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입곡으로 넣었던 '사랑해' 대한민국 최고 애창곡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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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소남의 통기타 이야기
삽입곡으로 넣었던 '사랑해' 대한민국 최고 애창곡으로
국소남의 통기타이야기-25) 70년대 포크송 전성시대
'뜨와에무아' 앨범에 수록
라나에로스포가 불러 인기
7ㆍ4남북공동성명때도 합창
  • 입력 : 2017. 07.06(목) 00:00
'바윗돌'을 부르고 있는 정오차.
●70년대 국민 애창곡 '사랑해'

국내 포크송 '사랑해'는 혼성듀오인 '라나에 로스포 (Lana Et Rospoㆍ이태리어로 개구리와 두꺼비)'가 불렀던 노래다. 1971년 당대 최고 혼성포크 듀오 '뜨와에므와 (Toi Et Moiㆍ불어로 '너와 나'ㆍ이필원과 박인희)'가 붐을 일으키고 있던 때였다. '뜨와에므와'. 이들이 번안곡 위주의 앨범을 만들때 삽입된 곡(끼워 넣기식)이 '라나에로스포'의 '사랑해'였다.

이곡은 변혁 작곡, 작사로 알려져 있으나 가사의 주인공은 중앙대생 '오윤경'이다. 백혈병으로 죽은 애인을 생각하며 쓴 내용의 글에서 비롯됐다. 포크송 '사랑해'는 한국 포크의 교과서로 고등학교 음악교과서 등재 등 한국 포크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기념비적인 데뷔앨범이 됐다. 이 노래가 국민애창곡이 된 데는 그럴만한 이유 하나가 더해졌다. 1972년 8월31일~9월2일 평양에서 열린 최초의 남북적십자회담에서 남측 수석대표 '이범석'과 북측대표단장 '김태희'가 손을 맞잡고 부른 노래가 '아리랑' '우리의 소원'이 아닌 '사랑해'였다. 매스컴에서 불을 붙여 놓자 국민적 관심이 폭발했다. 1972년 7월 4일. 중앙정보부장 이후락과 북한 부수상 박성철간에 발표했던 '7ㆍ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지 두 달이 채 안된 시기였다.



●그 어떤 노래도 '사랑해' 벽 못넘어

국내 대중 음악사에서 시대를 대변할 만한 노래는 수없이 많다. 그러나 라나에로스포의 '사랑해'를 넘는, 대중적 인기를 넘는 노래는 없었다. 일반 대중노래로 시대적 상황에서 탄생됐던 노래는 △윤심덕의 '사의 찬미'(1926년)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1935년) △김정구의 '눈물젖은 두만강'(1936년) △현인의 '신라의 달밤'(1949년) △현인의 '굳세아라 금순아'(1953년) △한명숙의 '노란 샤쓰입은 사나이'(1961년)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1963년)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1964년) △최희준의 '하숙생'(1966년) △남진의 '가슴 아프게'(1967년) △라나에 로스포의 '사랑해'(1971년) 등이다. 이후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윤수일의 '아파트', 김수희의 '남행열차',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 김건모의 '핑계', 클론의 '꿍따리 샤바라' 등으로 집약할 수 있겠다. 물론, 필자가 놓쳐버린 음악들이 수없이 많겠으나 '사랑해'를 뛰어 넘는 대중가요(포크송 포함)는 없었다.



●12번의 여성파트너 교체 '왜'

라나에로스포의 '한민(박윤기)'은 1968년 제대 후 종로 세기음악학원 강사로 일하다 1970년 학원 올겐 강사였던 작곡가 김학송의 소개로 김은희(예명 은희)를 만나 듀엣을 결성한다. 1971년 한국 포크사에 기념비적인 데뷔 앨범이 탄생하고 파트너인 은희가 미8군무대에서 솔로로 독립하고난 뒤 파란만장한 멤버교체의 역사가 시작된다. 두 번째로 숙명여대 작곡가 출신의 장여정과는 2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세번째 예그린 합찬단 출신의 최안순(6개월)과 2집 출반 이후 '산까치야'로 솔로로 독립했다.

