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살다보니 섬을 닮아가더라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송태갑의 정원 이야기
더불어 살다보니 섬을 닮아가더라
전남도 민간정원 제1호 '애도'
좋은 쑥이 많아 이름도 쑥섬
마을규약 지키며 더불어 살아
돌담ㆍ식생 발달 '좋은 탐방로'
  • 입력 : 2017. 06.02(금) 00:00
애도 절경
고흥하면 생각나는 곳이 어딘가요?

어떤 사람은 나로도 우주센터를 떠올릴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은 소록도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최근 고흥을 대표할만한 장소로 급부상하고 있는 화제의 명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힐링파크 쑥섬쑥섬'으로 알려져 있는 애도(艾島)를 두고 하는 말이다.

애도는 지난해 행정자치부와 한국관광공사가 공동 주관한 '2016대한민국 가고 싶은 섬 33'에 선정되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최근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는 전남도가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정원도시 전남' 의 실천사업 일환으로 '민간정원 제1호'로 쑥섬 애도를 지정하면서 부터다.

전남도가 수려한 남도풍경을 잘 보존하고 생활환경을 쾌적하고 아름다운 정원처럼 가꾸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점도 칭찬할만하고, 무엇보다 정원문화 확산을 위해 첫걸음을 내딛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애도가 전라남도 민간정원 제1호로 지정된 것은 참으로 경사스러운 일이고 크게 축하할만한 일이다.

애도는 쑥 애(艾)와 섬 도(島)가 합쳐져 붙여진 이름이다. 오래전부터 이 섬에 질 좋은 쑥이 많았던 것에 연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섬은 고흥군 봉래면 사양리로 나로도항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다. 나로도 우주센터로 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나로도항(축정항)에서 배로 약 3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손에 잡힐 듯 섬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아주 친근한 섬이다.

섬의 규모도 그리 크지 않다. 면적은 0.326㎢, 해안선길이 3.2㎞로 섬 모양이 소가 누워있는 와우(臥牛)형상을 하고 있다. 배를 타고 가면서 보면 마치 악어가 엎드려 있는 모습으로 바로 옆의 거북형상의 섬과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섬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조선 인조 때로 처음 박씨가 들어온 후, 고씨, 명씨가 차례로 들어오면서 함께 어울려 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70년대에는 70여 가구 300여명이 거주한 적도 있었는데 현재는 15가구 30명의 주민만이 살고 있다.

이 마을의 자랑거리는 강한 공동체의식과 서로를 배려하는 끈끈한 정이라고 한다. 내일 네일 따지지 않고 상부상조하며 지내 왔는데, 함께 만든 마을규약을 누구도 어기지 않고 잘 지켜왔다고 한다. 대표적인 실천사례로 이 섬에는 무덤이 하나도 없다는 점을 들고 있다. 만약 이 규약이 지켜지지 않았다면 마을 뒷산은 이미 무덤산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을 뒷산 숲 속에 당집을 지어 제사 때 이외에는 사람들의 출입을 금했다고 한다.

풍어와 안전,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는 것이 주목적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숲을 소중히 여긴 덕분에 지금 아름드리 난대림을 지키게 되었는데 이를 통해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했던 주민들의 순박한 마음과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당산제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 섬에는 개와 닭이 없는데 신성한 제사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소리 내는 가축을 기르지 않았다고 한다.

늘 풍랑과 같은 자연재해에 노출되어 있고 자연에 의지해 살 수밖에 없는 섬사람들의 삶의 애환이 서려 있는 이야기라서 애잔한 마음마저 든다.

애도는 작은 섬이지만 볼거리는 풍부하다. 노을풍경과 어우러질 때 가장 아름답다는 성화모양을 닮은 성화등대, 쑥섬 아낙네들의 놀이터 역할을 했던 우끄터리 쌍우물, 이삼백년은 족히 되어 보인 동백숲길, 마을을 휘감아 도는 암석정원 해안길(일명 사랑의 돌담길) 등이 있다.

또 마을의 선남선녀가 산책하며 데이트를 즐겼던 여자산포바위, 남자산포바위 등도 볼거리다. 여기서 산포는 아마도 '산책하다'는 의미의 일본어 산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 섬의 상징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은 뭐니 뭐니 해도 산 정상에 가꾸어 놓은 바다 위 비밀정원인 별정원이 아닌가 싶다. 세련되거나 정교하게 꾸며진 정원은 아니지만 300여 가지의 꽃이 사계절 옷을 바꿔입어가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정원은 이 섬과 꽤나 잘 어울리는 소박한 정원이다.

