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은숙 작가. |
지난 3일부터 22일까지 호주 멜버른 블랙캣갤러리 초대로 마련된 행촌문화재단의 2017 풍류남도 아트 프로젝트 '은숙씨의 밥상'전이 호주 동포들에게 가슴 뭉클한 고향의 밥을 선사했다. 전시회에서 김은숙(69)작가는 지난 1년 반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사진으로 기록한 해남의 계절밥상 20점을 선보였다.
가장 인상적인 관람객은 호주에서 유학중인 20대 여학생이었다. 3살때 한국에서 싱가폴로 이민 간 후 학업을 위해 호주로 건너왔다는 이 학생은 개량한복을 갖춰입고 수차례 갤러리를 오가다 결국 모아둔 용돈을 털어 작품 '꽃밥'을 구입했다.'꽃밥'은 '福'자가 새겨진 넉넉한 밥그릇에 하얀 수국이 소담스레 담겨진 작품이다.
행촌 문화재단 이승미 관장은 "한국인 관람객은 상차림 자체만 보고 뭉클함을 많이 느끼더라"며 "어릴때 기억이 떠올랐던 이들에게 뭉클함은 당연한것이었지만, 한국에서의 기억이 없는 어린 학생들이 뭉클함을 느끼는 것을 보고 DNA에 새겨진 문화적 동질성을 확인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 작가의 작품은 화려한 플래이팅이 돋보이는 식탁이 아닌 한국 가정집의 흔한 밥상 이라는 점이 관람객의 감성을 자극했다. 1년 반 동안 충실하게 남도의 향토밥상을 기록한 사진에는 40년차 주부의 진한 가족애가 뚝뚝 묻어나고 있다.
취미로만 그칠 뻔 했던 김 작가의 사진이 갤러리로 나오게 된 것은 이승미 관장의 역할이 컸다. 행촌문화재단이 기리는 고 행촌 김제현 박사(해남종합병원 설립자)의 며느리인 김 작가와 종종 식사를 하면서 김 작가가 차린 밥상에서 이 관장은 깊은 인상을 받았고, 사진으로 기록할 것을 제안했다.
이 관장은 "예술분야에서 처음에는 아마추어로 시작했다가 전문가가 된 경우를 많이 접했다"며 "그런 경우 오히려 전문가 보다 작위적이지 않고 진정성 있는 작품이 많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은숙씨의 밥상'은 예술성 추구가 목적이 아닌 40년차 주부가 3년을 목표로 계절밥상을 충실하게 기록한 일종의 진정성 있는 기록물이다. 질서있게 늘여진 그릇만 보면 사진마다 큰 차이를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릇 안에 담겨진 음식에 주목한다면 한장 한장의 사진이 모두 달리 보인다. 같은 김치지만 여름김치와 겨울김치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고, 4월의 음식과 12월의 음식이 다르다는 것도 알게된다.
김 작가는 "사진을 관람하다 보면 우리나라 김치류는 몇종류나 될까 의문을 품게되고 수십가지가 넘는 젓갈의 종류에 놀라게 될 것"이라며 "겨울에는 참꼬막, 여름에는 먹통째 먹는 갑오징어, 낙지호롱 등 해남에서 나오는 음식과 조리방법을 통해 해남의 문화를 엿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김 작가는 사진을 통해 '제대로 된 밥 한끼'를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다. '혼밥(혼자먹는 밥)'이 유행어처럼 번지고, 제대로 밥을 챙겨먹지 않고 간단한 음식으로 대충 한끼를 때우는 젊은 사람들의 모습에서 느꼈던 안타까움은 이 관장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던 또 다른 이유였다.
김 작가는 "밥을 먹는 것은 복을 누리는 것이기 때문에 대충 때워서는 안된다"며 "거창한 상차림은 아니지만 밥이란 원래 이렇게 먹는 것, 이렇게 따뜻하게 먹어야 하는것 이라는 것을 사진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김은숙 작가의 '은숙씨의 밥상'전은 오는 12월 3일부터 행촌미술관에서도 전시될 예정이다.
박상지 기자 sj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