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 세계자연유산6> 한적한 갯벌평야서 바지락도 캐고 추억도 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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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 세계자연유산6> 한적한 갯벌평야서 바지락도 캐고 추억도 캔다
우리나라 바지락 생산 50% 차지 ||갯벌체험 활성화 녹색관광 선도 ||철새 기착지로 진객 먹황새 관찰 ||노을대교·해상풍력 갯벌 적신호
  • 입력 : 2022. 07.17(일) 17:20
  • 이용규 기자

고창갯벌은 펄갯벌과 모래갯벌 등 다양한 지질구조를 보여준다. 하전 어촌계 인근에서는 모래갯벌이 발달돼 바지락 서식에 최적 조건을 갖춰 갯벌 체험학습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갯벌체험객들이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고 있다. 섬갯벌연구소 제공

고창갯벌을 접하고 있는 어촌들은 우리나라 체험학습 선진지로 통한다. 전국 바지락 생산의 50%를 차지할 만큼 바지락이라는 부존자원을 활용해 어느 지역보다 도회지인들을 갯벌로 불러들일 수 있는 요소가 충분했다. 지난 2일 오전 11시, 2004년부터 갯벌 체험장을 운영해온 고창 심원면 하전 어촌계 안내센터가 붐볐다. 인근의 광주지역 유치원생과 부모들이 갯벌로 들어가기 위해 호미와 장화 등 장비를 챙기고 있었다.

체험모드로 변신한 유치원생들은 툭 터진 바다를 보는 것이 신기하고, 그 곳에 들어가 바지락을 캐는 것에 신이나 들떠 있었다. 어떤 녀석은 호미로 바닥을 파보며 깔깔웃기도 했다. 호미며, 장화, 장갑으로 무장한 '소년소녀 어부'들은 트랙터를 개조한 이동 차량에 올라 바지락을 캐기 위해 갯벌로 향했다. 갯벌은 마을앞에서 4㎞ 떨어져 있어, 걸어가리란 쉽지 않은 거리다.

허리춤까지 빠지는 진흙 갯벌을 연상한터라 트랙터가 갯벌 한가운데로 지나 다니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그동안 취재 과정에서 본 펄갯벌과는 전혀 다른 모래갯벌이었다.

권영주 하전 어촌계장은 "하전 갯벌체험장은 전북에 있는 7개 체험장 중에서 어느 곳에 견줘도 경쟁력이 뛰어나 영남권에서 많이 찾아오고 코로나 이전까지만 해도 5월 한달에만 5000명이 올 정도 였다"면서 "그동안 코로나로 체험학습이 중단돼 여간 어려웠는데, 다소나마 풀려 너무 좋다"고했다.

하전 어촌계의 마스코트인 트랙터를 개조한 이동 차량이 모래갯벌을 이동하고 있다. 섬갯벌연구소 제공

고창갯벌은 곰소만의 외측과 내측에 섬이 위치하고 있는 전형적 개방형 갯벌로서 염습지,펄갯벌, 혼합갯벌, 모래갯벌 ,암반 기질이 어우러진 독특한 지질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다.

고창갯벌은 해리, 산하, 심원, 부안면 등 4개 지역이 인접해 있고 해안선 길이가 74㎞다. 인근의 한빛 원전 일대 바닷물이 밀려들어 왔다 빠지는 지형이다. 파도차가 심한 만돌리 어촌 지선에서 양식되는 지주김은 서해안 특산품으로서 손꼽힌다. 또한 바지락은 고창갯벌을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는 어촌 주민들의 주요 소득 품목이다. 국내에서 연간 소비되는 바지락 양은 4만톤 정도인데, 국내산은 2만톤으로 하전을 비롯한 고창갯벌에서 1만톤을 공급하고 있다.

고창갯벌이 국내 바지락 생산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은 천혜의 지형 조건에 기인하고 있다. 특히 고창갯벌에서 모래와 펄갯벌이 혼합돼 발달된 하전 어촌계 마을앞 갯벌은 황금 바지락 밭이다. 마을 어장앞으로 쭉 늘어선 변산반도가 바람막이 역할을 해줘 바람이 잔잔해 바지락 서식에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 점을 들수 있다. 모래갯벌과 펄갯벌로 이뤄지다보니 어민들의 어로활동을 하는데 있어 바다 한가운데 까지 트랙터를 타고 갈 수 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바지락 양의 절반을 하전에서 공급하고 있어 주민들이 바지락으로 시작해 바지락으로 끝날 만큼 늘 이슈를 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다시 권영주 어촌계장의 얘기다. "예전에 바지락으로 가구당 소득은 연 1억정도 됐는데, 지금은 기후변화로 인해 소득이 70~80% 정도 밖에 되지 않아 걱정입니다."

그러면 바지락과 기후변화가 어떤 관계가 있을까.

가뭄이 길어지면 바닷물이 짜지고, 비가 많이 오면 바닷물 농도가 묽어지는 현상으로 인해 바지락 성장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데, 갈수록 기존의 기후 패턴에서 벗어나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어민들 입장에서는 기후라는 돌발 변수로 인해 바지락 양식이 위험을 담보로 하는 사업과 같은 것이다.

고창갯벌은 국가 차원에서 2007년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됐고, 국제적으로는 2010년 람사르습지와 2013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 관리돼 보전상태는 전반적으로 양호하다.이러한 생태학적 조건으로 인해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는 영광도 안을 수 있었던 것이다.

