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망대해 첫 출구… 해질녘 신비로운 '투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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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망망대해 첫 출구… 해질녘 신비로운 '투명산'
[섬이야기] 완도 생일도
  • 입력 : 2015. 02.06(금) 00:00
완도 생일도의 백운산은 세개의 산이 겹쳐져 앞산에 가려진 뒷산 능선의 윤곽이 선명하게 나타나는 신비한 현상 때문에 '투명산'으로 불린다.
생일면은 1896년 고종 33년 완도군이 생기되면서 설립됐지만, 1916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평일, 생일, 금당과 함께 금일면으로 불렸다. 그 후 1980년 금일면이 읍으로 승격하면서 1989년 4월 생일면으로 승격됐다. 처음에는 산일도, 산윤도라고 부르다가 주민들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 착해서 '갓 태어난 아이와 같다'고 하여 '생'과 '일'을 합해 생일도라고 불렀다는 설과 예로부터 바다에서 일어난 조난사고와 해적들의 횡포가 심해 '이름을 새로 짓고 태어나다'는 뜻에서 '날 생(生)'과 '날 일(日)'자를 붙여 '생일도'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 어쨌든 '새로 태어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섬이 생일도이다. 과연 이 섬은 해적들이 나타날 정도로 외해에 있으며 평일도 사이에서 망망대해로 빠져 나가는 첫 출구 역할을 한다.

신비한 '투명산'으로 입소문

이 섬 최고봉인 백운산(482.6m)은 면적이 작아 전체적으로 지형이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생일도의 첫 인상은 섬 중앙에 높다랗게 솟아있는 백운산이 이 섬의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 앞산에 가려진 뒷산 능선(稜線)이 투시돼 보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백운산은 세 개의 산이 1.5㎞의 거리를 두고 겹쳐 있지만 비슷한 높이의 두 봉우리가 마치 한 개의 산처럼 앞산 속으로 능선의 윤곽이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 이 신비한 광경은 백운산에서 바닷길로 4㎞ 가량 떨어진 평일도 동백리 선착장 부근에서 연중 볼 수 있다. 대낮에는 보이지 않고 궂은 날씨와 해질녘에 더욱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에 사는 한 주민은 "앞산에 가려 보이지 않아야 할 뒷산의 능선이 하나의 산처럼 투시돼 보여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면서 "실제 모습과 사진상의 모습이 똑같아 착시현상이라기 보다 신비한 자연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투명산은 최근 피서객들이 카메라에 담아 인터넷에 올려 착시현상이냐, 합성이냐는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생일도는 투명산과 괴물 공포로 공중파를 타서 유명해진 섬이다.

이곳에 오려면 강진 마량에서 연륙교로 이어진 고금도를 거쳐, 약산도와 연도된 약산대교를 지나서 약산 맨 남동쪽 끝인 당목에서 건너갈 수 있다. 예전에는 고흥반도 녹동에서도 올 수 있었지만 고금대교 개통 이후 90%가 약산의 당목항을 통해 들어온다. 시간과 요금이 절반 이하로 내려갔기 때문이다. 다리 건설이 얼마나 섬사람들의 생활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가 짐작을 할 수 있다.

'아름다운 어촌' 선정 금곡마을

이른 아침에 약산 당목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생일도 서성항에 닿았다. 서성항 대합실 바로 옆에는 도로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이곳은 좌우로 길이 이어진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금곡 해수욕장, 왼쪽으로는 면사무소와 용출항으로 이어진다. 서성항이 있는 마을이 서성리(西城里)다. 서성리는 1700년대 백운산 서쪽 꼭대기에 주민들이 도적(해적)을 막아내기 위해 성을 쌓고, 도적을 막아냈는데, 성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어 그렇게 불린다. 생일도에서 유일하게 갯벌이 있는 서성리 '개안'은 예전에 지주식 김 양식을 하고 활게(칠게), 바지락, 낚지 등의 반찬거리를 잡는 황금 갯벌이다. 특히 생일도의 섬 모양이 새와 같고 서성리가 새의 밥통 부근에 해당돼 주민이 다들 잘 살아 속칭 큰멀(큰 마을, 큰 동네)에 해당하는 서성리에 장흥 장평에서 황씨성을 가진 이가 처음 입도해 정착했다. 옛날부터 나루터가 있어 생일도의 관문 역할을 했던 곳으로 지금도 면사무소, 파출소, 수협 등 모든 공공기관이 위치해 있는 중심지다.

