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사제' 김성용 신부 "43년 전 날 살렸던 1만원, 이걸로 다 갚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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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사제' 김성용 신부 "43년 전 날 살렸던 1만원, 이걸로 다 갚네"
11일 국립5·18민주묘역 참배
이성학 장로 비석 어루만지며 헌화
'광주참상 보고'... 계엄군 만행 알려
  • 입력 : 2023. 05.11(목) 17:51
  • 박소영 수습기자 soyeong.park@jnilbo.com
11일 오전 11께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은 김성용 신부가 80년 오월 당시 함께 한 이성학 장로 묘에 헌화하고 있다. 박소영 수습기자
“그때 1만원, 나는 이걸로 다 갚네”

11일 오전 11시께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은 ‘5월의 사제’ 김성용 신부가 이성학 장로 묘에 헌화하며 말했다. 거동이 불편한 김 신부는 비석 앞에 주저앉아 1980년 5월26일 광주 탈출 전 상황을 회상했다.

그는 “서울에 가야 하는데 주머니에 1만원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때 여길 탈출하라고 한 홍남순 변호사와 이성학 장로한테 있는 대로 다 내놓으라고 하니 각 1만원씩을 줬다”며 “그렇게 광주를 탈출했다. 1만원이 나를 살린 거다”며 비석을 어루만졌다.

광주에서 나온 후 김 신부는 서울에 있는 김수환 추기경에게 80년 5월의 참상을 알렸다. 당시 남동성당 주임이었던 그는 직접 겪은 광주를 ‘분노보다는 슬픔이’라는 보고서로 작성해 전국 성당에 돌리며 계엄군의 만행을 세상에 알렸다. 또 광주 상황을 녹음한 1시간짜리 테이프도 함께 배포했다. 이 때문에 김 신부는 투옥됐고 1981년 8·15특사로 풀려났다.

그 후 오랜 시간 그때 받은 만원을 가슴 속에 품고 살던 김 신부는 이날 국화 한 송이로 이 장로에게 빚을 갚았다. 이날 참배는 위인백 5·18기념행사위원회 전 상임위원장도 함께했다. 위 전 위원장은 80년 5월26일 시민 수습위원으로 김 신부와 계엄군의 광주 시내 진입을 막기 위한 ‘죽음의 행진’에 참여했다.

위 전 위원장은 “위대한 오월 항쟁을 여전히 곡해하는 국민들이 많다. 우리가 이 정신을 기리고 이어가기 위해선 헌법 전문 수록이 시급하다”며 “오는 18일 5·18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헌법 전문 수록에 대한 확실한 의지를 보여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김 신부는 1934년 전북 신태인에서 태어나 목포고, 서울가톨릭대학(광주교구 소속 신학생)을 졸업해, 나주성당 보좌신부, 담양성당 주임신부 등을 거쳐 80년 5월 남동성당 주임신부, 5·18 시민수습대책위원회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박소영 수습기자 soyeong.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