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텅구리 배는 사라지고… 달이 지는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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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기획
멍텅구리 배는 사라지고… 달이 지는 섬
[영광 낙월도] 80년대 새우잡이 황금어장
태풍 '셀마'에 선원 27명 수장
정부, 조업 금지… 강제 폐선
새우ㆍ민어 등 수산물 풍부
바다낚시 하기에 안성맞춤
  • 입력 : 2014. 07.25(금) 00:00
낙월도는 수많은 이름으로 불려진다. 도회지 사람들은 낙월도를 사투리로 '나골도'라고도 불렀다. 예전에는 낙월도를 '진달리'라고 부르기도 했다. 진달리는 '진달이 섬'의 줄인 말로 '달이 지는 섬'이라는 뜻이다. 이는 영광 법성포나 염산 쪽에서 섬 위로 달이 지는 모습을 보면, 달이 바다에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섬 자체가 지는 달과 비슷하다고도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낙월도는 1980년대까지 새우잡이의 황금어장 터였고, 인근 신안군 임자도 전장포와 함께 전국 새우젓 생산량의 50%를 차지하였다. 어렵던 그 시절에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푸른 꿈을 안고 전국 각지에서 청년들이 몰려들어 이 작은 섬이 흥청거렸던 적도 있었다.

지금의 낙월도는 폐촌으로 변했지만 새우잡이가 전성기를 이루던 시절에는 영광 법성포와 맞먹는 상권이 형성된 적이 있었다.

낙월도라는 섬은 해양문화적 차원에서 가장 크게 연구 대상이 되는 특이한 섬이다. 이름 자체가 매우 시적이다. 달이 지는 곳 낙월도, 도회지 사람들은 낙월도를 사투리로 '나골도'라고 부른다. 낙월도는 예전에는 '진달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진달이 섬'이라는 예쁜 애칭을 가지게 된 것은 '달이 지는 섬'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낙월(落月)를 진다리(진달이)라 부르는 데는 이런 사연이 있다.

<그림1중앙>섬 이름에 대한 유래는 백제 멸망 시기로 백제가 나ㆍ당 연합군에 의해 운명이 다했을 무렵 어느 왕족이 배를 타고 바다로 피난하다가 항로를 잃고 헤매이는 중에 달이 하필이면 섬 뒤로 지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섬에 정착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면적 1.28㎢, 해안선 길이 11.2㎞의 낙월도는 영광 법성포에서는 22㎞, 목포와 70㎞, 관문인 영광군 항하도 포구는 20.5㎞, 떨어진 섬이다. 1973년도에 183가구, 1096명, 초등학교 260명이었다. 현재는 205가구 318명이 살고 있다.

낙월도는 서북쪽의 하낙월도와는 약 500m 정도의 좁은 수로를 끼고 간만의 때에 따라 붙었다 나뉘었다 한다. 썰물 때 1.2㎞ 정도의 모래바닥이 드러나면서 하나의 섬으로 변한다. 이때 상낙월도는 섬의 모습이 지네 형상을 띠었다가 하낙월도와 연결이 되면 흡사 초생달 모양이 된다. 그런데 예로부터 지네는 닭에게 발견되면 꼼짝없이 죽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주민들은 두 섬이 연결되는 것을 한사코 반대한 노인들의 성화 앞에 좌절되어 오다가 자동차가 다닐 정도의 연도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림2오른쪽>정부 명령 항로인 이곳은 하루 3번 출항하는데 첫배를 타고 낙월도로 향한다. 이곳에 도착하면 역시 표지석이 있다. '새우의 고장 상낙월도'. 역시 새우를 내세우고 있다. 마을의 이 골목 저 골목을 지나다 보면 시멘트 벽에 색이 바랜 상점 이름과 술집, 다방, 식당, 여인숙의 흔적도 찾을 수 있다. 가장 많을 때는 이곳에 10여 개의 다방과 술집들이 호황을 누릴 때가 있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 생채기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새우젓과 멍텅구리배 그리고 묵석

낙월도를 대표하는 3가지가 있다면 새우젓과 멍텅구리배와 묵석(수석)이다. 투박한 전통적인 한선을 개량한 배로 10∼17톤에 이르는 무동력선은 멍텅구리배라고 한다. 돛이나 노는 물론 엔진도 없어서 스스로는 움직이지 못하고 동력선이 바다 한가운데까지 견인해 가서 닻을 내려놓고 새우잡이를 하는 배다. 그래서 멍텅구리배(해선망어선) 라는 이름이 붙었다.

