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팬들과 함께 한 고창 돌채다방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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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소남의 통기타 이야기
소녀팬들과 함께 한 고창 돌채다방 공연
<국소남의 통기타는 영원하다> 21. 광주 포크 반세기 - 보컬 그룹ㆍ그룹 사운드 인기
'통금 해제' 성탄절 이브 충장로는 북적
5인조 보컬그룹 '스타페이지' 인기몰이
대만원 기록한 '제2회 국소남 리사이틀'
  • 입력 : 2017. 05.11(목) 00:00
1974년 진행된 국소남 리사이틀 공연 모습. 이날 공연에는 그룹 \'스타 페이지\'와 이용복, 홍민 등도 출연해 함께 무대를 꾸몄다.
● 그 겨울, 고창 돌채다방 공연

1973년 12월23일. '별이 빛나는 밤에'의 별밤지기 소수옥과 이장순, 그리고 필자까지 셋이 MBC 보도차량을 타고 전북 고창으로 향했다. 짐은 기타 둘, 디스크 몇장이 전부였다. 그리고 필자가 제안해서 고창에서 보내온 엽서를 몇 장 찾아서 이동했다. 일요일 오후, 전날 밤 내린 눈이 온 산야를 덮고, 내리쬐는 태양의 반사빛에 눈이 부셨다. 초가집, 슬레이트 지붕, 옛 기와집들이 옹기종기 하얀 눈에 덮혀 그야말로 정겹고 아름다운 시골 풍경에 넋을 잃었다. 옛 영화나 그림에서나 볼 수 있던 백색의 자연이 그려낸 풍경들이 눈 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우리를 초청해준 돌채다방은 길가에 위치한 옛 기와집을 개조한 집으로 황토벽에 4각의 유리창들이 정겨웠다. 다방에 들어서는 순간, 사복을 입은 시골 단발머리 여고생들이 소리치며 반겼다. 100여평 남짓한 꽤 커다란 실내에는 200여명은 족히 되는 인원이 왔고,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뮤직박스 안에서 소수옥의 매혹적인 멘트가 시작되고, 가져간 엽서를 소개하자 여학생들이 절규하듯 소리를 질러댔다.

첫 곡을 소개하자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히 음악에 몰두했다. 무대 중앙에서 이장순과 필자가 통기타 노래를 들려줬다. 즉석에서 신청한 노래와 더불어 '아침이슬', '바람과 나', '편지', '두개의 작은 별', '웨딩 케익' 등 국내 포크와 팝을 공연했다. 2시간이 지나고서야 무대를 접을 수 있었다. 늦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광주로 돌아왔다. 초가지붕, 흰눈이 쌓인 그날 밤의 돌채다방 공연. 지금은 추억이 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창밖에 쌓인 눈밭위로 여고생들의 하얀 얼굴들이 미소짓고 있었다. 차안에서 소수옥이 한마디했다. '이거 녹음해서 별밤 토요특집으로 방송하면 대박일건데 아쉽네…'

그때 그 아름답던 소녀들은 모두들 환갑을 지났겠지.



●1973년 크리스마스 이브 충장로

1973년 크리스마스 이브는 23일이 일요일, 25일이 크리스마스로 샌드위치 데이였다. 그리고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눈이 많이 왔다. 이브 당일에도 초저녁부터 밤하늘에는 떡가루를 쏟듯 눈이 펑펑내렸다.

광주시가 1949년 8월15일 광주부에서 광주시로 승격된 지 24년이 지나고 인구가 65만명에 이르던 때였다. 1973년 그해 7월에 동구와 서구로 분할, 신설되고 구 제도가 실시되던 해이기도 했다.

그날 저녁, 내게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던 것일까. 결론은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다만 업소에서 노래하는 것과 청년시절 누구나가 느꼈던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들뜬 마음이 가슴을 설레게하고 한 시간이었다. 무등극장 옆, '늘봄' 카페에서 노래를 하고 '엠파이어' 싸롱 무대로 가려고 나온 순간, 충장로 우체국 앞 많은 사람들의 무리를 보고 놀랐다.