서성리에서 꼬불꼬불 해안길을 넘어가면 작은 포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금곡리로 금곡포구다. 면소재지가 있는 서성리의 정반대 쪽에 있는 마을이다. 금곡리는 길을 중심으로 위쪽(동쪽)에 있고 포구는 아래쪽(서쪽)에 위치해 있다. 금곡 마을은 아름다운 자연과 해산물이 풍부하고 모래 해수욕장이 있어 생일도가 자랑하는 마을이다. 해양수산부가 선정한 '아름다운 어촌' 100선에 선정된 금곡마을. 해수욕장과 골이 깊고 계단식 논이 일찍이 발달했다. 1978년 농사를 많이 지을 때는 140여 가구가 살았다. 과거 생일도 사람들은 전부 금곡에서 쌀을 사다가 먹을 정도였다. 이제는 세 집 정도가 농사를 짓고 있다. 바다 양식이 활성화되기 전에는 마을세가 가장 컸던 곳이다. 이제는 미역, 다시마, 톳, 전복, 멸치 같은 수산업으로 100% 바뀌었다. 금곡리 포구를 지나 마을에서 도로를 타고 꼬불꼬불 언덕을 넘어가면 생일도의 남쪽지점에 호수 같은 금곡 해수욕장이 있다. 길이 500m, 폭 50m 정도의 모래사장으로 수심은 1~1.5m에 이르는 아담하고 조용한 해변이다. 수심이 급경사를 이루지 않고 얕지만 썰물 때 개펄이 드러나지 않으며 서산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일상을 탈출하기에 좋은 일등 해수욕장이다. 해변의 모래 질이 너무 좋아 금모래라고 부른다. 이름대로 고운 금빛 모래로 작고 아담한 해수욕장이다. 해변가에는 동백나무와 솔숲이 병풍을 치고 있다.

<그림1중앙>
용이 승천했다는 용출리

이제 다시 왔던 해안길을 따라 남쪽으로 가면 해수욕장 반대편에 위치한 굴전리와 용출리에 닿는다. 굴전마을은 마을 앞 용량도 상봉에 용이 승천한 굴이 있어, '굴전'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굴전마을에는 '으슴바위'에 대한 전설이 있다. 마을 앞 어귀에 있는 바위인데 이 바위 밑의 굴에서 천년 묵은 구렁이가 살고 있다가 옥황상제의 명을 받아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이다. 바위 밑으로 1㎞가량 굴이 뚫어져있어 용량도까지 이어졌다고 하며, 옛날 선조들은 솔가지 불로 이 굴을 통과해 섬을 왕래했다고 전한다. 굴전마을을 지나면 바다에 두 개의 섬이 있다. 역시 무인도인데 앞의 것은 '목섬'이고 뒤의 것은 '낭도'다. 목섬 정상에는 70m의 굴이 해변과 연결되어 뚫려있는데 그 바위가 용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용이 나왔다고 해서 '용내이'라고 했다. 목섬은 나무가 울창해 나무꾼이 줄을 이었고, 주변에는 고기가 많을 뿐만 아니라 자연산 미역, 톳, 가사리, 천초 등 해조류가 풍부한 곳이다. 특히 인근 어장이 양식의 적지이기 때문에 19세기 초반에는 인근의 서성리와 섬을 둘러싼 분쟁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금은 목섬의 육지부는 용출리에서 땔감을 이용할 목적으로 30여 년 전에 서성리로부터 매입을 했지만 주변의 해조류가 부착하는 바위와 어장은 서성리 점유지이다.

굴전리 마을 바로 옆에 있는 용출리에 닿는다. 금곡 해수욕장과 용출항은 중간에 산 하나가 가로막고 있다. 그래서 생일도의 일주도로는 없지만 이 정도면 불편함이 없다. 이곳에는 약 400년 전 용 암수 한쌍이 살다가 황제의 명을 받아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으며 지금도 용량도엔 용이 승천한 흔적이 있다고 한다. 용량도라는 섬에 용이 살다가 하늘로 올라갔다 했는데 한 번 승천한 용은 돌아오지 않고 용의 자취는 마을 이름으로만 남았다 하여 이곳 마을 이름을 '용맹리'라고 불렀는데 최근에야 다시 '용출리'라 고쳐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 선조 때에 군마를 기르는 목장이 설치돼 양축하는 관리와 그 가족이 거주했다는 설이 있으나, 후손이 살지 않고 효종 때 파평 윤씨 일가가 나주에서 난을 피해 입향해 마을을 형성했다고 한다.

