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이타적 유전자·박재항>성소수자와 좌표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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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이타적 유전자·박재항>성소수자와 좌표찍기
박재항 한림대학교 글로벌학부 겸임교수
  • 입력 : 2023. 06.07(수) 12:25
성전환수술로 관심을 받고 있는 나화린 선수가 지난 5월 강원도민체전에서 스크래치 종목 1위를 차지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있다. 뉴시스
박재항 겸임교수
광역자치단체 안에서 벌어진 도민체육대회 소식이 이렇게 전국에 화제가 된 적은 없었다. 강원도민체육대회의 사이클 여자부에 출전하여 두 개의 금메달과 하나의 은메달을 차지한 선수가 주인공이었다. 대회가 열리기 전부터 이 선수의 참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그가 바로 성전환수술을 받은 지 일년이 된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성전환자의 대회 참가를 금지하는 규정이 없으므로 문제가 없다고 대회 주최측은 말했다. 반대하는 이들은 ‘2차 성징을 지나 남성 선수로서 근육과 운동기술이 완성됐기 때문에 다른 여성 선수들보다 절대 유리’하며, 그렇기 때문에 다른 여성 선수들의 ‘기회를 박탈’한다고 반발했다.

성전환수술을 거쳐 여성이 된 이로부터 촉발된 소동이 미국 맥주 시장에는 더 큰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다. 딜런 멀베이니라는 1000만이 넘는 틱톡 팔로워와 100만이 넘는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자랑하는 인플루언서가 있다. 아역배우 출신의 멀베이니는 2022년 3월에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하면서 그 과정과 의미를 자신의 소셜미디어로 알리면서 화제를 모았다. 그가 미국 시간으로 2023년 4월1일에 자신이 여성이 되는 성전환수술 1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일이라며 자신의 얼굴이 새겨진 버드라이트 맥주 캔을 보이고 마시는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 포스팅을 특정 해시태그와 함께 재전송한 사람에게 미화 1만5000달러를 주겠다는 경품 행사까지 벌이겠다고 알렸다.

지난 3월 딜런 멀베이니는 성전환수술 1주년을 기념하며 버드라이트 맥주를 마시는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이후 미국 보수주의자 중심으로 버드라이트 불매운동이 일어났다. 딜런 멀베이니 인스타그램
양성 체계가 신의 섭리임을 주장하는 미국 남부를 중심으로 하는 보수주의자들이 들고 일어나는 건 예견한 바였다. 그런데 그 반발 강도와 확산 형세가 포스팅을 한 트랜스젠더인 멀베이니나 버드라이트에서 예상한 것보다 훨씬 거셌다. 보수 가치를 지향하고 지킨다는 라디오 진행자들이 트위터로 버드라이트를 비난하면서 보이콧, 곧 불매운동을 펼치자고 했다. 키드록이란 컨트리 가수는 버드라이트 캔들을 사격 과녁 삼아서 총으로 그들을 맞춰 파괴하는 퍼포먼스를 동영상으로 그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공개했다.

격렬한 반응이 나오고 주로 정치적 보수층의 관심이 쏠린다 하니 그들을 주요 시청자로 하는 폭스(Fox)TV를 선봉으로 한 보수적 성향의 언론 매체들이 다투어 연일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단순히 버드라이트가 성전환여성과 협업하여 역풍과 반발을 사고 있다는 단순한 보도 이상으로 계속 화제를 이어가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를테면 버드라이트가 촉발한 불매운동으로 남부 지역의 앤하우저부시 협력업체들이 가동을 중단하면서 지역 경제가 타격을 입고 있다는 식의 교묘한 엮어 때리기를 시현하고 있다.

와중에 생각하지도 못한 반전 같은 유탄을 맞은 브랜드도 나타났다. 미국 남부 테네시 주의 대표 주류인, 흔히 버번 위스키의 대명사로 불리는 잭다니엘스이다. 2년 전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응원하며 잭다니엘스에서는 성전환해 여성이 된 이들을 모델로 한 포스터를 발행했는데, 그걸 이번 버드라이트 사태에 찾아내서 물타기처럼 SNS에 올린 이가 있었다. 먼지 털듯 과거에서 끄집어낸 사진이 몇몇 이들에게 즉각 효과를 발휘했다. 자신의 생애 40년 간 잭다니엘스를 즐겨 마셨다는 미국 남부의 전형적인 백인 육체 노동자의 전형적인 외모에 의상을 갖춰 입은 이는 가지고 있던 잭다니엘스 기념품들을 집밖으로 가지고 와서 버리는 퍼포먼스를 SNS에 올려 화제가 되었다.

