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걱정 마, 봄이 오고 있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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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칼럼
딸아 걱정 마, 봄이 오고 있잖니
  • 입력 : 2018. 02.06(화) 21:00


지난해 이맘때였을까. 대학 졸업을 앞둔 딸아이에게 졸업식 날짜를 물었다. 어려운 경쟁률을 뚫고 들어간 대학인지라, 탈 없이 학사모를 써준 딸아이에게 꽃다발이라도 들려줄 요량에서였다. 그런데 딸아이의 반응은 여간 시큰둥했다. 엄마,아빠가 자신의 졸업식에 참석하는 게 여간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황당함에 앞서 순간 배신감(?)이 치밀어 올라, 한 마디 하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우리가 제 놈을 어떻게 키웠는데….

이어지는 딸아이의 말은 더욱 가관이었다. 졸업식장에 들어가지 않고 학과 사무실에 들러 졸업장을 받아오겠다는 것이다. 요즘은 그렇단다. 그러면서 졸업식장에 그들이 앉아있지 못 할 수밖에 없는 캠퍼스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리고 덧붙이는 한 마디는 나의 가슴을 먹먹케 했다.

"엄마아빠 죄송해요, 그리고 미안해요!" 2년씩이나 휴학까지 하면서 취업 준비를 했건만, 별다른 성과 없이 교문을 나서는 것에 대해 제 깜냥엔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모양이다. "잘 될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라고 격려는 했지만, 부모로서 안타까운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이게 비단 나만의 이야기이겠는가. 아마, 이 시기 대학 졸업을 앞둔 자녀가 있는 부모들이라면 모두 나 같은 마음이리라.

2월, 드디어 졸업시즌이다. 대학 문을 나서는 그들은 가슴 벅찬 기쁨보다 미래에 대한 걱정에 표정들이 밝지 않다. 따라서 부모들의 마음도 편할 리 없을 테고, 애지중지 길렀던 제자를 거친 광야로 내보내야만 하는 스승들의 마음인들 오죽하겠는가.

올해도 어김없이 전국의 모든 대학에서 50여만 명에 가까운 졸업생을 쏟아낸다. 이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내 아이처럼 자신이 원하는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고학력 실업자로 내몰릴 것이다. 한국은 이미 10년 전 대학진학률이 80%에 육박했다. 이제 대졸 학력자 비율이 세계 1위라는 것도 내놓고 자랑할 수 없게 된 마당이다. 대학이 아무 대책 없이 고학력의 청년실업자를 양산하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할 텐데, 큰 걱정이다.

더욱 큰 문제는 대학을 졸업해도 그들을 수용할 수 있는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요즘 국내 경기가 좀처럼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기업들은 올해도 신규채용 규모를 줄인다고 한다. 이 같은 현상이 지속된다면 3포 세대, 5포 세대를 넘어서 10포 세대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날 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15~29세 청년 실업률은 9.8%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 8.1%, 2012년에는 7.5% 수준이었지만, 4년 만에 2.3%포인트 상승해 10%를 육박하고 있다. 특히 한 번도 직업을 가져보지 못한 실업자를 뜻하는 이른바 '순정 백수' 비율도 19.3%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비율은 2000년대 중반까지 11%에 그쳤으나, 2015년 19%로 급상승했고, 2년 연속 19%대를 이어가고 있다. 정말 큰일이다.

그동안 역대 정권에서 고학력 실업자 문제를 놓고 숱한 논의가 있어왔다. 그러나 모두 장밋빛 청사진에 그치고 말았다. 문재인 정부 역시 청년일자리 문제의 해소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았다. 새 정부의 국정 의지를 반영하듯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도 꾸려졌다. 아직은 피부에 와 닿을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얼음장 밑으로 봄기운의 스멀거림이 느껴지고 있다. 밝은 달을 보기 위해선 보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청년일자리 문제는 급해도 너무 급하다.

엊그제가 입춘이다. 대학문을 나서는 우리 젊은이들의 가슴에도 한시바삐 봄의 기운이 꽉 들어차길 갈망해본다.



김선기

시문학파기념관장ㆍ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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