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서석대> 빈대의 출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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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전남일보]서석대> 빈대의 출몰
김성수 정치부장
  • 입력 : 2023. 10.26(목) 17:46
김성수 부장
스위스의 화학자인 폴 헤르만 뮐러(Paul Hermann Muller)는 194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뮐러가 만든 유기염소계 살충제인 DDT(다이클로로다이페닐트라이클로로에테인)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군인들의 생명을 구해준 공로가 인정됐다. 군인들을 죽음으로 내몬 말라리아와 발진열(발진티푸스)을 전파하는 빈대와 벼룩의 퇴치에 탁월한 효능을 발휘해서다.

빈대(bed bug)는 이(louse)·벼룩(flea)과 함께 인류에 가장 골칫거리였다. 빈대는 공룡이 살았던 중생대에 지구상에 처음 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류보다 훨씬 먼저 지구상에 등장했다. 박쥐를 비롯한 포유류·조류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빈대는 현재 세계적으로 75종(種)이 서식하고 있다. 인류가 지구에서 번성하자 빈대의 먹잇감(?)이 된 셈이다.

뮐러의 DDT가 개발되기 전에는 빈대 퇴치가 쉽지 않았다.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처럼 현실에서도 살충제 없이 빈대퇴치가 어려웠다. 빈대는 매트리스·가방·가구의 작은 틈새에 숨어서 살다가 날이 어두워지면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활동을 시작하는 몹시 성가신 해충이다. 집안에서 작은 빈대를 퇴치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만큼 빈대 퇴치에 DDT의 활약은 대단했다.

우리도 1970년대까지 빈대·이·벼룩 퇴치를 위해 많은 양의 DDT를 사용했다. 이후 우리나라에서 빈대가 사라진 지 오래다.

‘빈대 청정국’이나 다름없는 국내에 빈대가 출몰했다는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 대구의 대학교 기숙사를 비롯해 인천의 찜질방과 부천의 고시원 등에서 출몰했다는 게 방역당국이 설명이다.
 
방역당국은 대구의 기숙사에는 영국 국적의 학생이 머물렀고 인천의 찜질방도 외국인이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빈대가 여행객과 함께 해외에서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인류가 이 땅에서 완전하게 박멸했다고 믿었던 빈대의 출몰은 달갑지 않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가 가져온 악충에 반격으로 해석하고 있다.
 
빈대는 기온이 올라가면 활동이 활발하다는 점이 근거다. 3년 만에 코로나19에서 벗어났더니 이젠 빈대 걱정을 해야 할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