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겨울 신안 섬으로 유배를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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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칼럼
이 겨울 신안 섬으로 유배를 떠나보자
  • 입력 : 2017. 12.11(월) 00:00


지금도 가끔 시간이 날 때면 흑산도를 자주 찾는다. 흑산도는 해상왕 장보고의 흔적이라는 반월산성부터 과거 중국의 사신이 머물렀다는 관사터와 봉화대 등 수많은 역사 유적들이 산재한 아름다운 섬이다. '남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물결은 천번 만번 밀려오는데/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다/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흑산도 아가씨'. 국민가수 이미자가 불러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흑산도 아가씨'의 고향이기도 하다.

흑산도는 또 대표적인 유배의 땅이었다. 조선말엽 병자수호조약을 반대하다 흑산도로 귀양온 면암 최익현은 이곳 흑산도 천촌마을 입구 지장암벽에 '기봉강산 홍무일월(箕封江山 洪武日月)'이라고 새겼다. 조선이 고조선 기자부터 지금까지 어어져 온 독립국가라는 뜻이다. 손암 정약전도 절해고도 흑산도와 우이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는동안 오키나와, 필리핀, 마카오를 표류했던 홍어장수 문순득의 경험을 기록한 '표해시말'을 편찬했다. 흑산 대둔도 청년 장창대의 도움을 받아 지은 '자산어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수산학 연구서로 평가받고 있다.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어쩌면 동생 정약용을 보호하기 위해 머나먼 흑산도까지 귀양온 정약전에게 흑산도는 고통과 두려움에 젖은 눈물의 바다가 아니고 평생 겸손과 애민을 가르쳐 준 위대한 스승이었다.

면암의 유적도 여전히 꼿꼿하다. 1876년 일본이 강화도조약을 강요하자 도끼를 들고 광화문에 선채 '왜적을 물리치지 않으려면 나의 목을 베라'고 외쳤던 면암은 이곳으로 유배를 온 뒤 서당을 열고 섬마을 아이들에게 꼿꼿했던 조선 선비의 기개를 심어줬다. 이뿐이 아니다.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에서 그의 대표작 '세한도'를 남겨 누구에게나 한 번쯤 찾아올 인생의 겨울을 맞는 심경을 밝혔다. 조선문인화의 대가 우봉 조희룡도 3년의 임자도 유배 시절 최절정의 작품들을 남겼다. 유학자 김평묵 같은 많은 지식인들도 유배된 섬에서 좌절하지 않고 유학의 정신과 충정을 새기고 지역민들에게 학문을 전하는 역할을 감당했다. 어쩌면 흑산도 아가씨의 노랫말도 서울을 그리워하는 아가씨를 노래했다기보다 흑산도로 유배와 귀양살이했던 선비들의 아픔을 노래한 것은 아니었을까.

사실 유배의 역사는 꽤 오래전부터 확인된다. 중국의 은나라에서, 고대 그리스에서 죄인을 유배 보내는 기록이 확인되고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에 최초로 나온 후 조선시대 들어 어느 때보다 성행했다. 지금도 '유배'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안정된 지위에서 억울하게 밀려나거나 배제되고, 외압에 의해 변방으로 쫓겨나는 일들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신과 모략의 정치판에서 밀려난 시대의 거목들은 유배지를 찾아 겪었던 고통과 절망, 외로움을 학문과 창작으로 승화시켰다.그들과 함께 했던 섬사람들도 유배인들로 인해 고통을 받기도 했지만 교류를 통해 새로운 문물과 학문을 익히는 기회로 삼았다. 섬사람들만이 갖고 있었던 전통지식과 문화를 그들에게 전해주기도 했다. 치열하게 경쟁하고 대립하며 살던 사람들에게 물러남과 멈춤의 미학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 것도 섬 사람들이었다.

다사다난했던 2017년을 보내고 새해를 기다리면서 남도의 섬이 유달리 애틋하다. 유배문화가 곳곳에 베인 신안의 섬은 겨울이라야 제격이다.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여름도 좋지만 절대고독과 자기성찰의 힘겨운 싸움 끝에 만들어진 수많은 결과물 들이 곳곳에 산재한 겨울의 섬은 삶의 여정에서 잊고 있었던 기다림과 겸손, 애민의 정신을 번쩍 깨어나게 만든다. 학문적 성과, 정신적 흐름들도 겨울에 찾아야 그 깊은 의미와 참다운 맛을 음미할 수 있다. 유배인들의 자취를 찾아 그들이 걸어갔던 길을 걷고, 그들이 고독과 싸우며 세상을 향한 울분을 학문으로, 철학으로,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 현장에서 앞만 보고 달려왔던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최고의 힐링이다.

얼마 전 누군가가 다산 정약용이 묵묵히 유배를 받아들이고 수많은 역작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시끄러운 세상의 소리를 걸러준 남도의 자연과 그곳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억센 남도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지금,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들의 맑고 깊은 정신을 체험할 수 있는 사색과 성찰의 섬, 억센 민초들의 삶이 켜켜히 숨겨진 남도의 섬으로 스스로의 유배를 떠나 보기를 권한다.


고길호 신안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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