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校歌' 넘어 '친일 國歌'도 바꿀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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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수 칼럼
'친일 校歌' 넘어 '친일 國歌'도 바꿀 때다
  • 입력 : 2019. 02.25(월) 16:21
  • 박상수 기자
광주 17개 학교 '친일 음악가 교가' 불러

학생독립운동 광주일고도 포함돼 충격

본보 집중 보도 후 15개 학교 교체 결정

친일 교가 교체 바람 들불처럼 전국 확산

3·1운동 100년 …친일 애국가도 바꿔야



우리 가곡은 언제 들어도 좋다. 아름다운 노랫말에 한국적 정서를 담고 있는 가곡을 들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삭막한 세상에 정서 순화도 된다. 나는 우리 가곡이 수록된 인터넷 사이트를 즐겨찾기에 등록해 놓고 틈이 나면 감상을 한다.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기에는 수준이 한참 못 미치는 것도 가곡을 좋아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현제명의 '그 집 앞', 김성태의 '동심초', 이흥렬의 '바위고개', 김동진의 '진달래꽃' 등도 한때 즐겨 부르고 듣던 노래다.

그런데 이들이 하나같이 친일 작곡가로 밝혀지고,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후에는 이들의 노래를 되도록 듣지 않으려고 한다.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현제명은 친일 음악계의 대부다. 1944년 경성후생실내악단 이사장에 취임해 친일음악계 대부 역할을 한다. 경성후생실내악단은 위문 공연 등을 통해 일제의 군국주의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했다. 이흥렬은 국민총력조선연맹의 국민가창운동정신대에서 활동하면서 가창지도대 및 국민개창운동에 나섰다. 김성태는 1943년 경성음악연구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군국주의 찬양 노래를 작곡했다. 심지어 '우리들은 병사로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들은 제국군인' 등의 노래를 지휘하며 조선 청년의 제국주의 전쟁 참전을 선동했다. 김동진은 일제가 세운 만주국 건국을 찬양하는 곡을 만들었고, 다수의 군국주의 군가를 작곡했다.

이들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일각에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고 옹호한다. 그들에 대한 합리화는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한 지사들을 모독하는 것이다. 예술 작품과 사람은 별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은 우리가 신뢰할 수 없다. 아무리 명작을 내놔도 그 사람의 사상과 행동거지가 바르지 않았다면 작품에 가치를 부여하기 어렵다. 문학에서는 서정주 시인이 그런 사람이다. 한때 열렬히 지지했던 정치인도 변절하면 지지를 철회하는 것이 마땅하다.

올 초 광주교대 산학협력단이 광주시가 의뢰한 '광주 친일 잔재 조사 결과와 활용 방안' 용역 최종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광주 지역의 중·고교와 대학 17곳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현제명·김성태·이흥렬·김동진 등 친일 음악인 4명이 만든 교가를 부르고 있다. 다른 학교는 놔두더라도 일제강점기 학생 독립운동의 본산인 광주일고가 친일 음악가 이흥렬이 작곡한 교가를 줄곧 불러온 것은 충격적이다. 광주 최초의 사학으로 1919년 3·1운동 당시 선봉 역할을 하고, 많은 학생이 구속된 숭일중·고 교가는 현제명이 작곡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후손이 설립한 광덕중·고교도 친일 음악가 김성태가 작곡한 사실을 모르고 교가를 불러왔다. 이게 도대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전남일보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올해의 어젠다로 '친일 교가 청산'을 내걸고 신년호부터 집중 보도를 했다. 본보 보도의 파장은 의외로 컸다. 많은 광주 시민과 독자들이 호응하면서 광덕중·고교가 가장 먼저 교가를 교체하겠다고 발표했다. 졸업식에서는 아예 교가를 부르지 않았다. 3·1운동에서 선봉 역할을 했던 숭일고도 3월 중으로 교가 교체 TF팀을 꾸리기로 했다. 마침내 광주일고와 동창회도 3월 중으로 '교가 교체 TF'를 꾸려 교체 작업에 나서기로 했다. 작곡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지은 김종률 동문에게 의뢰하고, 작사는 재학생들에게 공모하기로 했다. 새 교가는 오는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일 전에 작업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금호중앙중·금호중앙여고, 대동고, 서강중·고와 서영대, 동신중·고와 동신여중·여고도 여기에 합류했다. 현재 친일파 작곡 교가 교체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은 학교는 전남대(현제명)와 호남대(김동진) 등 두 곳에 불과하다. 이들 대학도 구성원과 동문의 의견을 수렴해 조속히 교가 교체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본보가 문제를 제기한 후 친일 교가 교체는 광주뿐 아니라 전국으로 번져 나가고 있다. 교육의 현장인 학교에서부터 친일 잔재를 청산하는 것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우리가 당연히 할 일이다. 우리나라가 해방 후 친일파를 단죄하지 못한 것은 천추의 한이다. 이제 많은 세월이 흘러 친일파 단죄가 쉽지 않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생활 주변에서부터 꾸준하게 친일 잔재 청산 작업을 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굴욕적인 식민 통치를 기억하고, 앞으로 또 다른 식민 통치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친일 잔재는 말끔하게 청산을 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친일 잔재가 어디 교가뿐인가. 안익태가 작곡한 애국가도 친일 논란에 휘말려 있다. 안익태의 친일 행적은 그동안 수없이 드러났다. 일제가 세운 만주국을 위한 '만주국 환상곡'을 작곡하고 연주했다. 애국가는 '만주국 환상곡'의 피날레 부분에서 따왔다고 한다. 기가 막힐 일이다. 최근 한 방송은 1942년 만주국 10주년 기념 음악회에서 에키타이 안(안익태의 일본 이름)이 '만주국 환상곡'을 연주하는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일왕을 찬양하는 '에텐라쿠(越天樂)'도 그의 작품이다. 그는 친일 활동도 모자라 친나치 활동까지 했다. 한신대 이해영 교수에 따르면 안익태는 1941년부터 약 2년간 독일 베를린 내 일본의 고급 첩보원 '에하라 고이치'의 집에 기거하면서 나치에 협력한 사실이 드러났다.

애국가는 나라의 혼이 담긴 노래다. 친일도 모자라 친나치 활동을 한 사람이 작곡한 노래를 국가로 채택하고 부르는 것은 우리 민족의 수치다. 우리가 더 시간을 끌지 말고 애국가 교체를 검토해야 한다. 당장 3·1운동 100주년 기념식에서 이 노래를 불러서는 안 된다. 아직 국민 여론이 교체에 부정적이지만 우리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곡뿐 아니라 가사도 진취적인 기상을 담고 미래를 지향하는 내용으로 바꿔야 한다. 3일 후면 3·1운동 100주년 기념일이다. 전국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친일 교가 교체 작업이 탄력을 받아 친일 국가 교체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박상수 기자 ss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