 승리했고 벌써 40년도 더 훌쩍 지났지만 5·18은 우리에게 끝난 일일 수 없고, 끝난 적도 없다. 당시 광주에서 공수와 계엄군을 동원해 시민들을 잔인하게 학살했던 사건의 책임자들, 특히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광주시민들에게 사과하거나 제대로 된 처벌을 받기는커녕 발포 명령을 내렸다는 사실마저 여지껏 부인하고 있다. 광주 지역에서 며칠간 벌어진 부정할 수 없는 사건조차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았을진대, 더욱이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새롭게 쌓아가고 바라고 추구하지 않으면 희미해질 수 있는 체제라는 것을 우리는 끊임없이 배운다. 정권의 변화에 따라 기본권은 더 많이 침해당했고, 차별과 혐오는 더욱 고삐 풀리고 무자비해졌다. 정부는 때로 주민들의 터전을 빼앗으려 하거나 노동자들을 부당하게 해고하는 자본가의 편에서 폭력을 행사했다. 이럴 때 약자들은 고립된다. 우리만이 아니다. 2021년 2월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에 대항해 민주주의를 되찾고자 하는 미얀마의 시민들도 폭력 속에 고립돼 있다. 어디에서도, 5·18은 끝나지 않았다. 이것이 지금 윤상원을 읽어야 하는, 5·18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