최고급 미역ㆍ다시마 생산지

금곡리에는 고운 모래 해수욕장, 용출리에는 몽돌밭 해수욕장이 있다. 갯돌밭에서도 파도에 부서지는 아름다운 소리는 내 마음을 넉넉하게 하였다. 너무나 한적하고 단절된 곳에 있어서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머지않아 보길도 예송리처럼 빛을 보는 날이 올 것을 예상하면서 맨발로 용출리 자갈밭을 거닐었다. 몽돌밭으로 된 해변을 따라 해안길을 걸어가면 해변에 밧줄을 연결해두었는데 사이사이마다 대나무나 긴 막대를 시옷자로 만들어 지렛대를 설치해두었다. 흔들리지 않게 중심에 무거운 돌을 묶어둔 것들이 대부분이다. 아마도 이 밧줄에 다시마나 미역을 말리는 모양이다. 용출리는 최고급 미역과 다시마 생산지로 유명하다. 광주의 신세계백화점에 생일도 다시마 코너가 있을 정도로 다시마의 섬이 생일도이다. 완도산 다시마 대부분이 평일도와 생일도 해역에서 양식해내는 것들이다. 이 두 섬에서 전국 생산량의 70%가 생산되며 품질 또한 최고다.

용출리 해안가를 가다보면 오른쪽에 서울수산이라는 수산물가공회사가 있다. 이 공장을 지나면 또 다른 포구가 있다. 오른쪽으로 시멘트로 된 높은 난간이 있는데 여기서 해안 끝을 바라보면 '금머리'가 나온다. 금머리 뒤 높은 봉우리가 해발 158.4m. 금머리를 건너면 '소용량도'라는 섬이다. 물론 지금은 연결되어 섬이 아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 있는 섬이 '용량도'다. 크기로 보면 서로 대소 구별이 안 되는 섬이다. 높이는 오히려 소용량도가 2m 더 높다. 소용량도의 정상에 70m의 굴이 해변으로 나있고 정상표면직경 50m, 둘레 80m의 구덩이 및 용형상의 바위가 있으며, 수목 군락지 및 수려한 경치를 자랑한다. 이 바위섬에 3년마다 배가 암초에 부딪혀 침몰하는 사고가 일어나곤 했는데 이를 막기 위해 매년 초 이 섬에서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이 바위섬 부근에 소머리를 바쳐 사고를 예방하고 있단다. 소용량도 포구는 세 개의 선양장으로 이뤄져 있는데 배들은 그런대로 제법 모여 있다. 이 포구를 지나면 끝자락에 용출리 선착장이 있다. 바로 완도항과 덕우도와 연결되는 용출항이다. '섬사랑 5호'의 기항지인데 황제도, 덕우도를 거처 완도항으로 오가는 배다. 여기서 완도까지 1시간 반 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용출리 주민들만 이용하고 다른 곳 주민들은 생일도 서성항을 통해 강진 마량으로 나간다.

섬 재산목록 1호 학서암

마지막으로 학서암이라는 절을 소개하고자 한다. 생일도의 중앙에 우뚝 솟은 백운산에는 300여 년의 장구한 역사를 안고 있는 이 섬의 유일한 문화재, 학서암이 자리 잡고 있다. 조선후기 육지 사람들이 섬과의 거리감을 극복하고 차츰 모여들어 마을을 이루고 살기 시작했을 때 이 생일도에도 사람들이 몰려 왔다. 그러나 바다는 여전히 위험이 많은 곳이었고 따라서 그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한 믿음이 필요했다. 학서암은 그런 믿음을 채워줄 공간의 하나로 1719년(숙종 45) 천관사(天冠寺)의 승려 화식(和湜)이 창건했다. 학서암은 생일도뿐만 아니라 평일도 주민들 모두가 이용하는 사찰이다. 두 개의 섬 중 평일도가 제일 크다. 그래서 경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점에서 생일도 역시 평일도에 기대고 있다. 그러나 불교만은 누가 뭐래도 생일도가 중심이다. 그것은 물론 학서암이 있기 때문이다. 학서암은 생일도가 주변 섬에 대하여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재산목록 1호쯤 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재언 섬 전문 시민기자ㆍ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그림2오른쪽>

생일도는

완도군 금일읍에 딸린 섬으로 면적 11.3㎢, 해안선 길이 23㎞, 백운산 높이 483m, 인구는 1010명(2014년)이다.

생일도 가는 길

1. 약산도 당목에서 은성호가 하루 7회

2. 완도항에서 섬사랑5호가 생일도 용출리에 1일 2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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