그냥 들뜬 마음으로 충장로를 걷고 싶은 마음에 우체국 앞으로 향했다. 싸롱까지 평소에는 5분이면 충분했는데, 30여분만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속된말로 '6ㆍ25 전쟁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다. 군중에 밀려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거리의 각 가게마다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귀를 때리고, 눈은 펑펑 쏟아져 내렸다. 사람들마다 어깨위, 머리위엔 하얀 눈이 쌓여가고 바닥이 미끄러워 여기저기서 엉덩방아 찧기 일쑤였다. 광주시민 절반은 충장로에 모여있는 듯 싶었다. 태어나서 이 좁은 거리에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보긴 처음이었다. 요즘의 크리스마스 이브의 풍경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1973년 말 크리스마스 이브는 1년에 단 하루, 통금해제가 있었던 때였기 때문에 더더욱 사람들이 많이 모였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메리 크리스마스였고, 성경 말씀처럼 하늘에는 영광이 땅에는 축복이었다. 그땐 그랬었다. 1973년 겨울 크리스마스 이브의 충장로 풍경은 지금도 생생하다.



●보컬 그룹 '스타 페이지' 인기

서울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고고리듬의 춤과 더불어 보컬그룹, 그룹 사운드의 열풍이 거세게 일던 때 광주에서도 그 큰 유행을 비켜갈 수 없었던지 기존 야간영업을 하던 관광호텔 나이트클럽이 주간에도 영업을 시작했다. 서울팀인 '탑 세븐'과 광주팀인 '스타 페이지'가 선을 보이자 젊은이들의 발길이 관광호텔로 옮겨지고 저녁 나이트클럽도 성황을 이뤘다. '스타 페이지' 멤버는 기타에 조상규, 베이스에 최기철, 드럼에 고(故) 백학송, 오르간에 남길원, 싱어에 김지곤으로 5인조 보컬그룹이었다.

'스타 페이지'는 1973년 이전 서울 미8군에서 활동하다 광주에 내려와 뿌리를 내렸다. 옛 도청 옆 골목 대도호텔에서 연주하다 관광호텔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으로 음악활동에 들어갔다. 특히 팀의 리더였던 조상규는 대단한 기타 연주가로 멤버들의 연주 정리, 편곡 등을 담당하기도 했다. 당시엔 디스크를 틀어놓고 멜로디와 코드를 악보에 옮겨적는 일을 조상규가 담당했고, 타 멤버들은 악보보다는 귀로 듣고 익혀서 연주했다. 음악성이 뛰어나지 않고는 해낼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귀 밝은 드러머인 백학송은 한번 들으면 그 연주를 오리지널과 똑같이 드럼채를 두들겨 대는 천재였다. 베이스 기타의 최기철은 리듬을 타는 데는 귀신같았다. 4개의 현을 유린했던 연주자였다. 리드기타 조상규는 기타 연주를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정교한 기타리스트로 필자가 보기에도 엄청난 실력의 소유자였다. 광주에서만큼은 그 어떤 팀들도 그들을 넘보지 못했다. 인기를 독차지했고, 광주 관광호텔 나이트 클럽측은 그들과 다년 계약체결을 제의하기도했다.



●'제2회 국소남 리사이틀' 대만원

필자는 1974년 9월8일 광주 금남로 2가 관광호텔 나이트클럽에서 '제2회 국소남 리사이틀'을 열었다. 호텔 저녁시간 영업관계로 오후 1시에 공연을 가졌다. 오전 10시부터 리허설이 끝나고 점심을 먹기 위해 단원들과 후문을 나서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호텔길 건너 YMCA까지 관객들의 줄이 이어졌다. 대략 300여명은 될 듯 싶었다. 호텔측에선 기존 테이블의자 외에 접이의자를 200개 더 준비했지만 부족할게 뻔한 상황이었다. 입장객이 400여명이 넘어 입장하지 못한 사람이 300명은 넘을거란 지배인의 말에 YMCA에서 접이의자 100여개를 더 빌려와야 했다. 리사이틀은 대만원에 표는 매진됐다. MBC 별밤지기 소수옥의 사회로 공연은 시작됐다. 호텔 나이트클럽의 전속 밴드였던 백기두와 캄보밴드의 반주로 공연이 막을 올렸다. 불렀던 노래는 밴드와의 협연과 통기타 무대로 3분 공연들이었다. 'Till', 'Today', 그리고 자작곡 '어느 이별 뒤의 이야기' 등을 불렀다. '스타 페이지'의 찬조출연과 서울서 내려온 최안순, 그리고 이용복과 홍민 등이 우정출연으로 무대를 빛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가 나의 음악인생 중에 가장 인기도 좋았고 노래도 잘했었다고 기억된다. 그 당시 26살. 노래를 잘 부를 수 밖에 없었던 황금기로 어언 44년의 세월이 덧없이 흘렀다.

통기타 가수ㆍ문화공연시민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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