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시민모임)이 지난달 31일 광주시의회 시민소통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에게 강력히 항의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시민모임의 위치는 매우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4년간 묵묵히 강제동원 피해자들 옆에 있어왔지만 최근 몇몇 보수언론들에 의해 ‘역사의 희생자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시민단체’, ‘반일 브로커’, ‘악날한 약탈적 형태’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심지어 여당 대표로부터는 “보호비 명목으로 돈 뜯는 조폭과 무엇이 다르냐”는 말까지 들었다. 그런 탓일까. 이날 기자회견이...
2023.06.01 15:48깃발은 인류와 함께해 온 대표적 상징물이다. 국가나 집단의 역사, 지리, 국민, 가치관 등 모든 것의 상징이다. 깃발에는 인류의 꿈과 희망, 좌절과 분노, 충성, 환희, 광기의 오랜 역사가 응축돼 있다. 작은 천 조각에 불과한 것 같지만, 그 아래 모이면 거대한 힘이 되고 정신이 된다. 한 집단의 구심체가 되고, ‘그들’과 다른 ‘우리’가 된다. 깃발 아래 갈등과 분쟁, 평화와 혁명 등 수많은 역사적인 사건들이 관통됐다. 다양한 상징의 깃발이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형태는 국기다. 국기 마다 그 나라의 역사와 이념, 정체성이 ...
2023.05.31 12:19“이것은 잠자는 거인을 깨워 그 분노를 일으켰을 뿐이다.” 1970년 개봉된 영화 ‘도라 도라 도라’는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다룬 전쟁 영화다. 2차 세계대전, 미국 진주만을 침공한 일본은 욱일(旭日)기를 앞세워 침략과 전쟁에 대한 마각을 드러낸다. 폭격기로 군함에 자폭하는 ‘가미가제’, 출전을 앞둔 조종사의 머리 띠, 취사병의 팔목에도 욱일기는 빠지지 않았다. 승리를 자축하며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하겠다는 일본 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든 거대한 욱일기도 침략과 약탈이라는 인류 최악의 상징이었다. 붉은 태양을 중심으...
2023.05.30 17:38전남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농도(農都)’다. 예로부터 전남은 풍부한 일조량과 기름진 옥토 등 천혜의 자연환경 덕에 농업이 발달해 자연스레 농도라는 별칭이 따라다녔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농도 전남’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전남 농업이 쇠락해 가고 있어 우려가 깊다. 해를 거듭할 수록 전남의 농가소득은 줄고 있고, 농업인구 감소와 고령화 현상도 더욱 심화되면서 농업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농가 및 어가 경제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전남지역 평균 농가소득은 4556만원으로 전년도 47...
2023.05.29 14:25불교의 핵심 사상 가운데 하나가 공(空)이다. 지구상의 모든 만물이 찰나에 불과한 인연에 따라 존재할 뿐,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재물이나 명예는 물론 생각이나 관념 또한 스스로의 집착이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것이 석가모니 부처의 가르침이다.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다. ‘모든 존재는 오직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원효의 화엄사상도 본질은 ‘공’이다. 그렇다고 허무는 아니다. 어떤 가치 판단이나 개념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불교의 참 뜻이다...
2023.05.26 10:23강원도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열일곱살 소년·소녀의 애정을 토속적인 언어와 해학으로 그린 김유정의 대표작 ‘동백꽃’은 중학생들의 필독서다. 작품속 주인공인 ‘나’는 순박하다 못해 어수룩한 소년으로 묘사된다. 이에 비해 점순은 활달한 성격의 말괄량이 소녀다. 소년에게 관심이 있는 점순은 “너, 봄 감자가 맛있단다.” 라며 구운 감자를 주면서 접근한다. 먹을거리가 흔한 세상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감자는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이다. 특히 봄에 심어 초여름부터 수확하는 감자는 가을·겨울감자보다 맛있다. 봄 감자의 70%를 차지하는 품종은...
2023.05.24 17:54“과도한 자신감을 가져라, 독창적으로 생각하라,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라.” 지난 2015년, 미국 스탠포드 대학을 중퇴한 31세의 샘 알트만이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와 함께 ‘오픈AI’라는 스타트업 기업을 만들었다. 인공지능(AI)을 개발해 인류에게 도움을 주자는 것이 목표였다. 자신들의 특허와 연구를 일반인에 공개하는 것도 그들의 꿈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챗GPT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 광범위한 데이터를 학습시켜 주어진 질문에 대답하는 대화형 언어모델이있다. 챗GPT의 파괴력...