낙월도에서 잡히는 새우는 회백색을 띠며 윤기가 흐른다. 이를 염장한 5월의 오젓, 6월의 육젓은 뒷맛이 개운하고 담백하며 소화를 돕고 장을 튼튼하게 해준다. 또한 동절기에 잡는 동새우는 김장양념으로 사용되며 동새우로 담은 김치는 발효가 잘 되고 그맛이 감칠나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 '동젓'이라는 새우젓은 임금님께 올리는 진상품이었고, 일제 강점기에는 말린 새우가 군수품으로 징발을 당하기도 했다.

인신매매의 대명사

멍텅구리배는 부와 함께 인신매매로 통용되는 양면성이 있다. 새우잡이 배에는 노숙자나 발달장애아 혹은 인신매매로 온 사람들과 심지어는 죄짓고 몰래 섬에 들어온 사람들도 많았다. 지금도 우스갯소리로 '너 정신 잃으면 새우잡이 배에 팔려간다'라고 말하기도 했으니, 그 말이 바로 이곳 낙월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연 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멍텅구리 새우잡이 배는 1년이고 2년이고, 육지에 내리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많이 탄다. 말하자면 막장에 몰려 궁여지책으로 마지막으로 배에 오른다는 것이다. 조업이 힘들기로 유명한 이 새우잡이 배는 일반인들에게 '창살없는 감옥'이나 현대판 노예선으로 아주 혹독한 죽음의 배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멍텅구리 새우잡이 배 사건은 책과 영화로도 많이 알려졌다.

멍텅구리 배의 슬픈 사연

선장을 비롯하여 총 5명이 일사분란하게 물때에 따라 하루에 4번 그물을 넣고 빼는 일을 한다. 보통 멍텅구리배 한 척을 가지면 주민 100여 명이 먹고 산다고 할 정도로 부의 상징으로 통했다. 낙월도 사람들은 그들을 먹여 살렸던 전통 새우잡이 멍텅구리배가 위험한 배라고 알려진 것을 억울해 하였다. 1987년 7월 갑자기 불어닥친 셀마호 태풍으로 이 섬의 멍텅구리 배 6척이 파선하여 선원 27명이 수장을 당했다. 보통 알려지기는 멍텅구리배의 선원들은 배에 갇혀서 감옥살이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멍텅구리 배마다 작은 전마선이 있는데 잡은 고기의 신선도 때문에 하루에 네 차례씩 낙월도를 왕복한다. 셀마 태풍 때 큰 사고가 난 것은 일기예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었다. 멍텅구리배 주인들은 태풍이 비껴 간다고 해서 피신하지 않으면서 화를 입었다. 배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태풍이 온다면 다 피했지 어느 미친 사람이 죽을라고 배에 있었겠어. 그게 진짜로 사람들을 죽일 놈의 배라면 낙월도 여자들이 남편과 자식을 타라고 했을라고." 한마디로 재수가 없었다는게 어느 주민의 푸념이다. 낙월도 사람들은 그 때 멍텅구리배가 빤히 바라다보이는 거리에 있었지만 동력이 없어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에 속수무책이었다고 한다.

