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차별 없는 세상 그리다 아, 내 나라도 허리가 잘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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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 공프로젝트
장애인 차별 없는 세상 그리다 아, 내 나라도 허리가 잘렸구나
8. 남북 화해를 넘어 통일로
통일 꿈꾸는 장애인 화가 김근태
  • 입력 : 2016. 08.01(월) 00:00
1945년 8월15일 대한민국은 광복과 동시에 분단의 출발선에 섰다. 그날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곧바로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남에는 미군, 북은 소련군이 일본의 무장해제를 담당한다는 '일반명령 제1호'를 발표했다. 8월27일엔 남북을 오가는 철도 운행이 전면 중단되고 남북을 잇는 도로 38선상엔 '38선 팻말'과 함께 차단기가 설치됐다. 남과 북에 별도의 정부가 수립되면서 38선은 남ㆍ북을 가르는 분단선이 됐다. 분단은 민족의 아픔이다. 많은 이들에게 이별의 고통을 안겨줬다.

세월이 흐르면 웬만한 아픔에 무뎌지고 고통에도 익숙해진다. 분단 이후 71년, 우리는 민족 분단이라는 아픔에 무감각해지고 있다.

장애인 화가 김근태(60)씨도 그랬다. 김근태 화백은 지적 장애인들의 순수하고 맑은 정신에 반해 그들의 자유로운 영혼을 화폭에 담아왔다. 김 화백은 자신도 한쪽 눈을 잃고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장애인이다.

2015년 12월3일 세계 장애인의 날을 맞아 UN본부에서 자신의 대표작 '들꽃처럼 별들처럼'의 전시회를 연 김근태 화백은 지금껏 잊고 살았던 사실을 문득 떠올린다.

"아! 이 많은 UN회원국 가운데 우리 나라만 허리가 잘려 있구나~"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하나되는 세상을 꿈꿔온 김 화백은 허리가 잘린 조국의 장애는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았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김 화백은 이후 통일 전도사가 되기로 했다.

김 화백은 지난 4월 20일 베를린 장벽 주변을 100호 캔버스 77개의 작품을 재독 동포 77명이 들고 행진하는 이색 전시회를 개최했다. 분단을 딛고 통일을 이룬 독일에서 한반도 통일을 염원하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국내에서는 '2016 통일기차, 장애인과 예술을 싣고 달리다'라는 전시회를 열고 있다. 또 전세계를 순회하며 장애인과 비 장애인이 하나되는 세상, 한반도 통일이 오는 날을 기원하는 전시회도 개최하고 있다. 내년 6월18일 북한 장애인의 날에는 평양역 전시를 계획하고 있다.

반도의 끝자락 목포역에서 평양역을 거쳐 유라시아 대륙까지 철길이 이어지는 날을 보고 싶다는 김근태 화백을 지난 7월7일 만났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 일답.



-지난 23년 동안 지적 장애인들을 화폭에 담아왔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가.

△1994년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나에게 지인이 목포 고하도에 있는 공생재활원을 소개해줬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화폭에 담아보라는 의미였다. 그 곳에서 150여 명의 지적장애인을 보았을 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상을 만났을 때 환희와 희열을 느낀다. 그 곳의 아이들을 내 평생의 작품 테마로 삼기로 했다.



-지적 장애인들을 화폭에 담으면서 어떤 느낌이 들었나.

△ 지적장애인들 내면에 담긴 인간 본연의 순수함을 발견하고 작품으로 꽃피워주고 싶었다. 작업을 하면서 갇힌 나로부터 탈출했다. 5ㆍ18 이후 나를 짓누르던 트라우마도 치유됐다.

-대표작인 '들꽃처럼 별들처럼'은 100호 크기 캔버스 77개를 이어붙인 총 길이 102.4m에 이르는 초대형 작품이다. 2012년부터 꼬박 3년이 걸렸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그렇게 힘든 작업인 줄 알았다면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80여명의 지적 장애아들을 화폭에 담고, 그 배경으로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을 표현했다. 밑그림을 그리고 대여섯번의 덧칠을 하는 데 아내는 언제나 '119'를 누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3년동안 하루 10시간 넘게 작품을 그렸더니 날카로운 침이 온몸을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왔다.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 들꽃처럼 별들처럼'이란 작품명에 담긴 의미가 궁금하다.

△들꽃은 스쳐지나가면 그 아름다움과 가치를 모르지만, 자리에 앉아 바라보면 소박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현실에서는 자유롭지 못한 지적장애인들은 순수한 들꽃을 닮았다. 어두운 밤 달처럼 빛나지는 않지만, 그 자리에서 소박한 아름다움을 빛내주는 별의 모습을 닮았다. 들꽃, 그리고 별과 같은 그들의 마음을 담으려 했다.



