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싸움'에 20년 표류한 '민주유공자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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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일반
'진영싸움'에 20년 표류한 '민주유공자법'
운동권 특혜 시비 등 발목||'민주유공자' 법적지위 요원||대상자 축소 불구 야권 냉대
  • 입력 : 2022. 01.10(월) 17:40
  • 김해나 기자
지난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민주유공자법 제정 촉구 및 30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 선포식' 모습. 뉴시스
박종철·이한열 열사 등 한국 민주화운동 희생자를 보훈대상으로 지정하는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민주유공자법)이 20년 넘게 국회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은 그동안 일회성 보상과 명예회복 조치만 이뤄졌을 뿐 법제화를 통한 '민주유공자'라는 법적 지위는 얻지 못했다.

정치권의 '운동권 특혜' 논란에 휩싸이면서 민주열사와 유족들에게는 명예회복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발의·폐기 이어져

10일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등에 따르면, 민주유공자법은 20여년 전인 1998년 제15대 국회부터 10차례 넘게 발의됐지만 계속해서 폐기됐다.

민주유공자법은 1960년부터 1990년대 말까지 민주화운동 참가자를 민주유공자로 인정하고 교육·취업·의료 등을 지원하는 법안이다.

1960년 4·19혁명,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이들 가운데 각각 862명, 4400여명은 '국가유공자'와 '민주유공자'로 법적 지위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1987년 6월 항쟁 등 이외 다른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은 '민주화운동 관련자'로만 분류돼 명예회복 조치와 일회성 보상만 받았다.

이들에 대한 입법 여부는 현 정부에서도 야당의 '운동권 특혜' 비판에 막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며 진영 싸움의 벽을 넘지 못했다는 평가다.

●계속된 '특혜 지적'

유공자의 인정 범위가 넓다는 지적에 유가협 측은 1960~1990년대 민주화운동 참가자 중 사망자와 장해 등급이 부여된 부상자 등 800여명이라도 민주유공자로 예우하자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은 앞서 지난 2020년 9월23일 우원식 의원이 대표 발의한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포함됐다. 민주화운동 보상심의위에서 예우 대상을 사망, 행방불명, 상해자(장애 판정을 받은 자)로 한정한다고 했지만, 특혜 지적으로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또 지난해 3월26일 설훈 의원 외 72명이 민주화운동 관련 사망·부상자와 더불어 유죄 판결자도 포함하는'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을 발의했다. 야당은 이 역시 '셀프 특혜'라고 지적했고 설 의원은 같은 달 30일 법률안을 철회했다.

야당의 '셀프 특혜' 지적과 함께 '민주유공자법은 이른바 586세대(50대·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의 자녀에 대한 입학·취업 특혜다'는 지적도 제정을 향한 발을 묶었다.

장두영 유가협 사무국장은 "이 법안의 대상자는 장애등급이 부여된 부상자를 포함해 800명 수준으로 전체 유공자의 0.1% 수준"이라며 "20대 대학생일 때 사망한 이들에게 자식이 어디 있겠는가. 유일한 예우대상자인 희생자의 부모 역시 고령이거나 제대로 예우도 받지 못하고 사망한 분들이 많다"고 호소했다.

●유족 "바라는 것, 그저 명예회복"

장 사무국장은 "배은심 여사님의 빈소에 현 대통령과 대선 후보 등이 방문한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면서도 "단순히 돌아가셔서 '안타깝다', '비통하다'가 아닌 실질적인 법안 통과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유공자들은 '민주화운동 관련 사망자'로 분류돼 법적으로도 불분명한 위치에 있다. 법 제정은 이들을 떳떳한 대한민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유족들이 바라는 것은 특혜나 금전적 보상이 아닌 유공자들의 명예회복이다"고 강조했다.

현재 이한열 열사의 경우 민주유공자법이 통과된다 해도 유족(부모)이 사망했기 때문에 법이 제정된다 한들 아무런 혜택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남은 유가협 회원 역시 70대 후반에서 80대 초반이 대부분이다. 유가협 회원들이 관련 법안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하는 이유다.

우원식 의원실 관계자는 "야당의 지적 사항인 '자녀 혜택' 등은 맞지 않다. 민주유공자법이 통과된다고 해도 슬하에 자녀가 있는 유공자가 별로 없어 특혜를 받을 만한 자녀도 극소수다"며 "당내 분위기로 보면 법안을 통과시키고 싶지만 야당의 합의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보니 난감하다"고 말했다.

이어 "진영 내 논쟁이 심해서 단일화된 결론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유공자 자격 받으려고 운동을 했다'는 등의 폄하가 끊이질 않고 있는 것도 한몫한다"며 "유공자로 인정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주류 역사로 그들을 기억하고 인정하는 것인데 민주화운동에 대해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야당의 반대 이유에 깔려 있다"고 설명했다.

김해나 기자 min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