喪家서 박장대소 윷놀이는 재생의 염원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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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喪家서 박장대소 윷놀이는 재생의 염원 담아
북두칠성 놀이
이윤선의남도인문
  • 입력 : 2017. 10.20(금) 00:00
윷판의 북두주천도 창안설 시의도. 김일권ㆍ이하우 제공

사람이 죽었나보다. 시월 말이라 날씨가 꽤나 쌀쌀했다. 방안에서는 부고장 발송 준비를 했다.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죽음의 옷이 준비되었다. 바느질 솜씨가 좋은 아낙들은 상복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마당 한쪽에서는 돼지를 잡았다. 잡은 돼지의 비계와 내장으로 듬북국을 끓였다. 마당에 내건 화덕으로 큰솥이 걸렸다. 몇 더미의 장작이 타올랐다. 돼지고기와 듬북이 장작불 위에서 흐물흐물해졌다. 마당에 차일을 쳤다. 이내 당골들이 왔고 씻김굿을 시작했다. 다행히 날이 좋아 별들이 총총했다. 듬북국 화덕은 모닥불 겸용이었다. 한 무리의 장정들이 덕석(멍석)을 내다 깔았다. 윷판이 벌어졌다. 이른바 종지기 윷이다. 당골의 노래가 깊어질수록 윷판의 사람들도 많아졌다. 팀을 나누고 찔림(판돈의 일부를 대는 일)을 했다. 때때로 함성이 온 동네를 울렸다. 어느 팀이 이겼나 보다. 판돈이 나뉠 때면 왁자지껄 웃고 떠들었다. 씻김굿판에 있던 이가 와서 개평(노름이나 내기에서 이긴 사람에게 조금 얻어가지는 공것)을 뜯어갔다. 이럴 수가 있나? 한편에서는 사람이 죽어 슬피 우는데 윷놀이라니. 그것도 박장대소하며 떠들다니 말이다.



왜 상가(喪家)에서 윷놀이를 할까?

더욱 이상한 것은 제청에 모인 사람들이 이들을 나무라지도 않고 오히려 같이 즐긴다는 점이다. 사람이 죽었는데 웃고 떠들며 즐기는 이 윷판의 정체가 뭘까? 이 상황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어쩌다 한번 윷놀이를 하는 것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 모든 상가(喪家)에서 필연적으로 연행하는 놀이다. 시대가 변하여 연행되지 않을 뿐이다. 근래에는 화투놀이로 변해버린 양상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마치 어떤 원칙처럼 행해졌던 놀이다. 상가에서 윷놀이가 없으면 허전하다. 뭔가 빠진 느낌이다. 그럼 놀이화된 의례라도 된단 말인가? 그렇다. 이것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의도된 놀이다. 윷판이 상가에서 연행되는 이유를 보다 깊이 따져볼 필요가 여기 있다. 일반적으로는 밤샘을 하기 위해 선택한 놀이라고들 한다. 물론 그건 기능도 있다. 하지만 모든 상가에서 윷놀이를 보편적으로 행했는데, 밤샘을 하기 위해 하는 놀이라고만 해석하기에는 뭔가 부족해 보인다. 보다 적극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현상이 명료한데도 소극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연구자의 직무유기다.