네번째는서울 합창단 출신 이경란과, 다섯번째는 동아방송국 미모의 성우 오정선(1년 6개월)과 활동하다 탈퇴 (그녀는 '혼성듀오는 결혼할 사이라면 좋을 것 같다'는 의미있는 말을 남기고 떠남). 여섯번째는 1973년 TV드라마 '꿈나무'의 주제가를 불렀던 유리시스터즈의 '강인원'과 그룹 피노키오의 리더 권오진과 함께 5인조 그룹 'Young & 라나에 로스포'를 결성, 음악적 변화를 시도했다. 이후 일곱번째 허니비 씨스터즈의 조성자와, 여덟번째 여고시절 등 6편의 영화에 출연했던 이애순과 '고독'이라는 타이틀의 앨범 발표했다. 아홉번째 교회 성가대 출신의 유경숙과, 열번째 안혜숙과, 열한번째 하사와 병장의 이동근 소개로 만난 영등포여고 출신의 윤수정이었다. 열두번째는 2001년 초 라이브 업소에서 만난 김희진이 마지막 파트너였다. 당시 한민은 "음악을 할 만하면 탈퇴해서 괴로웠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애궂은 구설수 때문에 괴로워 했고 애정문제로 바라보는 눈길 때문에 죽을 심정이라고 술회한 바 있다. 그는 훗날 은희와 최안순이 최고의 파트너였다고 했다. 2005년 친딸인 박윤정과 활동하다 2014년 뇌출혈로 세상과 이별하고 만다. 허나 어쩌랴! 열두번의 멤버교체, 그것도 기록이라면 기록인 것을….



●1975년-별밤 2세대의 등장 -중후한 톤 정용주

1974년 이준용, 김인곤에 이어 1975년 별밤(MBC별이 빛나는 밤에) 2세대가 등장다. 그 선두에 정용주가 있었고 (고) 김형욱, 최유진, 정오차, 박경천, 최우남, 김만준, 국옥현, 나미경(여)이 입단한다.

커리어만큼이나 중후한 톤으로 노래하는 기타쟁이 정용주. 본인 스스로 가객이라고 불리는 걸 좋아한 가수다. 이제 중년을 지나 원로급 가수가 됐다.

통기타 하나로 지내온 세월. 수없이 많은 무대생활 중에도 넘어지면 일어서고 또 넘어지면 다시 서는 오뚜기 인생. 연륜만큼이나 팬 관리를 어찌도 그리 잘하던지. 주위의 부러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1975년 별밤데뷔는 (고)김형욱과 듀엣으로 시작했다. 어언 그의 노래 인생 43년이 흘렀다. 정용주에겐 특별한 이력이 있다. 2012년 4월15일 광주 증심사 입구 전통문화관에서 '혼례 콘서트'를 가졌다. '바위섬'의 김원중과 순창 출신 여성 포크싱어인 박강수의 우정출연으로 무대를 빛냈다. 특이한 이력 또 하나를 소개해 볼까.



●업소 열 때마다 열정ㆍ꿈 담아

정용주는 광주통기타 가수 중 13개의 업소를 소유했다. 업소를 만들 때마다 음악과 통기타의 꿈이 지속되기를, 그 꿈의 결정체인 무대를 스스로 어루만지며 애정을 불어 넣었던 곳이 그의 라이브 무대인 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그의 업소는 △제일극장 건너편 소리마당(1982년) △황금동 골목 소리마당(1984년) △조선대 앞 소리창고ㆍ황금동에 보물섬((1986년)) △장동로터리 브로드웨이ㆍ동명동 언제나 그 자리ㆍ장동 로터리 사랑노래ㆍ사직공원 언덕위에 집ㆍ사직파출서옆 천변 지하 사직골(1991년) △풍암동 산울림ㆍ매월동 호수(2000년) △예술의 거리 함박눈(2010년) △농장다리옆 산울림(2014년~현재) 등이다. 라나에로스포의 한민이 12번의 멤버를 교체했다지만 정용주는 13번의 무지개 빛 꿈을 실현시켰다.



