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작별을 해야 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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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수 칼럼
이제는 작별을 해야 할 시간입니다
박상수 주필
  • 입력 : 2021. 02.18(목) 12:46
  • 박상수 기자
박상수 주필
'떠날 때는 말없이'. 1960년대에 가수 현미가 불러 크게 히트한 대중가요의 제목입니다. 한때 열렬히 사랑했더라도 언젠가는 헤어져야 하는 게 사람의 얄궂은 운명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떠나는 사람이 구구하게 변명 따위를 늘어놓을 필요는 없겠지요. 보내는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백 마디 말보다 침묵이 더 많은 것을 말해 줍니다.

갑자기 흘러간 노래 제목을 꺼낸 것은 제가 독자 여러분과 작별을 해야 할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햇수로 33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월 말에 정년퇴직을 합니다. 1988년 전남일보 창사 멤버로 입사해 줄곧 한 직장에서 대과없이 33년을 근속하면서 주필까지 역임하고 떠나는 것이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합니다. 청춘을 바쳐 근무한 기자 생활은 행복했습니다. 일부 동료가 더 화려한 일터를 찾아 회사를 떠나는 것을 지켜 보면서도 '등 굽은 나무가 선산 지킨다'는 심정으로, 기자가 천직이라고 생각하며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래도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정년퇴직을 맞닥뜨리고 보니 세월이 쏜살같이 흐른다는 선현들의 말을 실감합니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이별 앞에서는 침묵이 금입니다. 기자직을 그만두면서 평소에 다짐한대로 '떠날 때는 말없이'를 실천하지 못하고 이렇게 장광설을 늘어놓는 것이 제가 생각해도 이율배반적입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제 기사와 칼럼을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가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박상수 칼럼'과 '서석대' 등 제가 쓴 글을 읽어 주시고, 더러는 팬을 자처하는 등 과분한 격려를 보내주신 분들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특히 편지와 전화, 또는 직접 찾아오셔서 성원해 주신 여순사건 유족 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립니다. 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여순사건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우리 지역의 가슴 아픈 현대사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미완의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하루빨리 여순사건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해 유족들의 70년 한이 풀리기를 기대합니다.

정년을 맞고 보니 아쉽고 후회되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고은 시인이 쓴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란 시가 절절하게 와 닿습니다. 기자 생활의 마지막 내리막 길에 다다르고 보니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드디어 보입니다. 좀 더 노력하고 기자 정신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되돌아보면 특종을 해서 뿌듯한 경우도 있었지만, 오보를 내고 과장된 기사를 쓴 적도 없지 않았습니다. 취재원의 압력과 회유에 굴복해 마땅히 내보내야 할 기사를 구겨서 버린 부끄러운 기억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논설실장으로서 주필로서 더 좋은 칼럼을 쓰지 못한 것도 자책이 됩니다. 제 기사나 사설, 칼럼으로 인해 상처를 받았거나 억울하게 피해를 본 분들이 있었다면 정중하게 사과드립니다. 수습기자로 다시 입사한다면 좀 더 열심히 뛰고 멋진 기자, 명칼럼니스트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봅니다.

신문의 위상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습니다. 영상시대, 디지털시대에 종이신문은 머잖아 생명력을 잃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역사의 기록자로서 종이신문은 또 다른 소중한 가치와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후배들이 종이신문의 마지막 세대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신문의 주인은 독자와 기자들입니다. 신문은 사회적인 목소리는 크게 내고, 정치적 이념적 편향성은 지양해야 합니다. 어떠한 압력이 와도 기자들이 정론을 펴겠다는 올곧은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전남일보 초창기 기자들은 창간호에 전두환과 더불어 광주 학살의 책임자인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기념 휘호가 실리는 것을 제작 거부를 통해 막아낸 바 있습니다. 전남일보가 창간 이후 오늘까지 호남 최고의 정론지라는 평가를 받아 온 것은 여기서 비롯된 것입니다. 후배들이 자랑스러운 전통을 이어갈 수 있도록 배전의 노력을 해주기를 당부합니다.

저는 이제 '글감옥'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면서 새롭게 인생 2막을 구상해 보려고 합니다. 욕심 부리지 않고 느긋한 마음으로, 때로는 빈둥거리면서 저만의 '버킷 리스트'를 실행해 나갈 계획입니다. 그동안 못다한 여행을 다니고, 연로하신 시골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도 더 많이 가지려고 합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중단한 시 쓰기도 다시 해보려고 합니다.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감에 홀가분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현장을 떠납니다. 전남일보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애정을 부탁드립니다. 코로나19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 건강 유의하시고 안녕히 계십시오.







박상수 기자 ss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