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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먹거리가 있는 '곡창(穀倉)' 전라도는 예술적 토양이 충분했다. 드넓은 들판과 아름다운 산하, 그리고 리아시스식 해안을 포함한 다도해의 비경을 배경으로 살아온 전라도 사람들은 예술적 깊이를 더하기에 충분했다.
왕조시대, 서울(한양)과 가장 먼 거리에 외로운 섬이 즐비한 전라도는 '귀양지'로 선택되기도 했지만, 이는 오히려 학문적 깊이와 함께 예술적 본성을 자극하는 촉매제가 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붓'은 그래서 전라도에서 더욱 힘있게 휘둘러졌다.
의재 허백련, 남농 허건 대에 이르러 그 꽃을 활짝 피운 '남도의 붓'은 한국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국화 화맥을 형성하며 성장했고, 호남 한국화 화단의 양대산맥으로 자리를 잡았다.
사람이 이동하면 문화가 함께 움직이는 것은 당연지사. 의재 허백련의 광주와 남농 허건의 목포를 중심으로 그 뿌리를 내린 남도의 한국화는 호남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1960대부터 본격적인 전국으로 확산되기 시작한다. 의재와 남농의 기라성 같은 제자들이 상경, 서울 화단에서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고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하면서 남종화로 대변되는 남도의 한국화가 전국에 전파된다. 호남의 한국화 맥이 전국으로 어떻게 확산되고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알아본다.
남도 한국화의 맥은 진도 운림산방에서 비롯된다. 소치-미산으로 이어져 내려온 남도의 한국화는 의재ㆍ남농이 이어받으면서 남도의 화맥으로 확실한 뿌리를 내린다. 광주에 안착한 의재와 목포에 자리를 튼 남농은 작품으로서 뿐만 아니라 많은 제자를 길러내면서 제자들의 활동범위가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으로 넓혀졌다.
수도권 진출의 1세대는 의재의 제자인 옥산 김옥진(89)과 남농의 제자인 도촌 신영복(작고ㆍ이상 진도 출신)이다. 이들은 1950년대말 서울로 상경, 같은 집에서 기거하며 본격적으로 서울화단에 진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재의 대표적인 1세대 제자인 옥산 김옥진은 서울에 정착한 뒤 제자들을 양성, 의재의 화맥을 형성한다. 옥산은 1964~1968년까지 홍익대학교 강사로 활동하며 옥전 강지주, 화정 이강술(이상은 의재로부터 배우기도 함), 곡천 이정신 등 서울 화단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가들을 길러낸다. 실제로 옥전ㆍ화정ㆍ곡천은 서울 인사동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더 많은 제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또 국전 등을 통해 호남 한국화의 진면목을 보여준 희재 문장호와 금봉 박행보도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희재는 제자인 지암 김대원(전 조선대 학장)을 통해 제자를 길러내 서울 등 전국에 영향을 미쳤고, 문인화의 대가인 금봉 박행보는 김영삼, 이상태 등의 제자들을 길러내 한국의 문인화의 대가로 성장시켰다. 이밖에 우계 오우선 등도 의재의 제자로 서울에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남농의 1대 제자로 옥산과 비슷한 시기에 상경한 도촌 신영복은 산수화를 중심으로 남농의 뒤를 잇는 제자들을 다수 배출한다. 전정 박항환, 임농 하철경, 포전 손기종(이상 남농의 제자기도 함) 등이 수도권에서 활동하고 있거나 활동한 대표적인 화가들이다.
남농 1세대 제자로 우리나라 화조의 대표작가로 알려진 청담 김명제도 서울에서 활동하다 작고했고 화조와 산수화에 능통한 백포 곽남배는 서울에서 활동하며 일본을 이웃집 드나들 듯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전개했다. 백포는 진도출신 가수 박진도가 부르는 야간열차를 작사할 정도로 시ㆍ서ㆍ화에 능한 인물이다. 이밖에 남농의 제자들인 우남 이옥성(84ㆍ경기도 안산 거주), 산수화와 화조를 잘 그리는 지원 박재현도 서울에서 활동하며 남농의 화맥을 잇고 있다.
주목할 인물로는 남농의 제자이면서 도촌으로부터 사사한 전정 박항환은 1976년 서울로 상경, (사)현대한국화협회를 조직하고 이사장을 역임하며 한국화발전에 공헌했다. 지난해 4월 고향을 떠난지 38년만에 목포로 내려와 화업을 계속하고 있는 그는 서울에서 활동하면서 다수의 제자들을 양성했다. 임농 하철경, 죽전 김원술, 소천 주영옥, 유정 강광일, 칠농 박제흥(전정 조카)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서울 등 수도권에서 활동하며 한국화의 저변을 확장시키고 있다.
또 남농ㆍ도촌ㆍ전정으로부터 화업을 이어받은 임농 하철경(호남대 교수)은 한국미협 이사장을 역임했고, 2012년 한국예총 회장을 맡아 전국 예술인들의 권익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이밖에 화정 김무호가 천안에서 활동하고 있고, 계정 민이식이 전북에서, 백포의 사촌동생인 곽진연이 대전에서 활동하고 있다. 또 역시 백포의 제자인 우촌 최태문은 진주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상에서 언급된 화가들은 대부분 국전 특선ㆍ입선은 물론 문광부장관상을 수상한 인물들로 국전 심사ㆍ운영위원을 거친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다.
이렇게 의재의 '연진회'와 남농의 '남화연구원'을 통해 배출된 호남권 제자들은 서울에 상경하거나 광주ㆍ목포를 중심으로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해 수도권에 영향을 미친다. 3~4대로 내려가다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진도출신 한국화가로 국전 입선 이상 작가가 100명이 넘고 1970년대에는 호남출신 국전 입상작가가 30%에 달했던 점에서도 그 세를 짐작케 한다.
1960년대부터 서울에 진출하기 시작한 호남출신 한국화가들은 산수와 화조를 중심으로 화실을 개설, 제자양성을 했다. 전국에서 올라온 아마추어화가들을 제자로 양성해 국전 심사위원, 운영위원 등을 배출한다. 또 대학이나 문화센터 강의를 통해 그 범위가 확대된다.
호남출신으로 화맥을 잇는 화가들은 전통적인 한국화 부문에서도 특히 산수와 화조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낸다.
문인화의 경우 호남출신들이 5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력을 보였다. 문인화는 호남출신들이 장악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근래들어 컬러시대를 맞아 신인들이 채색화에 치중, 그 세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경향을 보이고 있지만 호남출신들이 이를 지키내고 있다.
하철경 한국예총 회장은 "호남권 한국화가들의 수도권 진출은 한국화의 한 장르로서 '문인화는 문인화', '산수화는 산수화'로서 한 장르를 지켜가며 맥을 이어왔다"며 "그렇다고 시대흐름을 무시할 수만은 없기 때문에 그 맥은 이어가되, 과거의 기법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덕균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