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간 넘게 배달을 하느라 함께 놀아주지 못한 자식을 늘 안타까워 하는 택배 노동자. 지난 밤 쌓인 오물을 치우며 새벽을 여는 청소 노동자. 코로나와 폭우의 공포를 온몸으로 견뎌냈지만 빚만 쌓인 영세 자영업자. 예기치 못한 화마를 당해 보금자리를 잃은 가족. 2~3개의 알바자리를 넘나들며 꿈을 찾아 헤매는 청년. 지난 9월 사회부 기자로 발령을 받고 나서 두달여동안 기자가 만난 사람들이다. 그들은 저마다 가슴 먹먹한 사연이 있었다. 그리고 기자는 취재라는 명목으로 그들의 사연을 묻고 또 기록했다. 그냥 만났다면 절대로 묻지 않았을...
도선인 기자2020.10.28 14:25얼마 전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광주·전남지역센터 통폐합 문제에 대해 취재한 내용 중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아 있는 단어가 있다. 바로 '지연된 자살'이다. '지연된 자살'은 국가적 재난 상황 초반에는 생존 본능과 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적 연대감을 통해 일시적으로 자살률이 감소하지만, 상황이 장기화될수록 증가세를 보이는 현상에서 비롯된 말이다. 쉽게 말해 당장 수십억원의 빚이 생기거나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수감되는 등 극한의 순간에서 생을 마감하기보다는 그 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심리와도 일맥상통한다. 위기 상...
곽지혜 기자2020.10.26 16:21"은지야, 카메라에 가져다 대면 꽃 이름 알려주는 건 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독립한지 수년째, 1-2주에 한번 볼까 말까 한 딸을 마주한 기자의 어머니는 휴대폰을 손에 쥐고 질문을 쉴 틈 없이 던진다. 벌써 스마트폰을 사용한 지 8년 차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기능에 적응하기란 여전히 난제인듯 하다. 함께 한식당에 방문한 날에는 QR코드 입장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결국 어머니의 스마트폰을 쥐고 인증을 받아 식당 직원에게 건넨 사람은 나였다. 어머니는 "QR코드 말고 직접 명부 작성하는 게 더 편하더라"며 민망함을 덜었...
김은지 기자2020.10.21 14:24기자의 할머니는 향년 98세를 일기로 지난 2018년 1월 눈을 감으셨다. "큰 지병도 없이 저 연세까지 살다 가신 건 진짜 호상(好喪)이죠." 장례식장에서 가족들이 조문객들에게 한 말 중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세상에 좋은 죽음이 어디 있겠냐마는 기자 역시 할머니가 호상이라고 생각한다. "해나 왔냐? 가시내, 앞머리가 그게 뭐여. 저번이 이쁘드만. 눈썹 위까지 빠짝 잘라브러." 할머니는 허리도 거의 굽지 않았었다. 앉거나 일어설 때 다리가 불편한 기색을 보이기는 했지만, 손녀와 눈을 마주치고, 손녀의 이름을 불러줬다. 손녀의 ...
김해나 기자2020.10.20 10:41'상온 노출'이 의심돼 한동안 중단되었던 독감백신 무료 접종이 지난 13일부터 재개됐다. 정부는 접종 중단 첫날, 문제가 된 백신을 접종 받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발표했지만, 실제 접종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3000명을 넘어서고 있다. 현장 취재 당시 독감백신 무료 접종 대상자들에게 "무료 백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볼 때마다 돌아오는 답변은 한결같았다. "무료대상자에 해당 돼지만, 두려워서 국가 백신을 맞을지는 고민해봐야겠다"라는 것이었다. 시민들의 입에서는 '싼 게 비지떡',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 된다' 등의 말도 흘...
최원우 기자2020.10.14 17:36'디지털카메라, MP3, 114안내' 스마트폰이 탄생하기 전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였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지 오래다. '사람인'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 남녀 5267명 대상 '본인이 스마트폰 중독이라 생각하는 비율' 조사 결과 20대 48.7%, 30대 43.7%, 40대 27.1%, 50대 이상 13.5%로 응답했다. 스마트폰을 별다른 목적 없이 수시로 켜서 본다 75.2%, 없으면 불안하다 38.5%, PC와 TV보다 편하다 34.4%,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30.2%, 다른 용무 중에도 스마트폰을 한다 24.1%로 답했다. 자신이 스마트폰 중독이라 생각하는 비율이 2030 세대에 집중돼있을 만큼 스마트폰은 필수적인 시대가 된 지 오래다. 부서 특성상 다양한 취재 방법이 있으나 현장을 직접 뛰는 게 우선이지만 불가능할 경우 전화 ...
조진용 기자2020.10.12 16:17지난 4월 장미셸 블랑케 프랑스 교육부 장관은 기자회견을 열고 "전통적으로 치러온 바칼로레아를 취소하고 교과활동과 숙제 등 다른 방법으로 대체하겠다"고 밝혔다. 바칼로레아는 일주일 동안 치러지는 프랑스의 대입자격시험이다. 200년 전통의 바칼로레아가 코로나19 확산세에 처음 취소된 것이다. 프랑스발 바칼로레아 취소 소식에 한국도 한동안 들썩였다. 당시 수능이 12월3일로 애초보다 2주 연기된 상황이어서 '수능 취소' 가능성에도 무게가 실렸다. 하지만 그 기대감은 금방 깨졌다. "수능은 12월3일 예정대로 진행한다." 교육부의 발표에...