상가 윷놀이의 정체, 북두칠성 놀이

기왕의 윷놀이 해석은 오행이론 중심이었다. 최남선의 설명이다. 고대 부여의 족장들이 맡았던 권역과 관계있다. 각각 말, 소, 돼지, 개를 토템 삼는 부족을 말한다. 도, 개, 걸, 윷, 모가 여기서 왔다. 조선후기의 실학자 이익은 고려의 유속이라 했다. 신채호도 부여국서 시작된 고유의 놀이라 했다. 일군의 학자들은 북극성을 중심 삼는 삼원 28수의 우주관 놀이라 했다. 조선중기의 김문표는 천원지방설까지 얘기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동양 고유의 공간 관념 말이다. 재야학자들은 천부경까지 끌어들여 우주관을 얘기했다. 과연 그럴까? 놀이나 민속이 시대에 따라 변천하는 것이니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각설하고 이런 저런 해석들 중에서 칠성놀이라는 데까지는 근접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독 상가에서 이 놀이를 행하는 이유를 명료하게 밝힌 것 같지는 않다. 왜 칠성놀이일까? 사람이 죽어 시신을 뉘는 칠성판을 연상해보라. 망자나 관을 반드시 일곱 매듭으로 묶는 관습을 상기해보라. 쉽게 그림이 그려진다. 그렇다. 이것은 망자가 가는 칠성의 별, 바로 북두칠성놀이다. 당연히 자미원(紫微垣)의 자궁이니 재생의 염원을 담은 놀이다. 나는 일찍이 졸고를 통해 윷놀이가 칠성판놀이며 궁극적으로는 망자의 재생을 염원하는 관념에서 시작된 놀이라는 점을 밝힌 바 있다. 이를 설명하는 데는 남도지역에서 성행했던 쪽윷(종지기 윷이라고도 한다)이 적격이다. 그렇다고 정월 초에 행하는 왕윷놀이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것 또한 새해의 거듭남을 도모하는 놀이이기 때문이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졸고를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윷놀이에서 북두칠성은 어떻게 표현되나?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청동기 이후의 유물로 발굴되고 있는 윷판바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윷놀이가 칠성놀이라는 점을 명료하게 설명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윷의 말판은 모두 29개다. 정 가운데가 북극성이다. 이를 제외하면 28개의 말이 나온다. 정중앙을 중심으로 4등분되어있다. 무엇일까? 바로 칠성의 4계를 나타낸다. 북두칠성의 운행을 상징한다. 북두칠성으로 변한 그림을 참고해보라. 칠성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돌아 다시 복귀한다. 일곱 개의 별이 네 번을 돌아오니 총 28개다. 왜 돌아오는가? 사시사철이 순환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재생이다.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윷놀이가 궁극적으로 망자의 재생을 염원하는 놀이임을 알 수 있다. 칠성판에 시신을 모시는 것도 각종 의례에서 반드시 일곱 매듭의 고를 만들어 행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그래도 수긍하기 어렵다면 또 하나 증거가 있다. 윷판 바위가 그것이다. 이 연구는 이하우, 김일권, 송화섭 등에 의해서 수편의 논문으로 발표된 바 있다. 윷판형 암각화라 한다. 고인돌 위나 야산의 꼭대기 혹은 자연암 등에서 발견되며 구석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적이다. 농경을 위한 천문관측의 목적이나 농점의 도구로 활용되었다. 북칠성의 순환을 그린 것이므로 일종의 천체 모형도인 셈이다. 이하우의 연구에 의하면 윷판평 암각화는 한반도 남부지방에 폭넓게 분포한다. 물론 중국 동북지역에서도 발견된다. 남도에서는 익산, 정읍, 부안, 남원 등 전북지역에서 주로 발견된다. 전남에서는 광양의 윷판바위가 거론되고 있다. 나도 이 정보를 갖고 광양의 여러 곳을 수소문했다. 하지만 아직 찾지 못하였다. 포항, 안동, 경주, 울산, 창녕 등지에 산재하는 점을 보면 전남지역에도 분포할 성싶다. 숙제로 남겨둔다.