애도는 돌담이 예쁘고 아늑한 섬마을과 여느 섬에 비해 식생이 잘 발달되어 있어 가족단위나 체험학습을 목적으로 한나절 자연을 탐방하기에 더 없이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

탐방로를 걷다보면 원시림을 방불케 할 만큼 잘 보존된 수림대도 만날 수 있고 가끔 도시의 화원(花園)에서나 만날 수 있는 야생화들을 실컷 눈요기 할 수 있다.

누워있는 여성의 모습과 할머니 가슴을 닮았다하여 할머니 당산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진 후박나무를 비롯하여 수피가 얼룩무늬처럼 생겼다고 하여 해병대나무라고 부르는 육박나무, 부부의 금슬을 좋게 하는 합환수인 자귀나무 등이 유명하다.

그 밖에 난대원시림 정글 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푸조나무, 팽나무, 구실잣나무, 동백나무 등이 있다. 그리고 탐방로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할미꽃, 수선화, 산자고, 마삭줄, 복수초, 금어초, 구절초 등과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수많은 야생화들이 수줍은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는 듯하다.

이 섬에서는 등산하듯 탐방로를 올라가서는 안 된다. 탐방로 중간 중간에 나무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자연과 사랑, 꿈 등에 관한 채근담이나 좋은 글귀들이 적힌 목판을 만날 수 있어 깨알 같은 재미를 더해준다.

탐방로에서 빽빽한 나무들 틈새로 조망되는 남해의 쪽빛 바다와 정교하게 다듬어진 분경(盆景)같은 섬들이 한데 어우러져 이루어낸 풍경은 참으로 일품이다. 마치 한 폭의 남종화를 훔쳐보는 것처럼 묘한 쾌감을 느끼게 한다.

마침내 산 정상에 오르면 나로도항은 물론이고 사방으로 펼쳐진 푸른 다도해 전경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어 이 섬의 가치를 더해주고 있다.

묵은 일상의 찌든 때를 말끔히 씻어주듯 후련하고 상쾌해진다. 저절로 힐링이 되는 느낌이다. 말하자면 안구정화를 제대로 할 수 있는데 눈 호강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송태갑 광주전남연구원 문화관광연구실장


--------------------------------------------------

섬을 가꾸는 사람들, 정원을 닮은 사람들



애도 사람들은 참 표정이 밝고 순박하다. 사람들과 자연을 번갈아보면 왠지 모르게 서로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얼굴에서 오랜 풍파를 견디며 푸른 이끼를 키운 돌담 같은 너그러움이 묻어나고, 이름 모를 야생화처럼 소박한 아름다움도 느껴진다.

어디 그뿐이랴 수 백 년 일궈온 다랑논처럼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구수함도 엿볼 수 있다. 이 섬이 아름다운 것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자연에 대한 배려와 더불어 살고자하는 공동체에 대한 올곧은 심성의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을 가꾸는 일은 자신들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지만 후손들에 대한 배려와 최소한의 예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성서에 보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창세기 2장 15절)'라는 얘기가 나온다. 사실 에덴동산은 우리가 동경하며 가꾸고자하는 정원(Garden)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당장 내가 소유하고 있거나 살고 있다고 해서 내 본위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쩌면 애도사람들은 그런 취지에 가장 부합한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이 섬이 주목을 받고 전라남도 민간정원 제1호로 지정되기까지 오랫동안 땀과 열정을 쏟아온 쑥섬지기 김상현, 고채훈 부부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김상현씨는 인근 중학교에서 교사로 재직 중이며 아내 고채훈씨는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다.

처음부터 정원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당초 사회복지사업에 관심이 많아서 이를 실현해가는 과정에서 정원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되었다고 한다.

16년전 이 섬에 첫발을 들여놓은 후 돈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이곳의 땅을 매입했다. 그래서 처음엔 마을 사람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었는데, 차츰 이들의 진정성을 이해하게 되었고 이들의 꿈에 마을 사람들도 동참하게 된 것이다.

요즘도 이 부부는 마을주민의 관심사와 현안에 누구보다 솔선수범하고 사소한 일이라도 주민들과 협의하여 차근차근 추진한다고 한다.

이 부부는 바람이 불거나 눈이 오거나 뙤약볕이 내리쬐는 날이라도 상관없이 주말이나 방학, 시간이 허락되는 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낙원(樂園)이 될 때까지 숲을 지키고 마을과 정원을 가꾸겠다고 해맑게 웃는다.

정원 가꾸는 일에 흠뻑 취해 있는 이 부부를 보면서 행복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이 부부가 정원을 참 많이 닮아가는구나 라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다.
송태갑의 정원 이야기 최신기사 TOP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