양가람 기자2020.10.06 13:09"올 추석엔 그냥 집에 있어야죠. 어딜 가겠어요."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일가친척이 한자리에 모이는 민족 대명절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분위기는 삭막하다. 생활 양상을 180도 바꿔놓은 코로나19 탓에 사람들은 고향집 방문을 두려워하고 있다. 비대면·온라인이 사회 전반에 자리 잡은 지금, 부모의 얼굴을 보러 가는 것조차 '드라이브 스루'로 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했다. 요즘 명절 기간 붐빌 성묘·추모시설 방역에 대한 우려 목소리가 크다. 방문 사전예약제, 온라인 추모 서비스 제공, 실내 50인 집합금지 제한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
오선우 기자2020.09.28 15:46실향민이 늘고 있다. 추석이 성큼 다가왔지만 돌아갈 고향을 잃어버린 이들이 늘고 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젊은이들이 장성하면 으레 당연하다는 듯 도시로 떠난다. 젊은이들의 부푼 꿈을 품기에 시골 동네는 너무 작고 초라하게만 느껴진다. 그리고 그렇게 떠난 젊은이들이 다시 마을로 돌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활공동체는 점점 줄어들고 마을을 지키던 노인들 역시 하나, 둘 사라지고 나면 고향마을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된다. 마을 소멸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비단 어느 한 지역에서만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전남의 모...
김진영 기자2020.09.27 16:19하루에 수만 건씩 쏟아지는 기사들을 볼때면, 묘한 기시감이 들 때가 많다. 좀 더 나은 사회를 바꿔보자는 지적들, 어김없이 일어나는 황당한 사건들, 정치권 내에서의 대립들…. 대다수의 사람들도 기사를 보며 '이번에도 또?'라고 생각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기시감이 들 찰나도 없이, 사회문제가 해결되는 상황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기자들의 할 일이 없어지는 것 아니겠느냐마는 바뀌지 않는 행태에 씁쓸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 이른 새벽 3년 차 택배 노동자를 만났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그는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해고 조치를...
도선인 기자2020.09.16 10:19사람들은 각자의 '속사정'을 가지고 살아간다. 사전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일의 형편'을 속사정이라고 정의한다. 비가 마을을 덮쳐 모든 것을 쓸어간 지 한 달여가 지날 즈음 찾은 구례 양정마을. 지난 8월 수마가 할퀴고 간 이 곳 주민들에게 속사정은 존재하지 않아 보였다. 무너져버린 삶의 터전을 어떻게든 복구해보려는 그들에게는 겉으로 드러난 절망, 포기 등의 '겉사정'이 곧 '속사정'이었을 뿐이다. 비에 젖어 곰팡이가 피어 버린 장독대를 연신 물로 씻어내고 있는 주민을 만났다. 처음 그는 자택 앞에서 서성거리며 질문을 하려는 외...
김해나 기자2020.09.14 16:132020년은 너무나도 다사다난하다. 그동안 조용했던 한 해가 있었냐 싶지만은 올해만큼은 확실히 다르다. 바로 '코로나19' 때문이다. 올해를 서기 2020년이 아닌 '코로나 1년'으로 삼아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우리는 예상치 못한 삶의 변화를 겪고 있다. 생전 처음 들어봤던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이 익숙해졌고, 미세먼지가 자욱했던 날에만 챙겼던 마스크가 이제는 일상품이 돼버렸다. 평화롭던 일상 역시 송두리째 뒤바뀌었다.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는커녕 매일같이 학교에서 마주했던 친구들의 얼굴마저 보기...
김은지 기자2020.09.09 13:25유년시절 소꿉놀이 하며 '역할놀이'를 한 기억이 있다. 남자는 '아빠'역할을, 여자는 '엄마' 역할을 한다. '역할놀이' 중 사소한 다툼이라도 나면 담임 선생님은 다툼이 발생한 원인을 알기 위해 양쪽 이야기를 듣고 서로 미안하다고 사과하라고 지시한다. 이처럼 누구에게나 각자의 역할과 입장(의견)이라는 것이 있다. 이번 의료사태 중 △10년간 의과대학 정원 4000명 증원 △의료인력 확보를 위한 공공 의대 설립 △한방 첩약의 급여화 △원격 비대면 진료 허용 '4가지의 제안'을 놓고 팽팽한 '역할놀이'는 지속됐다. 4가지 제안에 반대하...
조진용 기자2020.09.07 15:27지독한 2020년이다. 코로나19 초기에는 전염병 문제가 사실상 수도권과 대구 등 특정 몇몇 지역의 문제라 생각했고, 코로나 사태는 금세 종식될 줄 알았다. 당시 정부도 막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틀렸다. 대구의 신천지 집단 감염은 작은 불씨에 기름을 붓듯 코로나를 전국에 퍼트렸다. 확산이 잠잠해질 때쯤 여름 휴가 시즌과 일부 단체 행동으로 현재 전국은 또다시 코로나 비상사태다. 코로나19는 끝나지 않은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행정의 역할을 맡은 대통령과 국무총리, 18개의 부와 5개의 처 17개의...
최원우 기자2020.09.03 17:46"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다. 새롭게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알을 깨고 나오듯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 헤르만헤세 '데미안' 중 싱클레어는 부모·학교·규범으로 표상되는 '알'을 깨부수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인물이다. 어린 시절엔 반항하고 또 고뇌하는 싱클레어가 막연히 부러웠다. 그에겐 '알'의 존재를 일깨워준 데미안이 있었고, 껍질을 깨고 나가려는 용기가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싱클레어로 살아가는 건 어려운 일이다. 전국적으로 39만명, 광주에만 매년 1500여 명의 학교밖청소년들이 생겨난다. 학교라는 첫 번째 ...
양가람 기자2020.08.25 14: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