●5ㆍ18 친구영령 앞에 바친 '바윗돌'

광주 5.18 민주항쟁 성지의 묘 앞에 비석을 어루만지며 통곡했던 정오차.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 K모군의 묘 앞에서 세상을 한탄하며 정의로움으로 다시 깨어나 이 모진 세상을 묘비, 너라도 바윗돌이 되어 굴러보라며 한과 눈물로 읊조렸던 글이 '바윗돌'이다.

'(중략)굴러 굴러 굴러라 굴러라 바윗돌/한맺힌 내 가슴 부서지고 부서져도/굴러 굴러 굴러라 굴러라 바윗돌/저 하늘 끝에서 이 세상 웃어보자'(바윗돌 중)

1975년 초여름 어느 토요일 오후. 별밤지기 소수옥 선배가 머쓱한 청년 하나를 데려와 실력 테스트(오디션)을 해보라고 했다. 짧은 머리에 깡마르고 시골티 풍기는 청년이 어깨에서 허름한 클래식 기타를 내려 놓았다. "어디 실력 좀 보자. 제일 잘하는 노래 한곡 해보렴.". 들려준 노래는 송창식의 '딩동댕 지난 여름'이었다. 음악성과 노래의 이해도, 기타실력, 자질은 충분해 보였다. 허나, 발음과 발성, 보이스 컬러, 긴박자의 음처리 등이 문제여서 '방송불가' 결정을 내리고 2곡 정도만 열심히 연습해 오라고 하고 돌려 보냈다. 그렇게 4주간을 '보이콧'했던 그다.

그 후 얼마나 세월이 흘렀을까. '고진감래'라는 단어를 이럴 때 쓰는 것일까. 1981년. 난 모든 음악생활을 청산하고 직장에 근무할 때다. 한 이발소에서 라디오를 듣다가 깜짝 놀랐다. '1981년 제5회 대학가요제'의 끝 순서가 방송되고 있었다. 최종 그랑프리 트로피를 정오차가 치켜 올리고 있었다. '바윗돌'을 처음 듣는 순간이었다. "녀석, 끈기 하나는 대단해! 그래 잘했다 정말."

2007년 필자가 미국 이민에서 돌아와 전화통화를 했을 때 그가 한 말이 생각난다. "소남 형! 형님은 내 음악의 길잡이요. 스승!"이라나.

정용주 독집음반

년도

타이틀

곡명

작곡

작사

2002

좁은 길 
그 위에서

이렇게 비가 내리면

고승하

정광덕

널위한 
마음

박종화

박종화

눈물

박문옥

김현승

분꽃

박문옥

류영대

그대 어느
산 그늘에

정세현

김용택

바다와 
여인

배창희

배창희

직녀에게

박문옥

문병란

세월이 
갈수록

박종화

박종화

기차는 떠나고(외국곡)   

2005

가객 
정용주 
산노래

설악가

이정훈

지리산

박문옥

박문옥

산에 
가보자

박종화

박종화

산아가씨(외국곡)     

자일의 정(작자미상)    

산길

박태준

양주동

산사람

이정선

이정선

부용산

안성현

박기동

한계령

하덕규

하덕규

무등산

한보리

김규동

정용주 콘서트

횟수

타이틀

년도

장소

1회

팬클럽 초청

2003

대촌 초등학교 
(분교)

2회

팬클럽 초청

2004

바우하우스
(소극장)

3회

팬클럽 초청

2005

영상쎈터 
(사직공원)

4회

가을 음악회

2005

5ㆍ18문화회관 
(누리재단 초청공연)

5회

팬클럽 초청

2006

시민회관 
(광주공원)

6회

산노래 
(산, 산, 산)

2006

문화예술회관 
소극장

7회

와인과 막걸리

2010

5ㆍ18문화회관 
(민주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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