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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슬비가 내리고 있다 북촌 너분숭이에 하염없이 부슬비가 내리고 있다 연중 관광객들이 넘치는 제주 섬이지만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날씨가 좋지 않는 날이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다. ‘4.3 유적지’라는 표지판이 서 있기는 하지만 웃고 즐길만한 것이 없는 곳이어서 그럴 것이다 한 날 한 시에 수백 명의 마을 사람들이 학살된 곳이다 널려있는 몇 개의 작은 돌무더기 울며 죽은 엄마의 젖을 빠는 것도 못마땅했나 왜 그랬을까 왜 이 어린애들은 죽어야만 했을까 70년이 ...
2023.04.20 13:55산들의 정상은 거의가 천왕봉이라 부른다 무등산 또한 그러하고 가까이 지왕봉, 인왕봉도 있다. 천(天), 지(地), 인(人)은 곧 삼태극(三太極)이니 우주를 떠받들고 있는 기운 찬 곳이 바로 이곳이던가 정상을 향하다 올려다 본 풍경이다 입석들이 줄을 짓고 있어 저기가 정상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정상에 조금 못 미치는 곳이었다. 꼭 정상에 올라야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왕에 나섰으면 정상에 발을 딛어야 직성이 풀린다고 하니까 조만간 정상이 개방되면 찾는 이들이 줄을 이을 것이다...
2023.03.30 13:12꽃샘추위의 들녘에 서 있습니다. 여기는 장성군 황룡의 동학농민혁명 전적지. 호남의 심장 전주성을 함락하기 전 이학승이 이끈 경군에 맞서 싸우다 승리한 곳이라 해서 힘차게 솟아있는 죽창의 기운을 느껴보고 그날의 함성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나라가 엉망이면 백성이 힘들다고 했던가요. 사실 그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죠. 돌이켜보면 반만년 역사에서 조용한 시절이 얼마나 있었겠는가마는 조선왕조 시절만 보더라도 임진왜란, 병자호란은 말할 것도 없고, 나라를 통째로 빼앗긴 일제...
2023.03.16 14:19‘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조선 전기의 문인이자 서예가인 양사언의 시조다. 어린 시절부터 익히 들어온 것이라 그 의미를 모를 리 없지만 그 많은 산들 중에서 태산을 들고 나온 것이 항상 궁금했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해서 결국 중국 산동성에 있는 그 태산에 올랐다. 정상인 옥황정이 1,545m다. 중국인들은 예로부터 이곳을 오악의 으뜸이라 했다. 산의 높이와 멋스러움 보다는...
2023.03.02 13:45나는 누구이고 당신은 또 누구인가 잘 알지도 못하는 철학을 논하자는 것은 아니다. 신들의 나라, 철학의 땅이라 불리다보니 여행자들의 메카라고 말하는 인도여행 길에 나서면 여기저기의 힌두 사두들한테 자주 듣게 되는 말이다. 그럴 때마다 무슨 말장난인가 하고 가볍게 웃고 넘기곤 했는데 요즘 들어서는 그 말이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 어언 듯 나이를 먹었다는 것일까. 바삐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여기까지 왔음에도 아직도 진정 내가 ...
2023.02.16 13:48둥근 달이 떴다 휘영청 밝은 달이 떴다 천지간에 골고루 그 처량한 빛이라도 전해 주려나 금토끼 옥토끼는 옛 이야기가 되었지만 우리는 그래도 저 달을 보고 소원을 빌어야 쓴다 시상이 드럽고, 매질고, 꼴깝스러웅께 그렇게라도 혀야 살맛은 아닐지언정 술맛이라도 나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 이말이제. 달아, 달아, 둥근 달아! 이 시상엔 믿을 놈 없다지만 너라도 어디 팔려가지 말거라 집나간 낭만이 대수더냐 온갖 잡것들이 두렵더냐 처량한 너의 빛이지만 한눈팔...
편집에디터 2023.02.02 11:031948년 10월22일 총을 든 한 무리의 군인들이 있었다. 남의 고구마 밭에서 고구마를 캐먹더니 매산등으로 내려왔다. 갑작스러운 이들의 출현에 놀란 주민들이 구경삼아 삼삼오오 몰려들었다. 그들은 다짜고짜 주민들을 한데 모이게 하더니 담장과 고목나무 밑에 세우고 곧장 총을 난사했다. 어린아이를 포함한 27명의 양민들이 어처구니없게 죽었다. 당시 국민학교 4학년이던 어린이가 발에 총을 맞고 살아난 것이 유일하다. 왜 그랬을까. 왜 무담시 죽여야 했고, 죽어야 했을까. 이 참혹한...
편집에디터 2023.01.19 13:45여수 시내에서 만성리 쪽으로 향하다 보면 일제 강점기에 강제노역으로 만들어진 분위기 음산한 터널을 지나게 된다. ‘마래터널’이라 부르는 이곳은 한때 ‘저승으로 가는 길’이었다. 여순사건을 진압하던 군경에 의해 끌려가던 수많은 사람들이 1949년 1월 13일 이곳을 지나 무참히 학살되었기 때문이다. 무장봉기의 주역들이 산속으로 스며들자 화풀이 차원에서 좌익 또는 부역자로 분류된 시민들을 바다가 보이는 용골로 끌고 와 죽여 저 어두운 골로 던져지고 흔적을 지우기 위해 불을 질렀다. ...
