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창>‘서머힐’이 던지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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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칼럼
<교육의 창>‘서머힐’이 던지는 질문
송경애 새별초등학교 교감
  • 입력 : 2018. 10.30(화) 21:00
  • sjpark1@jnilbo.com
시험도 숙제도 없는 학교 ‘서머힐’ 이야기가 번역되어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80년대, 그러니까 삼십 여 년 전의 일이다. 교대를 다니던 나는 동기들과 ‘이런 학교가 진짜로 있어?’, ‘꿈 같은 이야기!’, ‘우리나라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같은 의견을 나눈 후 잊고 지냈다. 이후에도 가끔 서머힐이 회자되곤 했지만 제도 교육의 수혜자로 살았던 내게도 문제의식의 한계가 있었을 터. 틀 안에 가두어놓았던 20대의 꿈이 안쓰럽기만 하다. 허구적 상상을 진짜 세계의 ‘현실’로 만들어온 게 인간의 역사인데 말이다.

얼마 전 “우리는 누구와 살고 있는가?”-다양성, 포용 그리고 평화-라는 주제로 8번째 세계인권도시포럼이 열렸다. 지난 20일에 이어진 도시와 어린이청소년 세션의 주제는 ‘학교 민주주의, 그리고 민주시민교육’이었고, 그곳에서 다시 서머힐을 만났다. 가는 길이 무척 설레었다. ‘학교는 민주주의를 사는 곳이어야 한다’는 아직 풀지 못한 문제를 품고 있었던 탓이었을까? 민주시민교육, 민주학교, 학교민주주의를 서머힐 학교에서는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서머힐 학교 교감인 헨리(Henry Readhead) 선생님이 학교의 철학과 민주주의 작동 방식을 생생하게 전해주었다. 서머힐 학교는 1921년 영국 교육학자 알렉산더. S. 니일이 6세에서 18세까지의 아이들을 위해 설립한 기숙학교다. 학교 운영 전반을 꿰뚫는 세 가지 철학적 원리는 첫째, 허가가 아닌 자유, 둘째, 질적 평등, 셋째, 민주주의 -자주적인 회의 절차-이다.

허가가 아닌 자유란 어떤 도덕적 억압도 없는 자유를 말한다. 단,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교실 바닥에 엎드리거나 비스듬히 누워 수업에 참여해도 되고 혹은 수업에 들어가지 않고 숲으로 나가 마음껏 놀아도 된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되는 것을 선택할 수는 없다. 서머힐에서는 아이의 의견과 권리가 선생님의 그것과 질적으로 동등하다. 가령, 서머힐의 교장이 트램펄린 위에서 놀고 있다고 하자. 여섯 살짜리 여자 아이-학교에서 가장 약한 권리 주체의 상징으로 헨리가 꼽은 예-가 트램펄린을 타고 싶다면 5분만 기다리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나서 5분 후 당당하게 내려오라고 요구하면 된다. 이것은 함께 정한 규칙이기 때문에 교장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서머힐 학교는 매주 두 차례 모든 학생과 교사, 교장, 교직원이 모여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일상적 어려움을 나누고 어떻게 해결할지 협의한다. 의견이 갈리면 동등한 한 표로 결정한다. 회의는 학생 대표가 진행하며 발언권 역시 모두에게 동등하다. 앞서 얘기한 트램펄린 사용 규칙도 여기에서 정했다. 신발을 벗고 타기, 다른 사람이 타기 위해 기다릴 땐 5분만 타고 내려오기가 그것이다. 만일 규칙을 어기는 누군가가 있다면 학생 옴부즈맨이 나선다. 그래도 안되면 학생이 주도하는 위원회, 전체 회의 순으로 문제를 다루고, ‘일주일 동안 트램펄린 이용 금지’와 같은 벌칙을 부과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정해진 규칙이 지금은 400여 개가 넘는다고 한다. 세 가지 철학적 원리의 핵심은 ‘자유’라면서 이렇게 많은 규칙이 필요할까 싶지만, 방종 아닌 진정한 자유는 호혜적이면서 동시에 자발적 자기 통제가 가능하게 함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서머힐 학생들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몸으로 살게’ 되었을까? 나는 그것이 ‘신뢰’의 힘이라고 보았다. 인간 본성과 내면의 힘에 대한 깊은 신뢰 말이다. 아이들은 천성적으로 선하고, 스스로 자연스럽게 성장해갈 수 있는 힘-magic-이 있다는 믿음, 내적 동기를 끌어내게 되었을 때 폭발적인 힘을 발휘한다는 믿음이 그들에게 충분히 놀면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허락할 수 있었다. 실패와 실수의 경험을 배움으로 되살려내도록 돕는 지혜도 거기에서 비롯된다. ‘신뢰’의 밑바탕에는 아이들을 어른과 동등한 온전한 인격체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깔려있다. 실로 학교의 교사, 가정의 부모가 아이들을 어떤 존재로 바라보느냐의 문제는 교사와 학생,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규정짓고, 나아가 삶의 곳곳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프레임으로 작동한다. 어리고 미성숙한 존재로 인식하는 순간, 아이들은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교육의 ‘대상’이 된다. 우월감에 사로잡힌 어른이 아이를 대하는 방식이란 상상할 필요조차 없다. 우리 주변에 수두룩하니 말이다. 믿어주지 않고, 기다려주지 않는 조급함에 멍들어 있을 가슴 가슴들을 생각하면 맘이 아리다.

“서머힐에서는 어떤 교사가 가장 잘 적응합니까?” 포럼 참가자의 질문에 헨리 교감 선생님은 대답했다. “자신의 권위를 내려놓을 줄 아는 교사가 가장 잘 적응하며, 그렇지 못한 교사가 가장 힘들어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상황만은 우리의 오늘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가?


송경애 새별초등학교 교감
sjpark1@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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