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세계문화도시에서 배운다 -스페인 빌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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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아시아 문화 허브로
2부 세계문화도시에서 배운다 -스페인 빌바오
세계적 건축가 동원 '미술관 신화' 창조
네르비온강변 중심 문화시설 조성
독특한 외관 부각…관광객들 쇄도
공업도시 → 문화도시 이미지 성공
  • 입력 : 2008. 11.12(수) 00:00
네르비온 강가에 조성된 구겐하임 미술관
 유럽문화수도 취재를 기획하면서 스페인 빌바오가 걱정이었다. 스코틀랜드와 영국도시의 중심 일정에서 스페인 빌바오의 동선을 확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런던에서 스페인 빌바오로 가는 교통수단은 유럽 국가를 이동하는 유레일 열차나 항공을 이용하는 것 뿐이었다. 그런데 유레일을 이용하면 런던서 빌바오까지 소요시간이 꼬박 하루가 걸리고, 항공으로는 2시간 30분정도 걸렸다. 경비를 생각했지만 항공을 택했다. 런던 쾨트힉 공항에서 일찍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빌바오에 도착하기 까지 빌바오의 명성만 생각했다. 단한가지였다. 유럽의 변방인 빌바오가 전세계인의 발길을 끌어들이는 것이 과연 뭘까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빌바오로 가는 길은 우리나라의 지리산을 가는 기분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 본 꾸불꾸불한 산 형세가 그래서인지 빌바오의 지형을 연상할 수 있었다. 이같은 기분은 빌바오 공항에 도착했을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외딴 지역에 덩그라니 자리잡은 공항에서는 영락없이 황량함이 묻어났다. 대신에 우중충한 영국 날씨하고 다르게 내리쬐는 햇살이 '태양의 나라' 스페인에 온 것임을 실감케 했다.
 
공항에서 20여 분 택시를 타고 도착한 빌바오 도심의 시가지 풍경은 잘 정돈된 도시적 분위기였다. 무엇보다 빌바오 도심의 시가지를 감싸고 도는 네르비온 강 주변이 인상적이었다. 깨끗한 물줄기를 따라 강 주변에 조성된 문화시설들이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이 일대에는 구겐하임미술관과 오스칼두나 국제회의장, 업무지구, 행위예술궁전, 쇼핑센터, 지하철 역 등이 함께 들어서 있다.

 무엇보다 20세기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구겐하임 미술관은 관광객들을 압도했다. 종이를 꼬깃꼬깃 접은 듯한 색다른 건물은 물고기 바늘처럼 표면에 붙어있는 수십만개의 티타늄 판들은 강물에 반사된 은은한 빛을 내뿜었다. 곳곳에 아트리움이나 채광을 위한 유리창이 보이기는 하나 메틸릭 플라워(금속재의 꽃)라는 별명처럼 세상 어느 건축물과도 닯지 않았다.

 특이한 외관을 자랑하는 이 미술관은 몇년전 개봉된 007 영화 '언리미티드'와 우리나라 모 자동차 회사 신차 광고의 배경으로 등장할 만큼 빌바오의 랜드마크다.
<그림1중앙>
 한마디로 깨끗한 강과 어울린 미술관을 비롯한 문화시설은 왜 빌바오인지를 새삼 느끼게 했다. 네르비온 강 가의 문화시설을 보면서 아시아 문화중심도시조성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광주천 주변에 대한 문화적 개발에 따른 친수공간의 필요성이 새삼 간절해졌다.

 사실 빌바오는 문화와는 거리먼 도시였다.

 빌바오는 15세기 이래 제철소와 철광석, 광산과 조선소가 있던 공업도시였다. 이러한 산업기반을 토대로 빌바오는 20세기까지 스페인에서 가장 역동적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 이후 상황이 변했다. 중공업의 쇠퇴로 부속산업과 서비스 체계도 연쇄적으로 붕괴됐다. 여기에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의 테러까지 겹쳤다. 스페인의 다른도시인 세비야가 만국박람회, 바르셀로나가 올림픽, 마드리드가 유럽문화도시의 해로 선정되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이같이 생존의 위기에 내몰린 빌바오는 산업기반이 유사한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문화정책을 모델로 삼았다.
<그림2중앙>
 글래스고는 산업혁명 이후 철강, 조선업을 중심으로 융성했으나 70년대 후반 이들 산업의 쇠퇴에 따른 도시침체를 문화정책으로 극복했다.

 빌바오시는 네르비온 강 변을 도시재생의 주요 포인트로 삼았다. 구도심인 네르비온 강만을 남겨두고 이 지역의 완전한 재개발이 목적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이 지역의 문화를 통한 장소 마케팅이었다. 이를 위해 세계적인 건축가와 설계사들을 동원했다.

