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갈매기의 꿈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갈매기의 꿈
  • 입력 : 2021. 04.15(목) 14:11
  • 편집에디터

갈매기 짝짓기-이효웅 제공

"여린 풀 위로 솔솔바람 부는 기슭/ 높은 돛배 안에 홀로 잠 못 이루네/ 넓게 트인 들판엔 별빛 드리우고/ 달빛에 일렁일렁 양자강 흐르네/ 어찌 문장으로 이름을 드러내리/ 늙고 병들면 물러나야 하는 것을/ 이리 저리 바람에 정처 없이 날리니/ 천지간을 떠도는 난 한 마리 갈매기" 시의 성인(聖人)이라 불리는 두보(杜甫)의 '여야서회(旅夜書懷)'다. 평생을 가난과 병으로 고생하면서 결국 유랑하다 병사했다. 훗날 시성(詩聖)으로 추앙받게 되었지만 정작 고독하기만 했던 생전의 심사를 한 마리 갈매기로 드러냈다. 어디 두보뿐이겠는가.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동양의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갈매기를 노래하거나 그렸다. "백구야 펄펄 나지마라 너 잡을 내 아니다. 성상이 바리시니 너를 좇아 여기 왔다"로 시작하는 <백구사(白鷗詞)>를 대표격으로 거론해도 좋으리라. 백구(白鷗)는 문자 그대로 흰 갈매기다. <백구가(白鷗歌)>라고도 하는 이 노래는 가곡 언락이나 12가사의 하나로도 불리고 창부타령 등의 민요로도 불린다. 가사는 '청구영언', '가곡원류', '남훈태평가' 등에 실려 있다. 판소리 단가 <강상 풍월>에도 이 가사를 활용한다. 노래뿐일까. 사립을 쓴 선비가 바다나 강의 어귀에서 낚싯대를 드리운 풍경에는 여지없이 갈매기가 등장한다. 그림 속의 화자들은 왜 하나같이 빈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는 것일까. 작자나 연대 미상으로 이토록 광범위하게 갈매기를 형용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고독, 고립, 외로움, 쓸쓸함, 대개 이런 정조(情調)로 읽힌다. 하지만 행간은 다르다. 오히려 기다림이나 어떤 꿈들이 빼곡하게 들어있기 때문이다. 가난과 질병으로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던 두보가 그렇고, 셀 수도 없는 여러 섬 지역 유배자들이 그렇다.

조희룡의 만구음관(萬鷗唫館), 만 마리의 갈매기가 노래하는 집

지금의 신안군 임자도에 만 마리의 갈매기가 우는 집이라는 뜻의 만구음관 간판을 걸고 유배생활을 했던 우봉 조희룡(1789~1866)이 대표적인 사람이다. 궁중의 도서를 관장하는 낮은 벼슬아치이자 서민계열이었기 때문일까. 여항(閭巷)의 묵객으로 불린다. 일반 백성이라는 뜻이긴 하지만 중인, 서얼, 서리, 평민들을 아우르며 양반네들도 포섭하는 개념이다. 위항문학이니 중인문학이니 여항화가니 하는 언설이 그것이다. 1851년 그의 나이 63세 되던 해, 추사 김정희의 심복이라는 죄목으로 임자도에 유배된다. 이선옥은 그의 글 '조희룡의 감성과 작품에 표현된 미감'(호남문화연구)에서 오히려 서화를 통해 교류했던 사이로 해석한다. 추사로부터 난초 그리는 법을 배우긴 했지만 여러 가지 상황들이 제자라기보다는 교분의 관계를 말해준다는 것이다. 추사의 제자 중 남종문인화의 대를 이은 소치 허련과 대조적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김정희가 아들 상우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다. "조희룡 같은 무리는 나에게서 난초 치는 법을 배웠으나 끝내 그림 그리는 법칙 한 길을 면치 못했으니 이는 그의 가슴 속에 문자의 향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과연 그랬을까? 그림뿐 아니라 숱하게 거둔 우봉의 문학적 성과는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중국의 대치에 견주어 소치라는 호를 허련에게 주었던 시선과는 전혀 다른 폄하의 풍경이다. 임자도에서의 억울한 귀양살이보다는 이런 신분에 대한 하대나 폄하가 슬펐을 수도 있겠다. 유배초기에는 심한 울분에 쌓였던 듯하다. 그의 그림들 중 상당수가 횟수로 3년밖에 되지 않는 임자도 유배기간에 그려졌다는 것도 경이로운 일이다. 그만큼 그림에 진솔한 속내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여항인으로서의 울분과 섬 유배의 절대고독이 예술과 문학으로 승화되었던 것이다.

