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 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 프랑스 절대왕정 바로크 음악 정수를 만나다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
[전남일보] 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 프랑스 절대왕정 바로크 음악 정수를 만나다
<륄리의 오페라 ‘아르미드’>
루이 14세, 절대 권력 강화 수단 이용
생애 마지막 작품… 최고 완성도 평가
타소의 ‘해방된 예루살렘’ 줄거리 차용
화려한 의상·스펙타클한 무대 등 압권
  • 입력 : 2023. 07.27(목) 09:57
마술에 걸려 잠이 든 르노를 죽이려 다가선 아르미드. 출처 mezzo tv
2022년 ‘아르미드’ 공연실황- Warszawska Opera Kameralna. 출처 폴란드 바르샤바 오페라 극장
예술은 인류가 살아온 모든 발자취에 특별함을 담는 보물이다. 예술은 인간이 창조한 모든 것에 정신을 부여한 행위의 산물이며 그것은 우리가 이룬 문화중 가장 으뜸으로, 인류를 발전하게 만드는 창조의 아이템이 됐다. 삶 속 전 분야의 정신이며 가장 중심이 되는 동력인 예술은 인류가 만든 사회 안에서 규칙과 법을 제정하고 사회구조를 만드는 정치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해왔다.

이미지 정치가 대세를 이루며, 국가 지도자가 되기 위한 이미지 메이킹은 정치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된다. TV 생중계로 만나는 유력 정치인들은 매력적인 화술과 외모 역시 연예인 못지않게 갖춰야 할 덕목으로 부상했으며, 이로 인해 유권자에게 더욱 친근하고 긍정적 이미지를 노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근래 정치인들은 민중들이 사랑하는 대중예술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며,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우리는 바로크 시대 태양왕으로 불리던 루이 14세를 다룬 영화 <왕의 춤>을 통해 현대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이러한 정치와 예술의 만남, 예술에 대한 정치인들의 구애와 활용을 볼 수 있다.

절대왕정 시대 국왕은 성장하는 귀족 세력을 억압하고 절대 권력자로 권위를 선포하는 수단으로 예술을 활용한 프랑스 루이 14세는 자신을 ‘신의 아들’로 선포하고, 이를 위해 특히 공연 예술을 매개로 하는 프로파간다를 실행한다. 그때 그에게 영감을 주고 ‘태양왕’으로 승화시키는 역할의 주역을 한 이가 이탈리아 출신 프랑스 작곡가 륄리(Jean Baptiste Lully, 1632~1687)다. 궁정악장이었던 륄리는 발레리노였던 루이 14세의 절대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해주기 위해 남성스럽고 웅장한 발레곡 작곡과 더불어 안무까지 참여하며 궁정 행사 때, 왕이 춤으로 ‘태양왕’으로서의 절도 있고 넘치는 힘을 발산하는 전투적 카리스마를 부각되도록 했다.

총애를 받은 륄리는 이어 역동적인 발레의 비중을 높인 프랑스적 오페라를 구상하고, 절대 군정에 적합한 그리스 신화의 영웅담을 소재로 하는 오페라를 죽기 전까지 매해 올리는 열정을 쏟았다. 그중 태양왕이라는 별칭과 오버랩되는 제우스에 관한 내용인 오페라 <파에돈>은 루이 14가 특별히 생각하는 오페라로 그가 당시 전제군주로서 예술을 권력의 도구로 탁월하게 이용하는 전략가였음을 알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당시 어쨌건 권력의 예술에 대한 지배라 할 수 있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때의 예술에 대한 프로파간다는 새로운 프랑스적 오페라의 등장을 이끄는 계기가 됐고 발레와 어우러지는 색다른 이 오페라는 명맥을 이어 내려오며, 더욱 대형화되고 화려해지는 세계 오페라 제작 추세에 큰 영향을 끼쳤다.

1672년 무렵에 륄리는 프랑스에서 주로 왕의 여흥 거리로 알려진 오페라의 작곡과 공연에 대한 독점권을 얻었다. 그는 12편의 오페라를 작곡했는데 그중 마지막 작품인 는 최고의 완성도를 자랑하며, 헨델의 바로크 오페라들과 더불어 그의 작품 중 현대에도 가장 많이 연주되는 오페라이다.

륄리의 오페라는 거의 서곡과 5막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서곡은 루이 14세에게 바치는 곡이다. 륄리는 단지 루이 14세를 위한 궁정 오페라에서 벗어나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기 충분한 작품을 만들었다. <아르미드>는 이탈리아 시인인 타소의 장편서사시인 <해방된 예루살렘>의 줄거리를 차용했다. 여자 마법사 아르미드의 치명적인 사랑을 그려낸 이 오페라는 프랑스 관객이 좋아하는 웅장한 움직임과 변화무쌍한 무대 전환의 여지가 많은 작품이다.

