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산수유 요정 춤추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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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갑의 정원 이야기
노란 산수유 요정 춤추는 곳
구례 산수유마을
소담한 꽃과 그윽한 향기
매화 더불어 봄꽃 대명사
구례 특산품 산수유 열매
  • 입력 : 2017. 04.21(금) 00:00
구례군 산동면 산수유 꽃이 만개해 봄을 알린다.


언제부턴가 산수유(山茱萸)는 매화(梅花)와 더불어 봄을 연상시키는 봄꽃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 둘은 우리에게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우며 봄이 왔음을 알리는 대표적인 봄꽃식물이다. 특히 산수유는 노란 요정들이 춤추듯 소담스럽게 피는 꽃이 예쁘지만 향기 또한 그윽해서 좋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상을 온통 노랗게 물들여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던 산수유, 이젠 봄의 전령사로서 임무를 다하고 또 다른 많은 봄꽃들과 새록새록 돋아나는 연초록 나뭇잎들에게 눈길을 양보하고 있다. 그래도 쉽사리 가시지 않는 노란풍경의 여운이 눈가에 어른거린다.

소설가 김훈은 수필집 '자전거여행'에서 산수유를 이렇게 묘사한 바 있다.

산수유는 다만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서 피어난다. 그러나 이 그림자 속에는 빛이 가득하다. 빛은 이 그림자 속에 오글오글 모여서 들끓는다. 산수유는 존재로서의 중량감이 전혀 없다. 꽃송이는 보이지 않고, 꽃의 어렴풋한 기운만 파스텔처럼 산야에 번져 있다.(중략)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산수유 꽃을 이처럼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잔잔한 감동이 전해진다. 매년 3월말, 4월초가 되면 구례군 산동면에 봄기운을 만끽하려는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산동면은 전라남도 구례군 북부에 위치하고 있다. 본래 남원부의 지역으로 지리산 아래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어 산골 또는 산동이라 하여 고려 때 산동부곡(山洞部曲)이라 불렀다.

1897년에 구례군에 편입되어 두 면(面)으로 갈라져 지리산의 상봉 쪽이 내산면(內山面), 그 바깥쪽이 외산면(外山面)이라 하였다. 1932년 내산ㆍ외산 두 면이 다시 병합되어 산동면(山洞面)이 되었다.

산수유는 약용 혹은 건강음식으로 일반인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수고(樹高)는 약 7m 정도 자라며 수피가 비늘조각처럼 벗겨지는 특징이 있다. 잎이 마주보며 나오는데 잎의 앞면은 녹색이고 뒷면은 연녹색 또는 흰색을 띤다.

잎 가장자리는 밋밋하며, 잎 뒤의 잎맥이 서로 만나는 곳에 털이 빽빽이 돋아나 있다.

산수유가 주목받는 것은 꽃과 열매다. 노란색 꽃은 잎이 나오기 전 3~4월에 가지 끝에 20~30송이씩 무리지어 핀다. 10월에는 타원형의 장과(漿果)로 익어가는데 붉게 물든 열매는 가을 산과 들녘을 온통 붉게 물들이며 색다른 가을 정취를 느끼게 해준다. 가을에는 잎과 열매가 붉게 물들기 때문에 정원수나 가로수로도 인기가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도림사(道林寺) 대나무 숲에서 바람이 불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와 같다"라는 소리가 들려 왕이 대나무를 베어버리고 산수유나무를 대신 심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산림경제', '동국여지승람', '승정원일기', '세종실록지리지' 등의 고문헌에는 산수유가 구례지역의 특산품으로 재배되고 한약재로 처방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1938년 구례에 산수유조합이 창립되었고, 1939년 구례지역 특산품으로 산수유가 경쟁 입찰에 부쳐진 사실과 구례지역 산수유 출하량이 약 9톤에 달했다는 기록 등이 남아 있다. 이를 통해 오래전부터 구례지역은 산수유가 지역 특산품으로 재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역주민들에게 구전되는 내용도 자못 흥미롭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천 년 전 중국 산동성(山東省)에 사는 처녀가 구례 산동으로 시집오면서 고향을 잊지 않기 위해 산수유나무를 가져와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산동이라는 지명의 유래도 이와 연관되어 있다고 믿고 있으며 산동면 계천리 계척마을에는 이때 들여와 심은 최초의 산수유나무로 추정되는 천년 수령의 산수유나무가 있다. 지역주민들은 이 나무를 '할머니나무'라고 부른다. 구례군에서는 이 나무를 산수유 시조목(始祖木)으로 지정하여 보호ㆍ관리하고 있다.

