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독.살균 작용 뛰어나… 서민들 여름나기 ‘푸른 보약’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백미영 음식이야기
해독.살균 작용 뛰어나… 서민들 여름나기 ‘푸른 보약’
백미영의 음식이야기
매실
  • 입력 : 2018. 06.28(목) 21:00
  • yglee@jnilbo.com
필자 제공
빙자옥질(氷姿玉質)이여 눈 속의 매화로구나 가만히 향기 놓아 저녁달을 기약하니 아마도 아치고절(雅致高節)은 너 뿐인가 하노라

조선 말기 가객 안민영이 지은 ‘매화사’ 8수 중 세 번째 수이다. 매화는 우리 고전 시가에 자주 등장하는 자연물이다. 여기에 언급된 빙자옥질(氷姿玉質)은 ‘얼음같이 맑은 모습과 옥같이 깨끗한 자질’이라는 뜻으로, 눈이 채 녹지 않은 겨울 언저리에도 스스로의 성품을 지키며 강한 생명력을 드러내는 매화를 사랑한 우리 선조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시대까지 매화의 흔적은 간혹 보일뿐 그리 많지는 않다.

고려 후기에 들어오면서 매화는 서서히 선비들의 작품 속에 녹아들어 갔다. 매화가 정말 만개한 시기는 아무래도 조선왕조에 들어오면서부터다.

매란국죽(梅蘭菊竹) 사군자의 첫머리에 꼽히고, 세한삼우 송죽매(松竹梅)로 자리매김하면서 매화는 조선사회를 대표하는 지식인들의 벗이자 멋이 되었다. 특히 퇴계 이황의 매화사랑은 몹시 각별했다. 매화를 노래한 시를 모아 ‘매화시첩’을 묶었고, 문집에 실린 것까지 포함하면 무려 107수의 매화시를 남겼다. 퇴계의 시에서 매화는 매형(梅兄), 매군(梅君), 때로는 매선(梅仙)으로 표현되어 귀한 대접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梅’자에는 ‘나무(木) 중 항상(每) 가까이 두고 보는 나무’라는 뜻이 들어있다. 그래서 이름난 정자나 고택에는 어김없이 매화나무가 심어져 있다. 양반가 뿐 아니라 사찰의 경내에 자리한 매화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특히 남도의 이름난 사찰에는 어김없이 매화가 있고 그 내력도 함께 전한다.남도의 매화는 금둔사 납월매로부터 시작된다.

금둔사 매화 중에서도 가장 먼저 피는 홍매화는 엄동설한 납월(음력 12월)에 꽃망울을 터트리기 때문에 납월매라 부른다.선암사의 선암매도 유명하다. 특히 원통전 뒤편의 매화나무는 수령이 600년이 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화엄사의 흑매도 독특하다. 홍매화의 분홍빛이 어찌나 진한지 특히 해를 안고 보면 붉다 못해 검기까지 하다 하여 붙여진 별칭이다. 백양사의 고불매는 1863년 대홍수를 피해 지금의 자리로 절을 이건하면서 옮겨 심은 것이다. 고불(古佛)은 ‘인간 본래의 면목’을 뜻한다. 꽃을 보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열매가 주는 혜택도 만만치 않았다. 절 살림을 공양에 의지하던 시절 여러 집의 음식이 섞이는 과정에서 생겼을 문제를 매실이 해결해 주었다.

또 여름철 먼 길을 걸어 수행하는 스님들이 절에 당도하면 매실차를 대접했고, 길을 떠나는 스님들에게는 도중에 물을 갈아 마시거나 음식으로 탈이 났을 때 상비약으로 매실 절임이나 매실 환을 챙겨주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궁중에서 임금님의 수라에 올리는 고깃국을 소금과 매실로 간을 맞추고 누린내를 제거한 기록도 전한다. 그리고 왕실 내의원에서는 매실 등으로 만든 제호탕(醍瑚湯)을 5월 단오 날 왕에게 진상했다.

왕은 이를 정승들에게 하사했고 이 풍습이 여름철 반가의 중요한 음료로 전해졌다. 중종실록 46권, 영의정 김전이 병 때문에 사직하려 하자 다음과 같은 말로 답을 내린다. “경은 나의 음식에 염매(鹽梅) 구실을 하고 나의 마음을 잘 계발해 주었으며, 자신의 청렴한 덕을 남들이 알까 염려하고 아량(雅量)은 물정(物情)을 잘 진정시켜 왔는데, 만일 경을 휴양(休養)하도록 윤허한다면 누구에게 의지하고 누구에게 일을 맡기겠는가?”여기에서 염매는 소금의 짠맛과 매실의 신맛을 뜻한다. 소금과 매실로 음식의 맛을 조리하듯 신하가 임금을 도와 선정(善政)을 해나가게 하는 것을 뜻한다.

매화나무는 꽃이 지면 곧장 열매를 준비한다. 겨울을 강인하게, 혹은 우아하게 보낸 매화의 열매는 매우 성실하다. 탱글탱글 여문 과육 안에 겨울을 이겨낸 꽃의 기운이 그대로 들어있기 때문이다.매실은 벌과 해충이 나오기 전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벌레가 알에서 깨어나기 전에 거두어들인다. 이렇게 수확한 청매는 꽃 못지않게 청결함을 지닌 열매로 손꼽힌다.