서막은 루이 14세의 영광을 노래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1막에 여자 마법사 아르미드는 벗들과 함께 기사 르노가 자신에게 무관심하다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마법사이며 다마스카스 왕인 사촌 이드라오가 빨리 남편감을 고르라고 재촉한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르노를 이기는 자만이 자기에게 어울리는 사람일 것이라고 말한다. 이때 기사 아론테가 등장해 르노가 관리하던 죄수들을 풀어 주었다고 말하고 이에 아르미드와 이드라오는 복수를 결심한다. 2막이 시작 되고 등장한 기사 아르테미도르는 르노에게 자신을 풀어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며 아르미드로부터 그를 보호하겠다고 다짐한다. 이어서 이드라오와 아르미드는 르노에게 준비해온 마술로 잠을 재우고 아르미드는 손에 칼을 들고서 르노의 곁으로 다가가지만, 그를 사랑한 나머지 죽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악마에게 자기와 함께 르노를 멀리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 3막에서는 르노가 마술의 효력으로 인해 자신을 사랑하는 아르미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녀는 르노의 거짓 사랑을 지우기 위해 운명의 여신 미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렇지만 르노에 대한 혼란한 마음에 미움을 쫓아버린다. 쫓겨난 미움은 이 사랑이 그녀를 파멸로 이르게 할 것이라 예언한다. 4막에서는 우발드와 덴마크 기사가 르노를 찾아 떠나고 아르미드가 보낸 괴물들과 싸우며 속임수의 마법을 부수는 스펙타클한 장면이다. 그리고 5막에서는 부숴지는 자신의 마법에 당황한 아르미드가 지옥 신의 도움으로 르노를 속박해둔다. 곧이어 우발드와 덴마크 기사가 도착해 르노에게 걸린 주문을 깨버리고 이때 아르미드가 나타나 르노에게 간청과 위협을 한다. 하지만 르노를 붙들 수 없음을 인지하고 절망해 혼자 남은 아르미드는 악마에게 궁전을 파괴해 버릴 것을 명령한 후 마차를 타고서 날아오르며 막을 내린다.

가브리엥 생토뱅이 1761년 그린 아르미드 공연 장면. 출처 위키피디아
프랑스 바로크 오페라는 음악의 비루투오적 기교가 난무하고 무대와 의상 등이 화려함의 극치를 내달리고 있다. 여기에 프랑스적 발레까지 덧입혀진 륄리의 작품은 정말 특별하다. 하지만 당시 외적으로 화려함을 추구하다 보니 대본의 완성도와 스토리 전개의 미흡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아르미드> 역시 구조적 결함이 있음을 인지할 수 있으나, 이를 뛰어넘는 노래와 춤사위, 그리고 신의 영역과 인간 세계를 넘나드는 화려하고 스펙타클한 무대, 그 자체만으로도 당시 관객에게는 이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섰을 것이다.

바로크 오페라는 당시 판타지와 사랑, 그리고 절대군주를 신의 영역에 도달한 인간으로 만들기도 했다. 륄리처럼 서막은 항상 왕을 찬미한다. 당시 작품들은 영웅을 찬미하며 시대를 이끄는 리더가 영웅이고 힘 있는 자라는 것을 관객들에게 인식시켜주기도 했다. 프랑스 오페라는 권력의 비호를 받으며 성장하지만, 훗날 오페라의 이러한 성장이 사회에 대한 부조리에 대한 경고와 절대 권력에 저항하는 도구로 발전함은 아이러니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서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오페라 부파가 사회 계층 간의 불합리 등을 조롱하고, 사실주의 오페라는 이제 영웅이나 왕의 이야기를 다루기보다는 귀족과 왕의 몰락, 또한 그들의 부조리, 그리고 대중 사회의 서사를 중심으로 작품이 만들어지며, 정치와 사회 분위기를 이끌어 갔다.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예술, 그중 가장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시대를 선도해가는 오페라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감동으로 시대의 방향타 역할을 해주고 있다. 대한민국 미래의 방향타가 될 문화 수도, 광주 오페라의 융성을 꿈꿔본다. 최철 조선대 초빙교수·문화학박사

최철 교수
◇명곡소개 : 뤼리의 오페라 <아르미드> 중 Passacaille(파사칼리아)/ 영화 <왕의 춤> 삽입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