세월호 7주년, 갈매기 울음과 노래의 간극

갈매기 소리는 우는 소리일까 노래하는 소리일까. 우리는 흔히 새가 운다고 표현하고 서구권에서는 새가 노래한다고 표현한다. 물론 이 설명이 '운다(Cry)'와 '노래한다(Sing)'에 완벽하게 대응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몸을 악기에 비유한다면 단지 목젖을 매개 삼을 뿐이지만 흉부와 뇌파를 통째로 움직이는 것에 비유할 수 있겠다. 우봉의 유배 초기는 갈매기 소리를 울음으로 들었던 듯하다. 두보가 '나는 천지간을 떠도는 한 마리 갈매기'라고 표현했던 것처럼 임자도 해변의 벌떼 같은 갈매기들에게 자신의 고독을 투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자신의 집을 만 마리의 갈매기가 우는 집이라고 하였겠는가. 하지만 점차 여항인으로서의 울분이 예술로 승화되면서 갈매기 소리는 점차 노래 소리가 되지 않았을까? "검속(檢束)이 한 번 변하여 환락에 이르고, 환락이 변하여 취정(醉情)에 이르고, 취정이 변하여 글씨에 이르고, 글씨가 변하여 그림에 이르고, 그림이 변하여 돌에 이르고, 난(蘭草)에 이르고, 광도난말(狂塗亂抹)에 이르고, 권태에 이르고, 잠에 이르고, 꿈에 이르고, 나비의 훨훨 날음에 이른다(조희룡 전집 중에서)." 여기서의 검속은 물론 유배상황을 말한다. 고석규는 그의 글 '임자도 유배가 조희룡의 예술에 미친 영향'(도서문화)에서 이를 작가의 창의성으로 해석한다. 자유분방한 모습, 기존 틀에서 벗어나 무위이화의 지경으로 나아가려던 그의 지향이 그의 작품을 독창적인 세계로 이끌어가는 원동력이었다는 것이다. 한 때는 절망이었을 임자도가 이 창조력의 원동력이었고 이 그림들이 다시 사람들을 위로하는 그림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디 임자도 뿐이겠는가. 우리나라 삼천 삼백 여개의 섬들이 모두 임자도들이지 않겠는가. 문제는 우봉처럼 이 고독을 승화시키느냐 절망하느냐의 차이 아닐까. 아, 덧없는 세월 간단없이 흘러 세월호 7주기를 맞이했다. 규명이나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먼저 가신 이들에게 한없이 미안하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리처드바크는 그의 소설 '갈매기의 꿈'에서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고 말한다. 두보나 우봉의 극복을 훨씬 뛰어넘는 승화라고나 할까. 소설의 말미에서 또 이렇게 말한다. "갈매기 앤서니는 조나단의 이름을 덮은 의례와 의식을 거부한 채 자신의 길을 갔고, 그렇게 행동하는 젊은 새들이 점점 많아졌다. 그들은 삶의 허망함으로 애달팠지만 적어도 자신에게 정직했고, 삶이 허망하다는 사실을 직시할 만큼 용기 있었다." 그렇다. 역설적으로 세월호가 말해주는 것들이 있다. 삶이 허망하다는 사실을 직시할 만큼 용기를 내야하고, 규정된 의례와 의식을 거부하며, 가만있으라고 할 때 가만 있지 않아야함을. 튤립으로 화사한 임자도 해변만 그럴까. 세월호 스러지던 동거차도에도 갈매기들 높디높게 날아올라 살아남은 자들의 용기를 기다리고 있다. 재삼 혼령들 앞에 머리 숙인다.

남도인문학팁-갈매기

세계 약 86종이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는 붉은부리갈매기, 재갈매기, 괭이갈매기, 검은머리갈매기, 목테갈매기, 세가락갈매기 등 갈매기속 8종과 흰죽지갈매기, 쇠제비갈매기 등 제비갈매기속 3종이 알려져 있다. 이중 텃새는 괭이갈매기뿐이다. 소리가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동북아시아에 국한된 종으로 우리나라 연안 무인도서에 집단 번식한다. 나머지 6종은 겨울새, 1종은 여름새, 10종은 나그네새, 2종은 길 잃은 철새(迷鳥)다. 내가 수십일 여에 걸쳐 세 번의 무인도답사를 하면서 참관했던 곳 중에서는 격렬비열도, 직도, 십이동파도 등지가 기억에 남는다. 우는 새와 노래하는 새, 리처드바크의 갈매기의 꿈처럼 이제는 세월호, 못다 꾼 그들의 꿈을 기억하고 재구성하고 실천하는 과제들이 남아 있다.

독도 괭이갈매기-이효웅 제공

삼척 월미도 갈매기-이효웅 제공

옹진부도, 삼척 월미도 괭이갈매기-이효웅 제공

우리나라 괭이갈매기 산란지-이효웅 제공

직도 괭이갈매기-이효웅 제공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