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현의 여의도 칼럼 6> "햇볕정책 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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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칼럼
김정현의 여의도 칼럼 6> "햇볕정책 20년"
  • 입력 : 2020. 06.14(일) 13:58
  • 편집에디터
김정현 정치평론가
오늘은 6·15 정상회담이 열린 지 20주년이 되는 날이다. 해마다 김대중평화센터 주관으로 열리던 기념식이 올해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정부와 공동 주관으로 열린다. 장소도 오두산전망대여서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메시지에 관심이 쏠린다.

2000년 6·15정상회담은 김대중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인 햇볕정책의 결실이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만남은 냉전의 낡은 틀을 뛰어넘는 정치적 상상력으로 새로운 질서에 대한 희망을 줬다. 그해 연말 DJ가 받은 노벨평화상도 이런 역사의 전진에 대한 평가였을 것이다.

최근 북의 김여정 제1부부장의 담화로 남북관계가 혼돈과 어려움 속에 빠져들고 있지만 남북관계는 좋은 시절보다 안 좋은 시절이 더 많았다. 우리는 남북관계가 어려워질 때마다 "6·15로 돌아가자"며 6·15정상회담을 성사시켰던 DJ라면 어떻게 했을까 라고 반문해왔는데 최근 남북관계 해법으로 남북정상회담이 다시 거론되고 있는 것도 그같은 이유에서 일 것이다.

김여정 부부장이 남측에 마지막으로 모습을 나타낸 것은 1년 전 이희호 여사가 소천할 때 판문점까지 김정은 위원장 조화를 가지고 내려와서다. 당시 우리 측에서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박지원 의원 등이 만났다. 이날 남북 양측은 자연스럽게6·15와 DJ, 이희호여사,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눴음을 짐작케 한다. 그 전에 이미 세번의 남북정상회담, 두번의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김여정 부부장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최근 담화는 자신이 남북관계를 주관하는 북측 최고책임자라는 점을 대내외에 공표한 것이고 싫든 좋든 우리는 김여정 부부장을 상대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김여정 부부장은 백두혈통으로 김정은 위원장과 지근거리에 있고 우리 측과도 구면이어서 나쁜 것만은 아니다.

햇볕정책은 지금은 남북관계에서 기본 담론으로 자리 잡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순탄치만은 않았다. 남북관계는 고도의 정치행위여서 안팎으로 많은 도전을 받았는데 2003년 대북송금특검사건이 시작이었다.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 한나라당이 주도한 대북송금특검법이 국무회의를 통과하자 DJ측은 물론 대통령선거에서 호남을 비롯해 노무현후보를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이 큰 충격을 받았고 참여정부 내내 양측이 대립하고 지지층이 분열하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이 사건은6·15정상회담 당시 밀사 역할을 했던 박지원 전 비서실장이 2006년 9월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으면서 일단락됐다. 당시 민주당 부대변인이었던 나는 이에 대해 "남북관계의 경색과 동북아의 불안정한 정세를 초래한 근인(根因)이 됐다" 고 논평한 적이 있다. DJ는 그 뒤 박지원 전실장이 감옥에서 풀려난 직후 전남대 강연 등에서 대북송금특검을 비난하자 동교동 자택으로 불러 노무현 대통령을 '우리 대통령'으로 인정하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노무현대통령은 임기말인 2007년 10·4 남북정상회담을 열고 남북관계를 진전시켰으나 이명박정권이 들어서고 남북관계는 파탄일로를 걸었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서거한 직후 혼자 남은 DJ는 2009년 6·15 기념식에서 "나쁜 정치를 거부하면 나쁜 정치는 망한다. 작게는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된다. 하려고 하면 너무 많다.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이라도 할 수 있다"는 그 유명한 '담벼락 발언'을 남겼다. 이 발언을 계기로 공황상태에 빠져있던 진보진영이 다시 추스리며 전열을 가다듬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아래서 남북관계는 천안함 사건, 5·24조치, 금강산관광 중단, 개성공단 폐쇄 등 최악의 국면이 계속됐다. 남북관계가 계속 긴장상태로 치닫자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햇볕정책 기조 아래서 남북화해협력을 줄기차게 촉구했으나 마이동풍이었다. 이 와중에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후보가 박근혜후보에게 패배하고 진보진영은 다시 깊은 좌절로 빠져들었다. 이후 20대 총선에서 안철수대표가 이끄는 국민의당이 제3당으로 약진했다. 그러나 박근혜 탄핵 후 치러진 대통령선거 TV토론에서 안철수후보는 "햇볕정책은 공도 있고 과도 있다"는 말로 자신의 지지층에게 큰 혼란을 줬고 지지율이 급속히 빠지는 계기로 작용했다. 대선 결과를 인정하지 못한 그는 햇볕정책을 비판하는 유승민후보와 접촉했고 이후 안철수와 호남정치는 결별을 시작했다. 안철수 쪽은 유승민과 바른미래당으로, 호남계열은 민주평화당 대안신당 민생당 등으로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 결과는 3지대의 소멸로 나타난 지난 4·15총선이었다. 이 모두에 햇볕정책이 쐐기로 작용한 것이다.

햇볕정책의 지난 20년 우여곡절은 그것이 아직도 우리 정치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정치적 의제라는 점을 보여준다. 우리 민족과 민주주의, 그리고 평화통일에 대한 강한 신념에서 출발한 햇볕정책이 없었다면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진보정권의 남북화해협력시대는 없었을 것이다. 비록 지금 일시적으로 남북관계가 어두운 터널로 접어들고 있지만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한다. 한겨울에 무작정 남의 외투를 벗길 수는 없는 법이고 남북관계는 힘과 인내, 유연함이 뒷받침됐을 때 성공한다는 것을 햇볕정책의 지난 20년 세월이 우리에게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