또한 건넛마을 원달리 달전마을에 수령 삼백년의 '할아버지나무'가 있는데 할머니나무와 비슷한 천년 이상의 고령 산수유나무 뿌리에서 다시 새순이 나와 자란 나무다.

구례군은 총면적의 77.2%가 임야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그 중에서도 산동면은 임야가 82.8%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경작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산간지역이다.

산동 주민들은 약 천 년 전인 11세기경부터 지리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지형과 기후에 적응하며 생계유지 수단으로 약용작물인 산수유나무를 재배해왔다.

워낙 척박한 자연환경인지라 귀한 경작지는 일반작물을 재배하고 집 주변과 돌담, 구릉지, 마을 어귀, 개울가 등 공한지를 활용하여 산수유나무를 재배한 것이 마을과 지역전체로 확대되어 현재 약 269ha에 달하는 집단화된 산수유 재배지가 된 것이다.

산동면은 전국 생산량의 68.98%를 차지하는 우리나라 최대 산수유 생산지 및 군락지로서 농업환경이 여의치 않은 산동주민들에게 그나마 소득원이 되었던 것이다.

과거 산수유나무는 산동 주민들의 생계와 자녀교육을 책임지던 일명 '대학나무'였으나 최근 아름다운 경관을 활용한 볼거리 제공 및 도농교류체험 프로그램 등으로 관광산업을 창출하는 지역의 '효자나무'가 되고 있다.

최근 들어 산수유의 경관적 가치, 건강식품으로서의 가치가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계절별로 산수유 꽃축제와 열매축제를 개최하고 있는데, 구례군을 대표하는 지역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산수유마을은 가을이 되면 다시 바빠진다. 가을에 이곳을 찾으면 가느다란 산수유나무 가지 위에 외발로 매달려 열매를 따는 주민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나무에 오를 수 없는 노인들은 가느다란 장대로 조심스럽게 열매를 채취한다.

수확이 끝나면 산동 아낙네들은 산수유 바구니를 하나씩 앞에 두고 사랑방에 둘러앉아 입으로 육질을 벗겨내 일일이 씨를 골라내는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구례 산수유마을에서 봄에는 노란색으로 물들여진 수채화 같은 풍경을 만나고 가을에는 붉은 색으로 옷을 갈아입은 또 다른 풍경화를 만날 수 있다. 성급하게도 벌써 가을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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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 마을과 사랑정원


갈등ㆍ아픔 치유 위한 정원
사랑을 모티브로 만든 공간
관광객 새로운 볼거리 제공



산동마을 사람들에게 산수유는 참 각별하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동의 경우 농업환경이 척박하기 그지없었는데 그나마 큰 위안이 되어준 작물이기 때문이다. 이른 봄부터 가을까지 꽃으로 희망을 주고 열매로 웃음을 선사한 요컨대 '신이 내린 선물'인 셈이다.

일 년 내내 주민들의 손과 발과 입, 온몸을 부대끼며 산수유와 동고동락하는 사이라는 점에서 어찌 주민들에게 사랑스러운 나무가 아니겠는가?

