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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칼럼
갈 길 먼 대한민국
거대한 민심의 흐름 살펴야
누구도 '안녕하지 못했던' 설날
  • 입력 : 2014. 02.06(목) 00:00

지난 설 연휴 찾았던 고향은 적막했다. 마음 속 고향은 늘 포근한 어머니 품 같건만, 눈앞에 펼쳐진 고향은 예전의 그 모습이 아니었다. 명절을 쇠러 온 사람들로 시끌벅적해야 할 동네는 썰렁했고 대목을 맞은 거리에도 병에 지치고 삶에 지친 노인들만 간혹 오갈 뿐이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조상의 산소를 찾는 성묘객들도 눈에 띄게 줄었다.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삶이 그 만큼 혹독해졌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올 설엔 화젯거리가 풍성했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앞으로 4년 간 고향의 미래를 책임질 6월 지방선거 출마자에 대해 나름의 기준들을 내놓으며 관심을 보였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평가도 '양념'으로 더했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신당이 갖는 파괴력에 대해서도 많은 얘기가 오갔다.

경제적인 어려움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2년차를 맞는 올해 주변의 많은 자영업자들은 설 경기가 아예 실종됐다며 울상을 지었다. 기업인들은 기업인대로 돈가뭄에 시달려야 했다며 그간의 말 못할 고충을 토로했다. 사회를 보는 눈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사람들이 교과서의 역사 왜곡 등으로 세대와 지역, 진보와 보수 간 편 가르기를 부추기는 현 정부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공공재인 철도와 의료ㆍ교육 등을 거대 자본에 개방하려 하는 정부 정책에 대해서도 분노했다. 미래의 주역인 청년들 또한 역대 최고의 실업률에 절망하는 모습이었다. 어딜 둘러봐도 '민심'은 안녕하지 못한 설날이었다.

하지만 정작 이런 민심을 다독여 줘야 할 정치인들에게 설날은 '선거운동'의 연장일 뿐이었다. 실제로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지난 달 29일부터 시작된 전국 민생투어 가운데 3일을 광주ㆍ전남에서 보내며 호남 민심 잡기에 주력했다.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신당과 새누리당도 청년층과의 접점을 늘리고 입법 성과 등을 홍보하는 포지티브 전략으로 민주당에 맞불을 놨다.

그렇다고 정치권이 명절 민심을 잡았을까. 서글프지만 대답은 부정적이다. 광주ㆍ전남을 세 번째 찾았다는 민주당은 야당으로서 존재감을 보여주고 국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 달라는 지역민의 바람은 뒤로 한 채 감성에만 호소하는 전략을 펼쳐 지역민심을 얻는데 실패했다. 새누리당도 광주-완도 간 고속도로와 호남선 KTX 사업 예산 확보 등 대선공약 실천 결과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나섰지만 정작 국민들의 삶과 직결되는 4대 중증질환 의료비 전액 보장과 0~5세 보육 국가 완전 책임, 반값 등록금 시행 공약 등에는 입을 다물어 진실성 없이 자기 자랑만 했다는 혹평을 들어야 했다. 후진국형 가축질병인 AI가 발병해도 속수무책이고 개인들의 정보가 대량으로 유출됐는데도 문제가 없다는 정부, 여수에서 발생한 기름유출 사고에 대해서도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다'거나 '정부와 무관하다'고 애써 외면하는 현 정부의 엉뚱한 상황 인식에 대한 질책의 목소리도 높다.

무엇보다 정치권이 민심의 거대한 흐름을 살피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실을 왜곡하고 상식과는 반대로 흘러가는 우리 사회의 맨얼굴을 바로 보지 못하고 열심히 일해도 가난할 수밖에 없는 잘못된 경제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은 탓이다. 왜 공공기관이 영업 이익으로 이자도 충당하지 못하는지, 과연 지금의 개혁으로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이 해소될 것인지에 대한 공부도 게을리했다. 왜 종교인들이 나서 정의를 부르짖는지, 평범한 직장인이 왜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르고 목숨을 끊는지, 촛불을 든 시민들은 왜 이 추위에도 계속 늘어나는 지에 대해서도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정치인들에게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지금 우리나라는 백척간두에 서 있다. 3대 세습을 이어가는 북한의 위협은 여전하고 일본과 중국 등 주변 열강들의 다툼도 치열하다. 거대 자본에 의한 시장 병탄도 눈앞에 다가왔다. 성장 동력을 잃은 경제는 몇몇 대기업에만 의존한 채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다. 자원마저 변변치 않는 손바닥만한 땅덩이에서 민심 따로 정부 따로 제 갈 길만 고집하기에는 한반도의 현실이 너무 급박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마따나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 갈 길 또한 아직 멀기만 하다.

이용환 논설위원 hwany@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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