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헌영 소아과 의사가 곡성 옥과통합보건지소에서 어린이들을 진료하고 있다. 김양배 기자 |
고향사랑기부제로 소아과가 생긴 곡성 옥과통합보건지소가 활력을 찾고 있는 가운데 부모와 함께 온 어린이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김양배 기자 |
고향사랑기부제로 소아과가 생긴 곡성 옥과통합보건지소가 활력을 찾고 있는 가운데 병원을 찾은 한 어머니가 접수하고 있다. 김양배 기자 |
지난해 1월 도입된 고향사랑 지정기부가 전남지역에서 큰 빛을 발하고 있다. 지난 1960년 소아과 전문의 제도가 시작한 이래 단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소아과’를 무려 64년만에 곡성군에 선물한 것이다.
곡성군 행복정책관실 모든 직원이 발이 부르트도록 보건복지부를 찾아 허가를 위한 법령 해석을 해야 했고 의사도 구하기 쉽지 않았지만, 결국은 해냈다. 지정기부의 힘이었다.
곡성군은 지역 공공의료 공백의 문제와 이에 대한 해결책을 고향사랑기부제 지정기부 사업에서 찾았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곡성군 지정기부 1호 사업 ‘곡성에 소아과를 선물하세요’다. 사업비 8000만원을 목표로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지정기부 모금활동을 펼쳤고, 보건복지부와 행정협의 등 준비기간을 거쳐 8월27일 소아과 첫 진료를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 놀라운 선물은 어떤 영향을 발휘하고 있을까.
지난 10일 찾은 곡성군 옥과통합보건지소. 오전 9시가 되자 젊은 부모들이 하나둘 보건지소 문을 열고 들어왔다. 품에 안긴 아이들은 대부분 신생아를 막 벗어난 영유아들이었다. 이곳 옥과보건지소에 소아과가 개설된 것은 불과 2주. 그것도 일주일에 화, 금 이틀만 문을 열지만, 이곳을 찾은 부모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밝다.
보건지소에서 대기 중이던 한 부모는 “광주에서도 소아과를 가려면 오픈런을 해야 할 정도로 기다려야 하잖아요. 우리들은 더하죠. 곡성에서 광주까지 가는데 1시간 정도. 가서 기다리는데 또 몇시간. 광주 부모들은 미리 와서 번호표라도 받는데, 전남에 있는 우리들은 그러지도 못하거든요. 일단 아이 데리고 병원가면 하루가 날아가죠. 휴가 내지 않으면 엄두도 못내죠”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또 다른 부모도 거든다.
“아이들은 자주 아프잖아요. 또 며칠씩 가고. 그때마다 휴가를 낼 수는 없으니 문제죠. 여기 옥과에 사는 사람들 상당수가 금호타이어나 광주 인근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이거든요. 그러니 애가 아프면 아빠, 엄마도 속이 타죠. 가까운 보건지소에 의사 선생님이 와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이곳에서 진료를 봐주는 전문의는 광주 첨단메디케어의원에서 근무하는 양헌영 의사다. 양 전문의는 광산구의사회 총무이사도 맡고 있다.
양 전문의는 “곡성에 와보니, 정말 많은 부모들이 좋아했다.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짧다면 짧은 진료 시간임에도 평균 10여명 정도가 찾아온다”면서 “만약 여기가 문을 열지 않았다면 이곳의 많은 부모들은 광주나 순천, 순창까지 가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힘든 일이다. 소속된 병원에서도 진료를 봐야 하기 때문”이라면서도 “의사로서 사회적 책임이 있지 않나. 그래서 이곳에서 근무를 하기로 결정했다. 첨단메디케어의원 원장님이 선뜻 허락해주신 것도 한몫했다”고 말했다.
실제 양 전문의는 소정의 수당을 받고 진료에 임하지만, 그 수당은 정신치매진료환자 출장 수당인 34만원에 불과하다. 현직 소아과 전문의에게는 재능기부나 마찬가지인 금액이다.
곡성군 고향이음 TF의 김하나 팀장은 “양 전문의가 오기까지 3개월이 걸렸다. 그 기간동안 광주, 전남, 전북까지 소아과란 소아과는 다 돌아다니면서 의사를 섭외했지만 모두 실패했다”면서 “다행히 양 전문의가 온다고 했을때 너무 기뻐서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전국 최초의 일이라 모든게 어려웠다. 가장 힘든 것이 의사 출장 진료 금지였는데, 정말 고맙게도 보건복지부가 이번 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인정을 해줘서 할 수 있게 됐다”면서 “곡성을 시작으로 국회에서 관련 법령을 개정해 보다 많은 지역이 혜택을 받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곡성군의 ‘소아과 출장진료’는 고향사랑기부제 지정기부사업 모금을 통해 시행한 전국 최초의 모범사례이며, 인구소멸을 막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 중에서 지역 공공의료 분야(출장진료)의 해법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낮은 수당이나 보건복지부 허가 등의 제반 사항이 걸림돌이어서 개선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주민들의 호응은 뜨겁다.
김 팀장은 “향우들도 많이 기부해주시지만, 일반 기부도 많다”면서 “한 기부자는 ‘자기도 아이 키울때 소아과가 너무 멀어 그 마음 안다’면서 기부를 해주시기도 하고, 소아과에 쓰인 것을 확인한 기부자가 추가 기부를 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1차적으로 소아과를 여는데 성공한 곡성군은 곧바로 ‘곡성에 소아과를 선물하세요 시즌2’를 준비 중이다. 소아과 전문의를 채용해 언제든 진료 받을 수 있도록 2억5000만원을 목표로 7월 25일부터 고향사랑e음에서 모금을 시작했다.
이귀동 곡성군수 권한대행은 “지역 내 소아과 출장 진료를 시작으로 곡성지역 부모들이 마음놓고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앞으로도 다양한 정책들을 발굴, 시행할 예정”이라면서 “고향사랑기부제를 통해 소아과 시즌2(소아과 상주의사 고용), 소아과 시즌3(소아과 상주의사 육성)사업이 내실 있게 추진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노병하·곡성=김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