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끼운 단추, 세계수영선수권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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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칼럼
잘못 끼운 단추,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시민 의사 물어 반납 결정해야
몬트리올과 덴버의 다른 선택
  • 입력 : 2016. 06.21(화) 00:00


1976년 몬트리올 하계 올림픽은 한국 사람들에게는 각별한 대회다. 레슬링의 양정모가 태극 마크를 달고 올림픽 사상 첫 금메달을 땄기 때문이다. 캐나다의 몬트리올시는 소련의 모스크바, 미국의 LA와 경합해 올림픽을 유치했다. 몬트리올시는 엄청난 부채를 끌어다 경기장을 비롯한 사회간접자본 시설에 투자했다. 몬트리올시가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진 빚은 당시 돈으로 35억 달러(3조1150억 원)에 이른다. 몬트리올시가 이 빚을 다 갚은 것은 대회 30년 후인 2006년이다. 그동안 시민들은 고액의 담뱃세를 내는 등 높은 세금으로 고통을 겪었다.

미국 콜로라도주의 주도인 덴버는 몬트리올 하계 올림픽과 같은 해에 열리는 제12회 동계 올림픽을 유치했다. 덴버 시민들은 올림픽 준비 단계에서 감당 못할 만큼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고 환경을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올림픽을 반납하자는 여론이 거세지자 덴버시는 주민투표로 시민들의 의사를 물었다. 투표 결과는 찬성 35만여 표, 반대 52만여 표로 반대 의견이 많았다. 덴버시는 올림픽을 반납하고 여기에 소요되는 경비를 주민 복지기금으로 전환했다. 덴버는 동계 올림픽을 개최하지 않았지만 미국에서 손꼽히는 겨울 휴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광주는 지난해 하계유니버시아드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전체 36개 경기장 중 4개만 신축하면서 저비용 고효율 대회로 개최했다. 엄청난 부채를 남긴 2014 인천아시안게임의 학습 효과가 컸다. 그러면서도 대회의 품격을 잃지 않았다. 광주U대회는 또한 '컬처버시아드'(문화+유니버시아드)로 특화시켜 치르면서 예향 광주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U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로 광주 시민들은 새로운 자신감과 에너지를 얻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껴서 치른 U대회도 광주시비 부담액이 2000억 원에 달했다. 그 가운데 절반은 부채로 남았다.

광주시는 3년 후에 다시 2019 세계수영선수권대회를 치러야 한다. 세계수영선수권대회는 위상과 규모 면에서 U대회를 뛰어넘어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에 버금갈 정도로 명성이 있는 메가 스포츠 이벤트다. 광주에 미치는 경제적 파급 효과가 2조500억 원, 고용창출 효과는 1만8000명에 이를 것이라고 광주발전연구원은 전망했다. U대회와는 달리 TV 중계권도 팔 수 있다. 전 세계에 광주대회가 중계되면 홍보 효과도 클 것이다.

그러나 막대한 대회 비용이 문제다. 광주시가 최근 용역을 통해 산출한 총경비는 1935억 원으로 추산됐다. 606억 원은 정부 지원, 716억 원은 시비, 나머지 613억 원은 광고권 등을 판매한 자체 수익으로 마련하겠다는 것이 시의 계획이다. 그러나 정부는 국비 지원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자체 수익도 300억 원을 넘기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자칫하면 대회 경비 대부분을 빚을 내 광주시가 충당해야 할지도 모른다.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전임 시장은 정치적으로 활용할 의도로 무리하게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그 과정에서 황당하게도 총리의 서명을 도용한 가짜 정부 보증서를 만들어 세계수영연맹(FINA)에 제출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정부는 국기문란 사건으로 규정하고 대회 경비를 일절 지원하지 않기로 했다.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선임이 늦어지고 예산 확보가 불확실한 것으로 알려지자 FINA는 마침내 광주 대회 개최를 취소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첫 단추를 잘 못 끼우다 보니 준비 과정도 엉성하다.

윤장현 광주시장은 FINA사무총장 앞으로 보낸 답신에서'대회 준비가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다. 만전을 기하겠다.'고 답변했다. 조직위원회 사무총장도 금명간 선임할 예정이다. 광주시가 마지못해 밀어붙일 태세지만 여기저기서 대회를 반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물론 대회 반납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최후에 꺼내야 할 카드다. 대회를 반납하면 지금까지 들어간 비용과 위약금 등으로 약 300억 원을 손해 보게 된다. 국제 스포츠계에서의 신인도 하락도 불가피하다. 그러나 300억 원의 매몰비용이 아깝다고 그대로 밀고 나가면 수천 억 원을 더 써야 한다. 광주시가 빚을 지고 시민 복지 비용도 그만큼 줄어든다.

몬트리올이 될 것인가 덴버로 갈 것인가를 광주시가 선택해야 한다. 과달라하라의 선택은 현명했다. 2017년 세계수영선수권대회를 유치한 멕시코의 과달라하라는 석유값 폭락으로 재정이 어려워지자 지난 2015년 위약금을 물고 대회 개최를 취소했다. FINA는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로 개최지를 변경했다. 광주시는 시민 의사를 물어 개최-반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반납한다고 해도 진 것이 아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옷은 반듯하게 입을 수 없다. 우리가 더 이상 허세를 부릴 때가 아니다.


< 논설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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