 이러한 목표에 따라 네르비온 강 수변 지역인 아반도이바라 지역의 마스터플랜은 미국의 건축가 세자르 펠리가 수립했다. 이 계획의 틀속에서 구겐하임미술관과 1700석의 공연장을 오스칼두나 국제회의장이 이 일대에 들어섰다. 구겐하임 미술관과 오스칼두나 회의장은 문화를 기치로 내세운 도시의 랜드마크였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프로젝트를 실행하기 위해 1992년 12월 영국도시개발회사의 바스크판인 빌바오 리아 2000을 만들었다. 빌바오 '리아 2000'은 민간회사지만 공공자원을 사용하고 목적은 빌바오 메트로폴리탄 지역 내 일련의 도시재개발 사업을 시행했다. 한국으로 치면 토지개발공사격이다.

 여기에 시의회, 지역개발기관, 상업회의, 교육기관 등이 협력했다. 이러한 노력은 1991년 메트로 폴리탄 빌바오의 재활성 연합인 '빌바오 메트로 폴리 30'으로 구체화됐다.
<그림3중앙>
 문화를 통한 도심재생 전략은 빌바오를 세계속의 도시로 거듭나게 했다. 소장품보다 미술관 자체가 구경거리인 구겐하임미술관에는 지난 97년 개관이후 1년만에 130만명, 10년만에 1200만명이 다녀갔다. 한 해 관람객이 45만명 쯤 될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가면서 대박을 터뜨린 것. 통계에 의하면 구겐하임 미술관이 바스크 지역경제에 연간 1억6000만달러(1760억원)의 기여하고 있다. 더욱이 빌바오는 전세계 건축가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관광 분야의 관심있는 사람이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떠올랐다.

 또한 빌바오는 새롭고 매력적이고 혁신적인 도시이미지로 세계 기업인들의 자본 유치에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즉 도심의 멋진 경관 창출과 장소 마케팅이 빌바오를 문화도시와 21세기형 선진 서비스 도시로 변형시켰다.

 무엇보다 빌바오 시민들의 마음가짐의 변화를 꼽을 수 있다. 적지않은 비용을 투입해 지은 특색있는 문화시설들이 우중충한 잿빛 도시의 이미지를 바꾼 것은 물론 지역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자존심 회복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이나키 두쿠 구르투사가 빌바오 리아 2000 정책담당은 "빌바오의 15년전과 현재의 모습은 천양지차"라면서 "문화중심의 도시계획은 결국 빌바오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세계인의 발길을 끌어들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글ㆍ사진=이용규 기자 yglee@jnilbo.com


"지역민 도시 사랑이 성공 요인" - 이나키 두쿠 구르투사가 빌바오 리아 2000 정책담당
<그림4왼쪽>
빌바오의 도시계획에 있어 중점을 둔 것은 녹색지대 형성과 문화시설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이는 지역민만이 아닌 방문객들이 맑은 공기를 들어마시고 수준높은 문화환경을 느끼고 체험하도록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는 것이 큰 목적이 있었다. 이같은 원칙에 따라 빌바오의 도심은 네르비온 강만 남겨두고 모두 환골탈태한 셈이다.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구겐하임미술관 자리도 예전에는 목재공장이었다. 이것말고도 콘테이너 야적장은 사무실 빌딩, 주택 등으로 변화됐다. 지난 15년만에 말할 수 없을 만큼 도시 전체가 탈바꿈을 했다.

빌바오의 새로운 미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011년까지 구겐하임 미술관 뒤 주변에 탑이 설치될 예정이다. 이 탑은 바르셀로나 올림픽 경기장을 설계한 일본 출신의 유명 건축가 이사사키가 맡고 있다. 또 네르비온강가 주변에는 115m 규모의 건물이 아르헨니타 건축가에 의해 들어설 계획이다. 이 건축가는 말레이시아 마천루를 설계했다.

이같은 건축물은 주정부 소유의 땅이 많아 시설 투자가 쉽다. 이렇게 도심 재생작업에 있어 특징적인 도시 건축에 주력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재원 창출이 쉬운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상은 결과적으로 맞아 떨어졌다. 앞으로 지하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계획이다.

사실 초기 문화분야 투자에 있어 시민들의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문화시설에 투입할 재원을 상업시설 등에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빌바오의 문화정책의 큰 틀은 시장이 바꿔져도 정책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변함없는 문화정책을 추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뿐만 아니라 문화정책을 추진하면서 행정당국은 물론 시민들의 의견도 적극 반영되고 있다. 15년전과 현재 빌바오를 비교해보면 인구가 크게 늘지는 않았지만 사람이 살만한 도시로 인식되고 있는 점이다. 이것이 큰 소득이다.

문화도시의 성공은 지역민들이 자기가 살고 있는 도시를 사랑해야 하고 자부심이 있어야 한다. 이러기 위해선 행정기관, 제도, 시민단체 등의 하나된 정책 수립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용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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