계절이 다시 오는 것처럼 한 번 간 인생도 다시 오기를

사람의 일생은 유한하다. 한번 가면 오지 못한다. 그래서 불가역적이라고 한다. 사계는 어떤가? 올해 왔던 봄이 내년이 되면 어김없이 또 온다. 어제 떴던 해와 달이 오늘 다시 뜨고 진다. 순환이다. 그래서 가역적이라고 한다. 고대인들이 상상했을 것이다. 한번 간 봄은 다시 오는데 우리 인생은 왜 다시 오지 못하는가. 종교와 재생의 관념이 이런 고민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죽음 의례가 재생을 염원하는 방향으로 설정되고 구조화되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의례와 놀이의 기능이 여기서 나왔다. 한번 간 계절이 다시 오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다시 올 수 있게 하자는 취지 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죽음의례에서는 죽은 자들이 살아나거나 거듭나고 재생하는 의식과 놀이들로 구성된다. 관련한 상징물을 만들어 세우고 관련한 연극을 꾸미며 관련한 노래를 지어 부른다. 왜? 불가역적인 인생을 가역적인 극을 통해 재생시키기 위해서다. 날마다 다시 뜨는 해와 달처럼 혹은 계절처럼 가역적인 인생으로 바꾸어놓기 위해서다. 상가(喪家)의 윷놀이가 바로 그것이다. 사람은 죽었지만 그 사람이 다시 살아나오기를 바라는 염원이 들어 있다. 칠성의 별 북두칠성 놀이를 죽음의 의례와 더불어 행하는 것이다. 죽음에만 해당되는 얘기기 아니다. 우리의 연간 풍속에도 혹은 일상에도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적용되는 얘기들이다. 어제 저녁 기울었던 해가 오늘 아침 다시 떠오르는 것처럼 날마다 달마다 거듭나고 재생하는 삶의 지혜를 상가의 윷놀이를 통해서 깨달았으면 싶다.


남도인문학 TIP 암각화 윷판바위는 어디에 있을까



윷판바위 연구로 널리 이름을 알린 이하우의 논고를 인용해 윷판바위를 간략하게 언급한다. 근래 발견된 임실 상가리 윷판바위 암각화는 한반도 최대 규모의 유적이다. 윷판바위는 고고학, 미술학 자료는 물론 윷놀이의 민속, 문화사적 학술연구가 절실히 요구되는 유적이다.

고인돌 개석에서 윷판형 암각화가 조사된 곳은 포항시 북구 흥해읍 칠포리 상두들, 포항시 남구 동해면 흥환리 진골마을 뒷산 공개산 윷판재의 고인돌 등이다. B.C 5~4세기경 한반도 남부지방에서 확산되는 묘역식 고인돌의 한 유형에 윷판이 암각된 것이다.

발견된 유적들의 분포를 간략하게 기록해둔다. 포항시 흥해읍 칠포리, 포항시 북구 청하면 신흥리, 남구 동해면 흥환리, 안동시 일직면 송리, 임동면 대곡리, 수곡리, 예안면 태곡리, 일직면 조탑동, 예안면 인계리, 도산면 토계리, 고령읍 지산리, 운수면 월산리, 성산면 무계리, 쌍림면 산당리, 송림리, 경주시 반월성 석빙고, 남산 용바위, 구황동 황룡사지, 영양군 청기면 상청리, 울진군 근남면 수산리, 울산시 동구 오불동산, 창녕읍 말흘리 화왕산, 익산 금마면 기양리, 미륵사지, 낭산면 호암리 우금마을, 왕궁면 왕궁리, 일심 신평면 가덕리 상가마을, 정읍시 입석리 두승산 망화대, 진안 상전면 성산리, 남원시 삼동면 목동 풍곡계곡, 서울 강북구 우이동 북한산, 충북 단양군 영춘면 상리,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망탑봉, 충남 공조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 대전 동구 대동, 왕자후 묘, 강화도 강화산성 남장대지 전돌, 제주 애월읍 고성리, 개성 송악동 만월대 궁지, 만주 길림성 우산하 등이 그것이다.

이하우도 광양에 윷판바위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확인한 바 있다. 하지만 정확한 장소는 불명이라 하여 후학들에게 숙제를 남겨주고 있다. 관련 연구의 확장을 위해서는 남도지방의 관련 유적을 전방위로 찾아내는 일일 것이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인문학 시민기자ㆍ남도민속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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