뜻밖에 이런 산수유 꽃에 숨겨진 너무나 가슴 아픈 이야기 하나가 있다. 1948년에서 1955년 사이 지리산은 군경 토벌대와 빨치산의 치열한 싸움이 펼쳐졌던 격전지였다. 지리산의 울창한 숲과 암벽들은 빨치산에게 천혜의 요새가 되어 전투 당사자인 군경과 빨치산 2만여 명의 고귀한 목숨이 희생되었다.

또한 군경 토벌대와 빨치산의 틈바구니에서 무고한 양민 수천 명이 함께 희생되기도 하였다. 이와 관련한 애틋한 사연이 노래로 만들어져 불리어 왔는데 바로 '산동애가(山東哀歌)'다.

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산수유 노란 꽃망울 사이사이에 이 같은 사연이 서려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저려온다. 여수ㆍ순천 10ㆍ19사건(예전 여순반란사건으로 부름) 때 산동면의 부자였던 백씨 집안의 오남매 중 둘째딸인 백순례(애칭 부전)는 열아홉 나이에 부역으로 인해 희생됐다.

그의 희생은 집안의 대를 이으려는 어머니 고순옥 씨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백씨네 큰아들과 둘째아들은 이미 일제 징용과 여순사건으로 목숨을 잃었고, 셋째아들마저 쫓기는 신세가 되자 둘째 딸 순례를 대신 보낸 것이다.

그가 경찰에 끌려갈 때 구슬프게 읊조린 시(詩)가 바로 '산동애가'다.

잘 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열아홉 꽃봉오리 피어보지 못한 채로/까마귀 우는 골에 병든 다리 절며 절며/달비머리 풀어 얹고 원한의 넋이 되어/노고단 골짜기에 이름 없이 쓰러졌네/살기 좋은 산동 마을 인심도 좋아/산수유 꽃잎마다 설운 정을 맺어 놓고/까마귀 우는 골에 나는야 간다.

산동애가의 일부다. 산수유가 노랗게 산동마을 산야를 물들일 때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노랫말이다. 1960년대 대중가요로 잠시 나왔다가 금지된 곡이다.

이념 대립의 질곡 속에서 빚어진 비극의 사연을 담은 '산동애가'가 나주 공산면 출신 작곡가 김상길씨에 의해 다시 음반으로 제작되어 가수 이효정이 애처롭게 불러 심금을 울리고 있다. 이토록 곱게 핀 산수유 꽃이 넘실대는 계곡에 어찌 이런 슬픈 사연이 서려 있을 줄이야 새삼 주목하게 된다.

이런저런 숱한 사연을 안고 살아온 산수유마을에 갈등과 아픔을 치유하고자 만든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

바로 '사랑정원'이다. 마을 사람들이 살아온 삶의 가치를 담아 2013년에 조성되었는데 산수유와 축제를 구경하기 위해 찾은 방문객들을 위해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게다가 그 옆에 산수유문화관을 건립하여 산수유와 지역문화를 한 발짝 더 들여다보게 도움을 주고 있다.

사랑정원에는 '사랑'을 모티브로 한 프러포즈(propose)장소, 언약의 문, 사랑마루, 산수유 꽃담길 등 흥미로운 공간으로 꾸며놓고 있다.

특히 현장에서 채취한 자연석을 활용하여 이끼와 분재를 조합하여 아기자기하게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산수유 꽃향기에 이끌려 봄바람과 함께 데이트 나온 연인들에게는 새록새록 사랑의 결실로 이어주는 사랑의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산수유(山茱萸)의 꽃말은 지속, 영원불멸이라고 한다. '호의를 기대하다'는 뜻도 있다.

어쨌든 산수유는 우리들에겐 영원한 봄맞이 꽃임에 틀림이 없고 봄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자연의 소생과 활력을 통해 새로운 한 해를 희망차게 살아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나 더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자고로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 모든 관계에 있어서 지속되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라는 사실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송태갑 광주전남연구원 문화관광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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