독특한 표층 퇴적성으로 고창갯벌에서는 대형저서동물 255종, 저서 규조류 194종, 염생식물 26종이 출현해 높은 종다양성을 나타낸다.

고창갯벌에서 모래 갯벌이 발달한 관계로 물새들의 먹이가 되는 바지락과 동죽의 먹이가 되는 갯지렁이류의 밀도가 높다. 전세계적으로 1속1종만이 보고돼 있는 황해 고유종인 범게가 서식하는 것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조사 연구에 따르면 범게는 알을 낳을 수 있는 생물학적 최소형이 55㎜이며 크기가 0.7㎜인 알을 약 5만4000개 낳는다. 범게는 맨 뒷다리가 꽃게처럼 넓적하나, 헤엄을 치지는 못하고 갯벌을 파도록 진화됐다.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은 '살아있는 화석'으로 알려진 게맛이 관찰되는 점이다. 게맛은 끝이 뭉툭한 긴 꼬리를 모래갯벌 속에 파묻고 사는데 이 꼬리를 사람들이 먹기도 한다. 게맛은 퇴적물속으로 용존 산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해주는 고마운 존재다.

고창 갯벌에서 유일하게 관찰되고 있는 세계적 희귀조류인 먹황새. 고창갯벌센터 제공

고창갯벌은 새만금 간척사업 이후 철새 이동 경로상의 중요한 중간 기착지이다.

2009년 이후 2만개체 이상의 물새가 고창과 서천갯벌에 도래하고 있는데, 멸종 위기종의 안정적인 서식지로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철새 기착지로서 내세울 만한 지표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적색 목록 물새종 18종이 지속적으로 찾아오는 것이다.

위기종인 먹황새는 고창갯벌에서만 유일하게 출현한다. 먹황새는 고창갯벌에서 대표적 해양 생물인 칠게, 꽃게, 망둥어류를 주로 잡아먹고 겨울을 지낸다. IUCN 적색 목록의 18종 뿐만 아니라 위급종인 넓적부리도요도 이 지역을 찾는 진객이다. 넓적부리도요는 이동 시기인 봄과 가을에 드물게 도래하는 철새로 새만금 개발로 개체수가 급감했다. 최근 5년간 우리나라에서는 20개체 이하로 관찰되고 있어 보호가 시급한 실정이다.

권영주 어촌계장은 "새만금 간척사업이 후 이곳을 찾았던 새들이 고창갯벌 일대로 많이 몰려오고 있는데, 바지락 양식을 하는 어민들로서는 꼭 반갑지만은 않다"고 속사정을 비치기도 했다. 철새들이 바지락을 먹어 치워버려 손해가 많다는 하소연이다.

고창갯벌도 농지와 산업단지 조성을 명목으로 간척 산업이 진행됐다. 1950년 이후 농지, 1960년대 염전, 1990년대 전후 축제식 양식장 조성 등으로 자연 해안선이 상당 부분 변형됐다. 만경강과 동진강이 합쳐진 큰 하구역의 하나인 새만금 간척사업은 1991년 시작 이후 서해안 일대의 조류 흐름과 퇴적물 공급에 영향을 주었다. 해양 수산생물의 서식지 손실과 이동성 철새의 중간 기착지를 감소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 관련 전문가와 어민들의 주장이다.

고창갯벌도 인근의 원전에 이어 다시 개발로 인해 갯벌 환경에 대한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갯벌에 위협을 주고 있는 것은 부안과 고창간 건설이 확정된 노을대교 공사다. 길이가 7.5㎞가 되는 이 대교는 내년에 기공될 예정이다. 갯벌을 가로질러 들어서야 하는 상황도 그렇고 앞으로 구시포에서 위도까지 해상풍력 시설 600기가 들어설 계획인데, 1기당 교각 4개가 설치되면 총 2400개의 구조물이 세워지게 된다. 노을대교와 해상풍력 교각 등으로 인해 바다 물 유속이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어민들의 걱정이다.

권영주 어촌 계장은 "노을대교 상황은 부안과 고창간을 관광적으로 연결하기 위한 것인데, 대교와 해상풍력 구조물로 인해 바다 갯벌은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우려감을 나타냈다.

그나마 기존의 만돌리와 두우리 지역에 위치한 일부 축제식 양식장은 해양수산부의 갯벌 복원사업에 따라 재자연화 과정이 진행중에 있어 다행스럽다.

고창갯벌 역시 습지보전법 수산업법 어장관리법 등에 의해 지형지질 변형 및 생물다양성 훼손 등은 금지돼 있다. 현재 하전을 비롯해 어촌에서 갯벌체험 학습장을 운영중에 있고, 연간 6만명 규모의 방문객이 제한된 장소에서 갯벌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김진근 전 만월어촌계장은 "고창 갯벌이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사실을 좀더 알려지게 된다면 지역의 농수산물 가치가 더 오르고 관광객들도 더 많이 늘게돼 주민 소득도 높어질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독일의 와덴해처럼 체험객들의 교육을 통해 더 갯벌이 보전되는 선순환 구조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고 했다.

하늘에서 본 고창갯벌위에 드러난 구불구불한 트랙터 길. 섬갯벌연구소 제공

이용규 선임기자

이용규 기자 yonggyu.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