<그림3왼쪽>태풍 셀마 사고 이후의 변화

태풍 셀마가 휩쓸고 간 뒤에 낙월도엔 커다란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멍텅구리배의 안전문제 등을 들어 정부에서는 이 배의 조업을 금지시켰고, 1995년부터 조업기간과 어획량에 따라서 7000만원에서 1억 원에 이르는 보상을 받고 강제 폐선처리됐다. 멍텅구리배 다음으로 등장한 배는 새우잡이 닻배와 팔랑개비 배다. 닻배는 긴 자망을 이용해서 물때에 따라 새우를 잡고, 팔랑개비배는 멍텅구리배의 그물과 유사한 정치망을 새우가 많은 곳에 설치한 뒤 그물을 건져와 잡는다. 정부에서 선주에게 동력선으로 바꿀 수 있는 자금을 지원해 멍텅구리배는 하나둘씩 없어져 지금은 목포에 있는 해양 박물관에 1척이 전시되어 있을 뿐이다.

<그림4오른쪽>낙월도를 떠나면서

낙월도는 영광군의 62개의 섬중에 대표적인 섬이다. 62개 중에 11개 섬이 유인도이고 51개가 무인도이다. 예전에는 목포가 생활권으로 너무 멀고 교통이 최악으로 애로 사항이 많았던 곳이다. 낙월도는 영광과 생활권이 달라 이질감이 많았던 곳이다. 수백년 동안 행정만 영광이었지 몸과 마음은 떨어져 있었다. 1996년도에야 낙월도 관문인 항구가 목포항에서 영광 염산면 향하도로 바뀌면서 비로서 영광군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 영광은 감격했겠지만 정작 낙월도 사람들은 한동안 적응이 안되었을 것이다. 낙월도가 멍텅구리 배의 영광과 함께 수석인 묵석의 명산지 섬이었지만 이제 옛 영화에 불과하다. 인생 만사는 빛과 어둠이 있기 마련, 한가닥 빛은 교통이 파격적으로 좋아졌다는 것이다. 목포와 6시간 거리, 그것도 하루에 한 번, 이제는 1시간 20분짜리 정부의 명령 항로인 신해9호가 하루에 3번을 다닌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낙월도를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둘레 길이 만들어 지고, 초보단계이지만 각종 편익시설이 만들어지고 있다.

멍텅구리 배는 역사속으로 사라졌지만 그 뒤를 이어 닻자망 배들이 낙월도의 명성을 잇고 있다. 아직도 수산자원인 새우와 민어, 부서 등이 풍부하며 바다낚시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상낙월도 뒤편에는 갈마골 백사장이 2㎞에 이르고 주변에는 기암괴석이 즐비하다. 재개미 해수욕장은 자갈밭이 2㎞에 이르는 해안으로 형성되어 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하낙월도 해수욕장에서 여름 피서를 즐기면서 해상체험장을 할 수 있다. 물이 빠지면 갯벌에서 머드팩이 가능하며 또 풀등에 가서 맛조개를 잡는다. 이곳에서 잡히는 죽합(일명:대맛)은 타지의 것보다 크고 맛이 일품이다. 영광에는 수많은 포구들이 있지만 낙월도 만큼 선착장에 섬 특유의 바다냄새와 비린내가 나는 곳은 없을 것이다. 점점 사라져 가는 비린내를 그리워하면서 발걸음을 여객선이 들어오는 선창가로 향한다.

이재언 섬 전문 시민기자ㆍ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낙월도는

영광군 낙월면 상낙월리에 딸린 섬으로 면적 1.27㎢, 해안선 길이 11.2㎞, 인구 205가구 318명이다. 신안군 임자도에서 북쪽으로 6㎞ 지점에 있으며, 하낙월도와는 좁은 수로를 사이에 두고 방조제로 연결된다.

지명유래진달이섬, 반월도, 대낙월도, 진원도라는 이름으로 불렀는데 조선시대에는 '진월도(珍月島)'라 불리다가 1896년에 낙월도로 개칭됐다. 영광 법성포나 염산 쪽에서 섬 위로 달이 지는 모습을 보면, 달이 바다에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섬 자체가 지는 달과 비슷하다고도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낙월도 가는 길

영광 향화도 → 낙월도, 신해10호 1일 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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