편집에디터 2023.01.05 13:12시간은 유수 같다고 했습니다 정말 임인년(壬寅年) 검은 호랑이 해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한 것 없이 시간만 또 가고 말았다고 저는 푸념하지만 어떤 이들은 가슴 뿌듯한 한 해 였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술 취한 검은 개호랑이가 광대처럼 춤을 출 수 있게 만들었으니 얼마나 신나는 한 판이겠습니까. 덕분에 소외된 이들에게는 걱정만 자꾸 쌓여갑니다. 우리의 역사에 있어서, 아니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선과 악은 항상 대립하면서 싸워왔던 것을 보면 인간의 본성과 그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기분전환 겸 마음을 다잡기 위해 찬바람을...
편집에디터2022.12.22 12:48작업실에 들이박혀 꼬무락거리다가 지질해지면 산책을 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가까운 골목길을 걷는 것이 단골 메뉴다. 뭐 특별히 볼 만한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느긋한 마음으로 편하게 걸을 수 있어 좋고, 이 생각 저 생각을 따라 가는 것도 좋아서다. 또 한편으로는 저절로 눈에 들어오는 삶의 풍경에서 내가 살아가는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게 할 때도 있다. 그 골목길을 오가다가 할머니 한 분을 보게 되었다. 집문 인지 방문 인지 모를 문을 한 짝만 열어놓고 어둑한 안에 앉아 하염없이 혼자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누가 오기...
편집에디터2022.12.08 17:03겨울이 다가오는 길목에서 지리산이 부른다. 아직 눈은 내리지 않았지만 낙엽들은 수북이 쌓여있고,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가 누군가의 흐느낌으로 들려오는가. 그 흐느낌에 불려가니 빗점골 너덜겅 곁의 한 그루 소나무 아래서 '지리산 곡(哭)'을 노래하는 이가 있다. 음악을 전공하고 민족을 사랑했던 '최순희' 함께 했던 빨치산 동지들을 평생 그리워 하다가 얼마 전 91세의 나이로 영욕의 생을 마감하고 이 소나무 아래 묻혀서야 그리운 이들의 품에 안겼다. 며칠 전이 그분의 기일이었다. 남부군 문화지도원이었던 그녀는 대성골 대공세 때 포로가 되...
편집에디터2022.11.24 13:38보살의 몸으로 도솔천에 머물고 있다는 미륵은 언제 깨어나서 중생을 구제 할 것인가. 나라가 어지럽고 민족이 힘들 때마다 그 미륵이 깨어나기를 바랐지만 아직껏 묵묵부답이다. 운주사의 와불도 그랬고, 선운사 도솔암의 마애불도 그랬다. 새 세상이 열리는 것을 싫어하는 무리들이 지혜의 결정체인 와불의 육계를 잘라버려서 그랬다는 설도 있고, 도솔암의 마애불 가슴팍에 숨겨놓은 비기가 답이라는 그럴싸한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나라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있던 동학혁명 때 접주 손화중이 그 비기를 꺼냈다지만 좋은 세상은 오지 않았다. 그 후로도...
편집에디터2022.11.10 14:57광주의 달동네라 말할 수 있는 발산부락을 찾았다. 조만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라질 처지에 있어 지금의 모습을 기록해 두기 위해서다. 진즉 찾았어야 하는데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벌써 떠난 이들이 많아 여기 저기 빈집들이 즐비하다. 그런 곳마다 담장이 허물어지고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하다. 그러나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떠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꽤 많아서 좁고 긴 골목을 따라 온기가 가늘게 이어져 있다. 이런 곳을 두고 달동네라 부르는데 어디에 근거를 두고 생겨난 말인지 궁금하다. 말 그 자체는 문학적이라 할...
편집에디터2022.10.27 15:21혼자 떠난 여행 중에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우리에게 먹는 다는 것은 맛을 느끼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막연하게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할 뿐이라면 그 자체가 귀찮아질 때도 있다 맞은편에서 거구의 사내가 밥 먹는 모습에 시선이 꽂혔다. 그 역시 맛으로 먹는 것인지, 아니면 살기 위해 먹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한 인간이기 이전에 그냥 동물의 단순한 모습이다 그래, 우리는 서로 인간이지만 사실 다른 동물들과 뭐가 다른 것인가 도구를 사용하고, 언어를 구사하면서 제법 영리하게 살아가는 척 하지만 세상에 일으키는 크고 작은 말썽은 죄다 우...
편집에디터2022.10.13 17:08그동안 코로나 대유행으로 좋아하는 여행도 즐기지 못해 답답했는데 이번에는 세계 경제를 휘어잡고 있는 달러가 초강세인 것이 문제다.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더 가난해지고 말았다. 이제 해외여행 같은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지경이다. 4차산업 운운 하면서 세상이 갈수록 더 좋아질 것 같이 말하는데 적어도 우리들이 누리는 행복감은 여러 면에서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 분명한 것 같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인간세상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이거니 해버리면 속이라도 좀 나아질까 요즘 들어 부쩍 세계의 봉이고, 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 우리지만, ...
편집에디터2022.09.29 1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