버드라이트의 모기업인 앤하우저부시의 대표는 “우리는 사람들을 분열시키는 논란을 일으키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맥주를 매개로 사람들을 함께 하도록 만드는 비즈니스에 종사하고 있습니다”라는 변명과 같은 이야기를 전했다. 이어 4월 중순에는 자신들이 전통을 중시하는 미국 중서부에서 태어난 기업이며, 미국의 가치를 옹호하고 실천한다며 보수층에 영합하는 기색이 역력한 TV광고를 서둘러 집행했다. 그 와중에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기획하고 실행한 마케팅 담당자들을 휴가(leave)라고 발표했으나 실직적으로 해고하는 조치를 취했다. 폭스TV에서 간판 앵커로 활약했고, 지금도 보수 성향의 방송인 중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메긴 켈리는 의기양양하게 이런 트윗을 올렸다.

“버드와이저가 백기를 흔들었다. 성정체성을 옹호한다고 잘난 체를 하다가 브랜드가 완전히 망가진지 몇 주가 지나서야. 다른 기업들은 이 사례를 보고 배워야 한다. 우리가 한 것 봤지.”

앤하우저부시의 유화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매출은 계속 떨어졌다. 게다가 그들의 평판까지 떨어져, ‘가장 일하기 좋은 직장’에서 최고 순위에서 밀렸으며, 당연히 양성평등지수 기업 평가도 추락했다. 불매운동에 나선 이들의 기세만 올려주는 효과를 낸 것이다. 앞서 잭다니엘스의 2년 전 포스터를 소환했던 이들은 3월 여성의 날 주간에 버드라이트의 가장 큰 경쟁사인 밀러라이트에서 집행한 광고를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맥주산업의 성장 과정에서 여성의 역할이 큰데, 수영복을 입힌 사진으로만 여성을 소비하는 행태를 꼬집은 광고를 가지고 성평등을 내세우며 ‘깨어 있는(woke)’ 척하는 광고라는 게 이유였다. ‘woke’라는 단어를 ‘잘난 체’, ‘표리부동’하는 인물이라는 식으로 해석하며, 성소수자(LGBTQ+)를 옹호하는 듯한 광고를 공격하는데, 전천후 무기처럼 쓰고 있다.

그래도 꿋꿋하게 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며 배려하겠다는 의지를 발표하는 이들이 있다. 성정체성 측면에서 지극히 보수적인 인도를 배경으로 스타벅스는 성전환해 딸이 된 아들을 그에 반대하며 분노했던 아버지가 받아들이는 모습을 스타벅스에서 시행하는 고객이 원하는 이름을 불러주는 방침과 연계하여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이름을 바로 불러주자는 스타벅스가 2021년부터 시행하던 캠페인과 연장선상에서 벌였다고도 할 수 있는데, 지금과 같이 바로 불매운동의 역풍이 수시로 일어나는 시기에 나온 광고이기에 더욱 빛났다. 노스페이스에서는 여성처럼 꾸민 동성애자 남성을 전면에 내세우며 성소수자 여름 캠프를 후원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찬반을 떠나 용기 있는 행동이라 할 수 있다.

강원도민체전에 참가했던 성전환 여성이 10월에 열리는 전국체육대회에도 출전한다는 소식이 나왔다. 이를 반대하는 시민과 단체들로부터 철원군체육회와 자전거연맹 등에 항의 전화가 잇따르고, 선수의 블로그 등에 악플이 달리고 있다고 한다. 관점에 따라 찬반은 갈릴 수 있다. 그러나 마음에 들지 이를 ‘좌표찍기’하고, 먼지털이 하듯 공격거리를 끄집어내 응징부터 한다는 식의 대응으로 치닫지 않을까, 미국의 마케팅계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며 좀 우려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