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마라톤 풀코스 완주와 영광의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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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칼럼
생애 첫 마라톤 풀코스 완주와 영광의 상처
  • 입력 : 2018. 04.29(일) 21:00




50대 후반에서야 마라톤에 입문, 이제 1년 남짓 됐다. 새벽마다 동네 잔디축구장 트랙을 1시간씩 달리며 기초체력을 다졌다. 주말이면 마라톤에 입문시켜 준 친구와 집근처 용산교~광주천변 산책로~너릿재 까지 왕복 20㎞를 달리며 지구력을 길러왔다. 지금까지 마라톤 하프코스만 4회 참가했을 뿐 풀코스를 뛴 적은 없다. 지난 22일 전남일보사 주최 '4ㆍ19혁명 기념 제15회 호남국제마라톤대회' 풀코스에 내 생애 첫 풀코스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사실 3주전 영산강마라톤대회, 1주전 장흥마라톤대회 하프코스에 참가했다. 대회 참가를 앞두고 의욕이 넘쳐 연습을 많이 한 탓에 그동안 피로가 누적 되기도 했다. 대회가 열리는 날 광주상무시민공원에 도착해 보니 비가 내리는데도 마라토너들이 운동장 트랙을 돌며 몸을 풀고 있었다.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그들의 모습에서 마라톤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반바지와 민소매 상의로 옷을 갈아입고 가슴에 번호표를 붙이며 완주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귀빈 소개와 축사가 끝나자 풀코스 참가자가 제일 먼저 출발하니 출발 장소로 모여 달라는 장내 아나운서의 안내 방송이 나올 땐 들뜬 기분을 주체하기조차 힘들었다. 풀코스는 흔히 인간 체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운동이라고 하는데 걱정과 긴장하는 마음으로 출발선에 섰다. 대열 속에는 주자들에게 도움을 주기위해 빨간색 민소매 상의를 입은 광화문마라톤클럽 소속 페이스메이커들이 가슴에는 완주 시간이 적힌 천을 붙이고, 등에는 노란 풍선을 끈으로 길게 매단 채 군데군데 섞여 있었다.

첫출전이니 만큼 완주에 목표를 두고 4시간15분 페이스메이커 옆에 서서 인사를 나눴다. 풀코스는 광주상무시민공원을 출발해 영산강 상류를 따라 달리다가 나주평야의 쌀알을 형상화한 승촌보 다리를 넘어 다시 주변 배꽃이 피어있는 나주대교 밑을 더 지난 곳에서 반환점을 돌아오는 42.195㎞ 거리다.

참가자들은 진행자의 유도에 따라 함성을 힘차게 지르고 카운트다운을 함께 외친 후 출발선을 박차고 앞으로 뛰어 나갔다. 처음에는 페이스메이커와 보조를 맞춰 시속 10㎞로 달렸다. 15㎞ 쯤 달리니 페이스메이커의 속도가 느리게 느껴지면서 더 빠르게 달릴 수 있겠다는 자신감, 기록을 단축시키고 싶다는 욕심이 '봄바람에 나뭇가지 살랑이 듯'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점점 속도를 높였다. 페이스메이커들 조차 따돌리며 앞서가기 시작했다. 현재 속도만 유지한다면 4시간 안에 완주가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풀코스 첫 도전에서'서브4' 기록 달성이라니. 생각만 해도 엔돌핀이 샘솟듯 했고 발걸음은 날아갈 것처럼 가벼웠다. 그러나 "초반 무리하지 않아야 완주할 수 있다"던 친구의 조언을 거스른 게 화근이 되고 말았다. 30㎞ 지점부터 몸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4시간15분 페이스메이커가 어느새 내 앞을 바람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4시간30분 페이스메이커도 나를 앞질러 갔다. 속도는 자꾸 쳐지고 앞서가는 사람은 점점 멀어지더니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뒤따라 오던 여자 선수들 마저 나를 추월해 내달렸다. 점차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헐떡거렸고 발은 무거운 돌을 매단 듯 천근만근처럼 느껴졌다.

저만치 급수대가 보였다. 물컵을 들고 벌컥벌컥 마시고 얼굴과 눈에 물을 부어 땀을 씻었다. 토마토를 한 움큼 쥐고 우걱우걱 씹으며 다시 달렸다. 그렇지만 이미 지쳐버린 몸으로 초반처럼 달려 나갈 수는 없었다. 없던 힘을 다시 내보기로 했다. 40㎞지점부터 다시 도심 대로에 접어 들었다. 시민들이 지친 나를 보자 다 왔다며 힘내라는 응원의 외침과 함께 박수를 쳐줬다. 마침내 출발을 했던 운동장으로 접어들었다. 결승선을 통과하며 4시간35분 기록을 확인하자 급격한 피로가 밀려왔다. 행사관계자가 다가와 허락을 받고 생수를 온몸에 부어줬다. 체온이 높아진 상태에서 차가운 물을 맞으니 피부에 닭살 같은 소름이 돋았다. 갑자기 심장이 빠르고 불규칙하게 뛰는 것처럼 느껴졌다. 앰블런스를 타고 경기장 인근 상무병원 응급실에 도착해 수액을 맞고 피검사를 했다. 병명은 오랜 시간 무리한 운동 결과로 발생한 '횡문근융해증'과 '급성신장기능이상' '심한 탈수증세'였다. 수액만 맞고 퇴원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사는 최소4~5일 입원해서 신장수치를 지켜보자고 했다. 만약에 신장수치가 더 나빠지면 급성신부전증으로 투석을 받게 될 수도 있다는 말에 겁이 덜컥 났다. 나이가 있으니 마라톤 같은 격한 운동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권했다. 하지만 마라톤을 시작한 뒤 느끼고 있는 성취감과 자신감을 생각하면 쉽게 그만두기는 어려울 듯하다. 병상에 누워 있으니 건강의 소중함이 새삼 크게 느껴졌다. 퇴원을 하면 건강을 생각해 풀코스 보다 하프를 주 종목으로 운동해야 겠다. 경쟁과 욕심을 버리고 나이와 체력에 맞는 속도로 달리기 자체를 즐기고 싶다.


서영배

장흥 장평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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