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끈을 놓으려했는데… 그림이 날 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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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삶의 끈을 놓으려했는데… 그림이 날 구했어요"
◇고향서 개인전 연 소영일 前 연세대 교수 인터뷰||유·스퀘어 문화관 금호갤러리 광주서 두 번째 전시||실명 위기·치매 노모 홀로 돌보며 극단적 선택했지만||"추상화가 될 것… 샹송·고전·동화 모두 그리고 싶어"
  • 입력 : 2020. 01.05(일) 16:57
  • 최황지 기자
지난 3일 광주 유·스퀘어 문화관 금호갤러리에서 열린 '2020 소영일 개인전' 개막식에서 소영일 작가가 '아름다운 리우데자네이루와 구세주 상' 작품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행정고시를 합격하고 경영학 관련 저서를 다수 출간한 저명한 학자였던 소영일(69) 작가는 30여 년 동안 연세대에서 제자 양성에 매진했다. 30권이 넘는 전공 서적을 집필했지만 틈틈이 '행복의 탄생', '행복의 열쇠', '위험한 행복'이란 '행복 3종 세트' 책을 출간하는 등 끊임없이 행복을 갈구했다. 그러나 실명 위기, 홀로 돌보는 노모의 병환 악화 등 불운이 겹겹이 삶을 파고들자 작가는 극단적 선택을 두 번이나 시도할 정도로 힘겨운 삶을 살았다.

지난 3일 광주 유·스퀘어 문화관 금호갤러리에서 열린 '2020 소영일 개인전' 개막식에서 만난 소 작가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고통 속에서 꽃 피워내듯 그려낸 작품들과 전국에서 찾아온 지인들에 둘러싸이자 모처럼 행복감이 밀려온 듯 보였다. 그는 "희망이 생긴다. 앞으로 더욱 도전해야겠다는 힘을 부여받은 것 같다"고 감격에 겨워했다.

10여 년 전 갑작스럽게 찾아온 녹내장으로 시력이 점점 감퇴했고, 홀로 살뜰히 돌보던 노모는 점점 아들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치매가 악화됐다. 인생 최대 위기에서 그림은 빛이 돼 주었다. 절망의 끝에서 삶을 포기하려 했지만 손에 쥐어진 붓은 희망을 그려냈다.

그는 "어머니 연세가 아흔인데 치매로 인해 나를 완전히 못 알아본다. 이로 인해 5~6년 전부터 살 의욕이 사라졌었다"라며 "근데 최근에는 어머니의 눈을 보면 '이렇게 계속 그림해라'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용기가 난다"고 했다.

현재 소 작가의 시력은 사물을 흐릿하게 분별할 정도의 상태다. 감퇴하는 시력에도 소 작가가 끝까지 놓지 않은 붓으로 펼쳐낸 세상은 초록, 분홍, 파랑 등 밝은 색감으로 가득하다. 그가 세계여행을 하며 바라본 세상은 늘 배경이 됐고, 배경 중앙에는 손톱만한 연인들의 모습도 담겨있다. 그의 그림은 늘 외롭지 않다.

그는 "나에게 용기를 준 말이 있다. 화가 빈 센트 반 고흐는 '난 그리기 위해서 눈을 감는다. 그러면 밤하늘의 모든 색깔이 보인다'고 했다. 나도 눈을 감고 내 마음 속에 있는 풍경을 모두 그려낸다"며 "가끔 물감을 쭈르륵 짜놓고 눈이 보이지 않아 엉뚱한 색깔로 칠해도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웃었다.

소 작가와 대화를 나눌 때도 그의 눈은 계속해서 눈물을 쏟았다. 약해진 시력이지만 그의 작업 목표를 묻는 질문에는 눈을 빛내며 대답을 이어갔다.

그는 "요즘에는 추상화에 몰두하고 있다. 스페인의 라틴 음악, 프랑스의 샹송, 세계를 뒤흔든 클래식까지… 나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다"며 "최근에는 베토벤의 '운명교향곡', '환희의 송가'를 추상화로 표현하고 있다. 내 머릿속에 있는 무한한 우주를 켄버스에 담아내고 싶다"고 했다.

광주 출신으로 수창초-광주일고를 졸업한 소 작가의 고향 전시는 오는 9일까지 이어진다. 이번 전시가 끝난 뒤에는 서울에서 개인전을 연다. 하반기에는 예술적 영감을 쌓기 위한 세계 여행도 예정돼 있다.

그는 "광주의 개인전은 나에게 특히 소중하다. 나의 원천은 늘 이 고향이었다"며 "올해 8월에는 5~6년간 해외를 돌아보려고 한다. 시력을 잃는다고 하더라도 예술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고 했다.



최황지 기자

최황지 기자 orchid@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