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현의 여의도칼럼 4>김종인式 보수개조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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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칼럼
김정현의 여의도칼럼 4>김종인式 보수개조실험
  • 입력 : 2020. 05.31(일) 14:35
  • 편집에디터
김정현 정치평론가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대위가 오늘 본격 활동을 시작한다. 일단 내년 4월까지 임기연장을 해놨고 경우에 따라 계속할 가능성도 있으니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까지 상당 기간 제1야당을 이끌게 된 것이다. 김종인의 미래통합당은 과거 걸핏하면 장외로 뛰쳐나간 황교안의 자유한국당과 달라 여야관계도 영향을 받을 것이고 상대인 민주당은 긴장해야 할 것이다.

김종인 비대위는 보수 정당사에서 중대한 분기점들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지금 미래통합당은 이명박-박근혜 시절의 '엉터리' 보수정당을 개조하라는 당 안팎의 요구를 받고 있다. 이런 와중에 진영개념이 희박한 그가 나섰다. 그는 보수와 진보를 넘나드는 몇 안되는 정치인 중 하나다. 적대적인 두 정당에서 지휘봉을 잡은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그는 여론을 읽고 자기주도형으로 끌고 가는데 능수능란하다. 이번에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을 접수(?)하면서도 여론전을 통해 반발을 무력화시키고 자신의 의도를 관철했다. 개성과 주의주장이 강해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다가 결별했는가 하면 문재인 대표의 삼고초려 요청을 받고 비대위원장을 맡아 성공적으로 20대 총선을 치렀지만 잠시 국회의원을 지내다가 표표히 떠났다. 현재 정치권에서 선출되지 않았으면서 막강한 권력을 누리는 유일한 위치다. '차르'라는 별명이 그냥 붙여진 것이 아니다.

김종인 비대위의 키워드는 '실용' '변화' '속도'다. 벌써부터 반발이 나오지만 우선 기존의 미래통합당에서 익숙한 '자유우파' 같은 단어와 결별할 것이다. 이미 진보, 보수, 중도라는 이념적 구분을 거부하는 전략을 취했다. 살아남기 위해 시대변화에 빨리 적응하고 변화하자고 한다. 멸종위기로 접어든 공룡을 체질을 바꿔 새로운 종(種)으로 만들어내겠다는 것이다.

김종인식 보수개조작업은 숨가쁘게 몰아칠 것이다. 우선 비주얼과 속도감으로 충격을 줘서 총선후 압도적으로 기울어진 여론지형을 효과적으로 바꾸려한다. 정당의 주요 회의에서 관행화된 모두발언 방식을 없애고 원 보이스로 간다는 것이 단적인 예다. 당헌당규에서 보수도 빼고 궁극적으로 당명도 바꿀 것이다. 비대위에 여성과 30대를 대거 포진시켰다. 국회의원은 손을 대지 못하겠지만 당 기간조직도 바꿀 것이다. 여의도연구원은 이미 해체 수순으로 들어갔다.

정책노선의 변화는 예고되어 있다. 미래통합당 하면 생각나는 친재벌, 기득권, 성장중심 등 이미지는 앞으로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벌써부터 '약자와의 동행' '독일식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코로나 위기 극복 명분으로 기본소득제 도입, 국민연금 공공투자, 경제민주화를 위한 상법개정, 대기업 규제강화 등을 쓰나미처럼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심지어 좌파성향의 사회주의적 정책으로 까지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다. 어느 정당이 진보정당이고 어느 정당이 보수정당 인지 국민들이 헷갈릴 정도의 실험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본인은 경제민주화 보다 더 센 걸 내놔도 놀라지 말라고 예고했고 오세훈 면전에서 무상급식은 바보같은 짓이었다고 거침없이 공박했다.

그렇다면 김종인 비대위는 순항할까? 현재로서는 안갯속이다. 미래통합당은 총선에 참패해 103석 '영남당'으로 쪼그라들었지만 역사적으로 공화당-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으로 이어지는, 미국 공화당과 같은 그랜드 올드 파티(Grand Old Party)다. 그만큼 뿌리가 깊다. 총선 결과 우리 사회 주류가 교체됐는지 논쟁이 있지만 수십년 동안 산업화를 이룬 세력을 기반으로 하고 지역적으로는 인구가 많은 영남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청산해야 할 것도 많지만 유산도 많다는 이야기다. 결코 만만한 정당이 아니다.

처음 김종인 카드가 나왔을 때 일부 중진들이 격렬히 비판한 것이 상징적인 장면이다. 우선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당 개조실험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현역의원들이다. 선거는 끝났고 임기 4년이 시작됐다. 정당에서 공천권 없는 비대위원장은 허수아비나 다름없다. 영(令)이 서기 힘들다. 선거가 4년이나 남았는데 지금 비대위원장이 죽으란다고 죽는 시늉이나 할 현역의원들이 몇 명이나 있겠는가. 민주당 비대위원장을 맡았을 때는 공천권을 쥐고 있었다. 현역 국회의원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흔들었기 때문에 성공했다. 내년 4월 부산시장 등 재보궐선거가 있다고 하지만 거기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있다. 일단 부산시장 선거를 대통령선거의 전초전으로 보고 'PK목장의 결투'에 사활을 걸겠지만 승패는 병가지상사다.

미래통합당의 잠룡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면 자연히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공간도 좁아질 것이다. 당밖에서는 홍준표 전대표가, 당내에서는 유승민의원과 원희룡지사가 이미 사실상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모두 호락호락하지 않다. 여기에 발을 반쯤 보수진영 쪽에 담그고 있는 안철수 대표도 있다. 모두가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바라는 대선주자하고는 거리가 있다. 그는 40대 기수론 같이 시대변화를 상징할 수 있는 대선후보를 바라지만 교통정리가 쉽지 않다. 또 대통령후보를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지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후보는 시쳇말로 자신이 노력하고 하늘이 도와줘야 되는 것이지 누가 점지한다고 하루 아침에 낙하산식으로 설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