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가 만사', 진부한 말 다시 꺼낸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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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수 칼럼
'인사가 만사', 진부한 말 다시 꺼낸 까닭은
  • 입력 : 2019. 03.25(월) 17:52
  • 박상수 기자

국세청장 시절 민원 쇄도해도 꿈쩍 안해

철저한 자기관리가 이용섭 승승장구 비결

시장 취임 후 기관장 인사는 기대 못 미쳐

광주환경공단 이사장 임명도 민심과 괴리

시민 신뢰받는 인사로 민선 7기 성공해야

"광주 시장이 재미 좀 보겠네.…"

금남로 전일빌딩과 광주문예회관이 대규모 리모델링 공사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 친구가 한 말이다. 광주시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헬기 사격의 총탄 흔적이 남아있는 전일빌딩을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리모델링 공사를 지난달 18일 시작했다. 전일빌딩 리모델링 공사에는 484억 원이 들어간다. 광주시는 또 올 하반기부터 2022년까지 국비와 시비 249억 원을 투입해 문예회관 대극장 및 소극장 개·보수 작업을 한다.

건설업계를 잘 아는 이 친구에 따르면 리모델링 공사는 복마전(?)이다. 건물 신축의 경우에는 일정한 단가가 정해져 있다. 반면에 리모델링 공사는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보니 과거의 관행대로 하면 업자가 얼마든지 장난을 치고 부정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또 광주시가 문예회관장을 개방형 직위로 바꿔 문화와는 거리가 먼 인사를 앉힌 것도 그것과 연계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시중에 떠도는 이런 말은 이용섭 광주 시장이 어떤 사람인가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이 시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 2년간(2003년 3월~2005년 3월) 제14대 국세청장을 역임했다. 국세청장이라는 자리는 예나 지금이나 세무 관련 민원이 쇄도하는 곳이다. 쇄도하는 민원에 그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그때 민원을 넣은 사람 중에 지금도 서운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국세청장 재직 때의 청렴성과 추진력은 그 후 그가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혁신관리 수석, 행자부 장관, 건설교통부 장관으로 승승장구한 비결이다. 그는 재선 국회의원을 거쳐 문재인 정부 출범 후에는 초대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됐다. 만약 그가 좌고우면하면서 주변의 민원을 적당하게 들어주었더라면 오늘날 광주광역시장 이용섭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광주시의 대규모 리모델링 공사와 관련해 떠도는 이런저런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이 시장이 살아온 이력을 볼 때 돈 문제만큼은 청렴하기 때문에 믿음이 가고 안심이 된다.

자기관리에 철저한 이 시장도 인사 문제는 어쩔 수 없는 걸까. 이 시장이 지난해 7월 취임 후 단행한 산하단체와 기관장 인사는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광주시의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자격 논란을 빚은 김강열 광주환경공단 이사장 후보의 임명을 지난주 강행한 것만 봐도 그렇다. 광주시는 이례적으로 대변인 명의의 '입장문'까지 내고 "그간 제시했던 공공기관장의 3대 자격 요건인 업무 전문성, 리더십, 방향성을 기본에 두고 의회와 시민단체, 언론 등 지역사회의 여론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김 후보자를 임명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언론과 시민단체가 반대하고 광주시의회가 인사청문 보고서를 통해 '부적절' 결론을 낸 인사의 임명을 강행하면서 이렇게 말한 것은 민심과 동떨어져 생뚱맞다.

김 후보자는 선임 과정에서부터 사전 내정 논란이 일었다. 서류 전형에서 후보 3명 중 꼴찌를 했으나 면접에서는 1순위로 추천돼 이 같은 의혹을 뒷받침했다. 그는 과거에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된 적도 있다. 광주시의회의 인사청문회에서는 민낯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그는 정관상 '무보수 명예직'인 시민생활환경회의 이사장으로 재임하면서 2013년부터 지난 1월까지 총 1억여원의 보수를 받아 횡령 배임 의혹이 일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 단체는 김 후보자와 그의 아내의 은행 계좌에 각각 2600만 원과 1억900만 원을 입금한 것으로 밝혀졌다. 제기된 의혹에 대해 김 후보자의 해명도 오락가락했다. 김 후보자는 정상용 전 의원이 자질 논란으로 인사청문회 문턱을 넘지 못하자 재추천된 인사다. 광주시가 재선임하는 후보자조차 제대로 검증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광주시는 앞의 입장문에서 "그동안 임명된 시립미술관장, 정보문화산업진흥원장, 국제기후환경센터 대표, 김대중컨벤션센터 사장, 그린카진흥원장 등은 (시장과) 어떤 인연도 없다. 오직 업무 전문성과 역량이 판단 기준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측근·보은·낙하산 인사라는 지적을 받은 경우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어제 광주복지재단 대표 인사청문회에서도 보은 인사 논란이 일었다. 입장문은 산하기관장 인사와 관련해서 '구체적인 확인 절차나 근거 없이 캠프 인사나 보은 인사로 폄훼하지 않기 바란다.', '캠프에서 활동했다는 이유만으로 기관장 인사를 비판하고 반대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했다. '부탁의 말씀'이라고 했지만 시민들을 윽박지르는 것 같아 듣기에 불편하다.

이 시장이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김강열 환경공단 이사장을 임명한 것은 이해가 된다. 전임자에 이어 또다시 낙마한다면 광주시 인사 행정에 큰 흠집이 남게 된다. 내가 시장이라도 그런 상황이 되면 임명을 했을 것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광주시가 장황하게 자기변명을 늘어놓고 큰소리를 치기보다는 겸허하게 반성하는 자세를 보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동서고금, 국가나 지방정부를 막론하고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영원한 진리다. 한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던 문재인 정부의 인기가 급락한 것은 경제 실정과 함께 잘못된 인사의 영향이 크다. 청와대가 이번에 내정한 장관 후보자들도 하나같이 논란의 소지가 있는 인물들이다. 정책 실패는 잘못이 밝혀지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고, 시민들의 피부에 직접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인사 문제는 민감하다. 인사를 잘못하면 시민들의 신뢰가 깨지는 건 시간문제다. 신뢰에 한 번 금이 가면 시민들은 이미 검증이 된 이 시장의 청렴성도 의심하게 될지 모른다.

이 시장은 지난 23일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제14대 국세청장 시절이 연상되는 등번호 14번을 달고 멋진 시구를 했다. 볼은 빠르지 않았지만 스트라이크 존을 제대로 통과했다. 이 시장의 민선 7기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볼을 엉뚱하게 던져 볼넷을 남발해서는 안 된다. '광주형 일자리'는 첫 단추를 잘 끼웠다. 세계수영선수권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것이 당면한 과제다. 이 시장이 초심을 잃지 말고 인사 문제에서도 시민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박상수 기자 ss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