-'들꽃처럼 별들처럼'은 비발디의 '사계'를 모티브로 했다. 비발디의 사계가 모티브가 된 계기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변화를 지적장애인과 함께 느끼면서 비발디의 사계가 떠올랐다. 그동안 작품은 작은 악기를 들고 혼자 공연을 한 것이라면, '들꽃처럼 별들처럼'은 100m 캔버스를 악보로 삼아 지적 장애인을 음표로 형상화한 것이나 다름없다. 조금은 비뚤어지고 뉘여 있는 음표지만 그들이 내는 삶의 소리들이 캔버스 안에서 비발디의 사계처럼 장엄한 오케스트라로 승화했다. 그들이 세상에 울림을 주고 그림 안에서 자유롭게 그리고 아름답게 피어나길 원했다.



-요즘은 통일문제에 큰 관심을 두고 있는데 어떤 변화가 있었나.

△2015년 12월3일 뉴욕의 UN본부에서 전시를 하면서 시야가 넓어졌다. 수많은 나라가 가운데 우리나라가 내 눈에 들어왔다. 우리나라가 장애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과 북으로 한반도의 허리가 잘려 있다. 우리나라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껏 분단된 조국의 현실에 무감각했다. 우리나라가 아픈지도 모르고 살았다. 내가 장애인이라는 생각만했지 장애를 앓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우리가 분단의 아픔을 모르고 산다는 것은 정신에 장애가 있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장애의 치유는 내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 때 비로소 시작된다. 이제 우리나라가 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치유를 해야 한다는생각을 했다.



-김 화백에게 '통일'은 어떤 의미인가.

△편견과 차별이 극복되는 역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통일을 염원하는 전시를 통해 남과 북의 편견과 차별이 극복돼 통일로 나아가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그리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고 이해하는데 한걸음 더 나아가는 의미가 내 전시에 담겨 있다.



-지난 4월 독일 베를린 포츠담 광장 남단(옛 베를린 장벽)에서 전시를 했다. 감회가 어땠나.

△독일 장애인단체 관계자와 재독 동포 등 77명이 참여해 100호 짜리 작품을 1점씩 모두 77점을 들고 행렬하는 전시로 진행됐다. 통일을 기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장벽전시를 기획했는데, 베를린 장벽 자체가 문화재이기 때문에 작품을 세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작품을 들고 펼쳐보이는 퍼포먼스를 했다.

베를린 장벽 앞에서 펼쳐진 77개의 작품들을 바라보면서 감회가 새로웠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처럼, 이 작품을 통하여 편견과 차별이 무너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해외는 물론 국내 전시도 이어지고 있다.

△오는 9월 브라질에서 열리는 페럴림픽에 참여해 전시를 한다. 국내에서는 '통일기차, 장애인과 예술을 싣고 달리다'라는 주제로 지난 4월과 5월 각각 목포역과 광주역에서 전시를 했고 7월엔 충주역에서 했다. 9월에는 추석을 맞아 도라산역에서 실향민들과 함께 의미있는 전시를 할 예정이다.



-내년에는 평양역에서 전시 일정을 마치고 싶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통일기차, 장애인과 예술을 싣고 달리다'라는 프로젝트에 함께 해주시는 분들이 늘어나면서 평양전시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다.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한겨울에 수돗물을 졸졸 흐르게 하면 수도관이 얼지 않듯 남과 북의 작은 예술적 교류가 꽁꽁 얼어붙은 남북한의 관계를 녹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김기봉 기자 gbkim@jnilbo.com

김근태 프로필

1957년

광주출생

1977년

광주 살레시오 고등학교 졸

1982년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졸

1992년

프랑스 그랑슈미에르 아카데미 수료

1983~1989년

목포 문태고등학교 미술교사 재직

2009년~

서남권 문화예술협회 회장

주요 초대전 및 개인전

1992년

대한민국미술대전 (국립현대미술관)

1993년

코리아통일미술전 (일본센트럴미술관, 오사카현대미술관)

1994년

민중미술15년전 (국립현대미술관)

1996년

REVIN SALON전 (프랑스 파리)

1998년

한국 현대미술 초대전 (미국 뉴욕)

2004년

동학예술제 초대전 (국립 경주박물관 특별전시실)

2012년

일본 JALLA전 (일본 도쿄)

2014년

한국미술상 수상 기념 초대전(서울아트센터)

2015년

UN전시기념 국회의사당 초대개인전(국회의사당)

2015년

세계장애인의날 기념 UN 초대개인전(뉴욕 UN본부)

2016년 4월

세계순회전시(독일 베를린 주독 한국문화원)

2016년 6월

세계순회전시(파리 주 OECD 한국대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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