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되는 도시를 기억하는 방법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데스크칼럼
철거되는 도시를 기억하는 방법
김성수 정치부장
  • 입력 : 2022. 09.29(목) 13:48
  • 김성수 기자 sskim@jnilbo.com
김성수 부장
도심에서 버려진 낡은 집의 말로는 철거다. 철거가 이뤄지면 집은 먼지 속으로 사라진다. 낡은 집뿐이겠는가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마을공동체, 아이들의 놀이터였던 골목길, 마을 어귀에 있는 아름드리 나무까지 굴삭기의 굉음은 마을의 흔적을 지운다. 기록할 틈도 없이 말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70여 년 전 전재민(戰災民·전쟁으로 재난을 입은 국민)을 위해 지은 동구 학동 '백화(百和)마을'도 그러했고, 1983년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의 도움으로 정부가 최초로 시행한 지역개발 사업으로 조성한 광산구 신가동도 그랬다. 현재는 재개발 사업으로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광주에 있는 몇몇 근대문화유산은 일방적 소멸이라는 최후를 맞았다. 일부는 재개발에 휩쓸렸고, 일부는 보존 가치를 몰랐던 무지함으로 무너졌다. 광주의 역사는 이렇듯 허무한 이유로 사라지고 있다.

들불야학의 옛터이자 5·18민주화운동의 역사적 공간인 광천동 시민아파트는 재개발 구역에 포함돼 철거위기에 놓였다가 논의를 통해 '나동'을 보존하고 천주교 성당, 들불야학당을 복원하기로 하면서 일방적 소멸을 피했다. 그나마 위안거리다.

하지만 광주의 구도심의 소멸은 더욱 빨라지고 있다. 광주시에 따르면 현재 진행 중인 도시정비를 위해 재개발 19곳, 재건축 5곳이 있다. 이미 완료된 곳만 재개발 11곳, 재건축 3곳이다.

재개발과 재건축을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공동화되고 버려진 도심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한 자발적 소멸은 시의적절한 선택이다. 다만 옛 도심의 흔적을 지우기만 하는 재개발과 재건축만 본다면 결코 옳은 선택인지는 고민이 필요하다. 기억하고 보존하는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는 말이다.

국내 곳곳에는 소멸되는 도시의 흔적을 남기기 위한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다. 서울시의 청계천 문화관은 좋은 사례로 꼽힌다. 복개된 청계천에 자리한 문화관은 청계천의 과거, 복개, 복원의 과정이 담겨있다.

경남 창원시도 도심의 흔적 남기기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창원시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통해 연속성 있는 아카이브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보존이 활발하다. 독일(건축박물관), 프랑스(건축과 문화유적 박물관·20세기 건축기록물보관소), 이탈리아(21세기 국립예술박물관) 등을 통해 뒤안길로 사라진 옛 도시를 기록하고 있다.

광주시도 도시의 흔적을 기억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재개발 시 건축물 일부를 아카이브존으로 만들어 보존하거나 철거되더라도 실측이나 사진 자료는 필요하기에 재개발 현장의 기록화 사업은 아주 중요한 일로 꼽힌다.

기록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예를 들어 재개발 부지에 '메모리 존'을 설치하거나 더 나아가 광주 도심 전체를 아우르는 기록관을 설립하는 것도 좋은 사례다.

도시건축분야의 기록보존소 건립은 세계적 추세이다. 이는 학문발전 및 산업역량 강화를 넘어 정체성 적립과 문화수준 향상, 국제적 인지도 확보에 있어 중요한 전략적 의미를 가진다.

민간 주도인 재개발과 재건축은 물리적으로 막을 수 없고, 도시가 고르게, 균형 있게 발전하기 위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순리다. 다만 부수고 무너뜨려 결국 집을 투자 대상으로 삼는 행태가 재개발의 기능이라면 과감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최소한 재개발·재건축시 전수조사를 통해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을 찾는 것부터 우선돼야 한다.

재개발 구역의 사람들은 동네가 사라지는 허탈함을 가슴에 혹은 뼈에 묻고 마을을 떠나고 있다. 광주시가 적극 나서서 도심 실향민들에게 회색 콘크리트 아파트에 파묻힌 터전을 기억할 곳 하나 만들어준다면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은 없지 않을까.













김성수 기자 sskim@jnilbo.com seongsu.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