매실의 성분은 크게 수분, 당분, 유기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5% 가량을 차지하는 유기산은 해독 작용과 살균 작용이 뛰어나 매실에게 ‘푸른 보약’이라는 별명을 안겨주었다. 유기산의 신맛이 타액선을 자극하면 침의 분비가 왕성진다. 이러한 사실은 송(宋)나라의 유의경(劉義慶)이 위진남북조시대 명사들의 일화를 담은 ‘세설신어(世說新語)’의 가휼(假譎)편에 전해지는 ‘망매지갈(望梅止渴)’ 고사에 잘 나타나있다.

중국 위(魏)나라의 조조(曹操)가 대군을 이끌고 행군을 하고 있었다. 한여름 무더위에 지친 장병들은 마실 물도 없이 지쳐가고 있었다. 이를 본 조조가 꾀를 내어 병사들을 향해 ‘저 산 너머에 매화나무 숲이 있다. 어서 가서 새콤달콤한 매실을 먹으면 갈증을 풀 수 있을 것이다(前有大梅林 饒子 甘酸可以解渴).’라고 외쳤다. 매실이라는 소리를 들은 병사들의 입 안에 자연스레 침이 돌면서 일시적이나마 갈증을 해결할 수 있었다.

매실은 서민들의 벗이기도 하다. 서민들에게는 꽃보다 과일로 더 친숙하다. 일상생활 속에서 상비약으로 음식으로 두루두루 활용된다.매실은 대표적인 알칼리 식품으로 다른 과일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그 효과나 성분이 풍부하여, 체질개선 효과를 가지고 있다. 또한 여름철 갈증 해소뿐만 아니라 살균과 향균작용을 도와 식중독을 예방하기 때문에 여름에 꼭 필요한 식품으로 꼽힌다. 그래서 보통 매실청, 매실식초, 매실잼, 매실주, 매실장아찌 등으로 만들어 먹는다. 완숙 과일을 수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매실은 다른 과일에 비해 수확기간이 짧다. 수확기는 5월 하순부터 6월 중순까지이며, 망종(芒種 . 6월 6일 무렵) 이후 수확한 매실이 가장 효능이 뛰어나다. 간혹 덜 익은 풋매실에 들어있는 아미그달린이라는 성분 때문에 그 좋은 매실을 포기하는 사람도 보인다. 그러나 이 성분에 중독되려면 풋매실 100~300개를 한꺼번에 먹어야한다. 또 아미그달린은 덜 익은 씨앗에 들어있는 성분이기 때문에 충분히 여문 청매를 선택하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된다.매실은 수확시기와 가공방법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껍질이 연한 녹색이고 아직 과육이 단단하며 신맛이 강한 것을 청매(靑梅)라고 한다. 청매가 익으면 노란 빛을 띠는 황매(黃梅)가 되는데 향이 아주 좋다. 청매를 증기에 쪄서 말린 것을 금매(金梅)라고 하며, 옅은 소금물에 청매를 하루 밤 절인 다음 햇볕에 말린 것을 백매(白梅)라 한다. 청매를 따서 껍질을 벗기고 짚불 연기에 그을려 만든 것을 까마귀처럼 검다하여 오매(烏梅)라 한다. 오매와 백매는 오래전부터 약재로 이용되어 왔다. 꽃과 열매가 이처럼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나무가 또 있을까? 그렇다면 이 나무는 매화나무라 불러야할까, 아니면 매실나무라 부르는 것이 좋을까?답은 간단하다. 꽃이 좋은 사람은 매화나무라 하고, 열매가 더 좋은 사람은 매실나무라고 하면 된다.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고 둘 다 좋다면 꽃피고 열매 맺는 시기에 따라 적절히 부르면 될 일이다. 오늘은 건강한 여름나기를 위해 매실을 준비해보는 것도 좋겠다. 마지막으로 평생을 매실과 함께 한 어느 촌부의 시 한 구절을 소개하며 마무리를 대신한다. 사람이 그리워서 매화꽃 심으면서 꽃아 니는 내 딸이제매실아 니는 내 아들이제아침이슬아 니는 내 보석이제- 홍쌍리 作 ‘梅’ 일부


매실의 효능


매실의 가장 중요한 효능은 바로 해독작용이다. 매실은 ‘음식물의 독, 피 속의 독, 물의 독’을 없앤다는 말이 있다.

음식으로 탈이 나거나 물갈이를 할 때 치료약으로 탁월하다.또 매실의 신맛은 소화액을 촉진시켜 소화불량을 해소하고 위장장애를 치료한다.

그래서 식사 후 매실차를 후식으로 먹으면 좋다.‘동의보감’에 ‘매실은 맛이 시고 독이 없어, 기를 내리고 가슴앓이를 없앨 뿐만 아니라 마음을 편하게 하고, 갈증과 설사를 멈추게 하고 근육과 맥박이 활기를 찾게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매실의 유기산은 신진대사를 활발히 하고 피로회복을 돕는 효과가 있다. 특히 회식자리가 많은 직장인들에게는 매실이 간기능을 회복시켜주며 해독작용으로 숙취해소에도 도움을 준다.

매실의 풍부한 칼슘은 여성에게 특히 좋다. 칼슘이 부족하면 빈혈이나, 생리불순, 골다공증이 올 수 있는데 매실을 먹으면 이러한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다.

게다가 장의 운동을 도와 변비를 해소하고 매실 속 비타민은 피부미용에도 효과적이다.



국립소록도병원 한센병박물관 학예사 백미영의 음식이야기
yglee@jnilbo.com
백미영 음식이야기 최신기사 TOP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