2023.05.23 17:311990년대 일본이 전자·정보기술(IT) 산업 분야에서 세계 경제를 호령 했지만 내수시장에만 안주하면서 경쟁력을 잃고 고립됐다. 일본 전자기업은 1980년대 워크맨 카세트 플레이어, 전자계산기, LCD TV, 1990년대엔 휴대전화 등으로 세계시장을 지배했다. 하지만 자국 중심의 독자적인 산업이 발전하면서 2000년대 세계시장에서 도태됐다. 끝내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한국 기업에 우위를 넘겨주고 말았다. 대외시장 보다 내수에만 주력하며 고립을 자초했기 때문이다. 기술과 서비스 분야에서 세계시장 요구와 국제 표준을 맞추지...
2023.05.22 15:4519세기 스위스 아동문학가 요한나 슈피리가 지은 소설 ‘하이디’는 알프스 산골마을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는 다섯살 소녀 하이디가 주인공이다. 우리에겐 ‘알프스 소녀 하이디’로 잘 알려져 있다. 아들을 잃고 세상을 등지며 살아가던 할아버지가 말괄량이 손녀 하이디 덕분에 마음을 열게 된다는 이야기가 알프스의 높고 뾰족하게 솟은 산, 푸른 초원,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알프스는 ‘하얗게 빛나는 유럽의 지붕’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웅장한 산세와 초원, 호수 등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뤄 세계에서 첫 손에 꼽히는 여행지다. 산림...
2023.05.21 15:20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끝났다. 본디 5월 행사는 27일인 부활제까지 이어지지만 심리적으로는 18일을 기점으로 광주지역 언론사 사회부는 한숨을 돌리기 마련이다. 올해 전남일보 사회부의 5월 키워드는 ‘미래’였다. 1980년 당시 희생당한 수많은 광주·전남 사람들 중 학생들의 수가 상당했다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과연 희생자의 후배들은 모교 선배들의 희생을 알고 있을까?란 처음의 질문은 곧바로 전수조사로 이어졌고, 잘하는 곳보다 아예 무관심한 곳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럼에도 조선대 부속중학교나 ...
2023.05.18 16:12진혼(鎭魂)은 ‘죽은 사람의 넋을 달래 고이 잠들게 함’이란 뜻이다. 진혼의 의미에 더해 곡조를 붙인 진혼곡은 레퀴엠(Requiem)이라 하여 죽은 이들을 위령하는 장례미사곡을 말한다. 모차르트 레퀴엠, 베르디 레퀴엠, 드보르자크 레퀴엠 등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진혼곡들이다. 하지만 대중에게 가장 익숙한 곡은 우리나라에서 ‘밤하늘의 트럼펫’으로 소개된 ll Silenzio(Silence)이다. 이 노래는 우수에 찬 눈빛의 미남 배우로 195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전쟁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에...
2023.05.17 16:20“국가의 자주 독립을 고수·발전시키고 인류 평화 건설에 기여할 인재를 양성한다.” 1962년 한국전력이 서울 마포에 2년제인 수도공업초급대학을 설립했다. 한국전력은 서울을 중심으로 전기를 공급하던 경성전기와 대구에서 태동된 남선합동전기, 조선총독부가 설립한 조선전업 등 3개로 나눠져 있던 전력 3사를 통합시켜 만든 공공기업. 사업규모와 조직이 늘어나면서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고등학교(현 수도공고)만으로는 전문인력 공급에 한계를 체감해서 였다. 2년 뒤인 1964년에는 4년제인 수도공과대학으로 개편했다. 60년대 수도공대는 그야...
2023.05.16 18:111980년 5월 24일. 광주 남구 송암동에선 무고한 시민 10여 명이 사망했다. 초등학교 어린이부터 6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학살’이었다.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건 바로 군인들이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광주봉쇄작전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학살은 1980년 6월 11일 미국방정보국(DIA)의 2급 비밀전문에 “광주는 한국판 미라이 사건(My Lai Massacre)”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참혹했다고 전한다. 이같은 내용은 다수의 피해자 증언과 계엄군들의 추가 증언을 통...
2023.05.15 16:36서로 대립하거나 경쟁(선의의 경쟁 포함)하는 관계를 일컬어 ‘라이벌(Rival)’이라고 한다. 직역하면 ‘경쟁자’이다. 라이벌의 어원은 stream, 즉 시내, 개천이고, 강을 의미하는 river의 어원은 bank of a river이란 뜻인 ripa이다. 좁은 시내, 개천의 자원과 통행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해야 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형성된 단어로 보인다. 승부의 세계에서 라이벌이 생기면 피곤하고 상대보다 더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하지만 훌륭한 라이벌은 단순한 ‘적’으로 남지 않고 자신을 성장시키는 최...
2023.05.14 18:17육종학자 우장춘은 대한민국의 빈곤과 기근을 물리친 영웅이었다. 일본에서 육종학을 공부한 우장춘은 1950년 귀국한 이후 우리나라 풍토에 맞고 병에 강한 무와 배추의 새 품종을 만들었다. 바이러스에 쉽게 감염됐던 강원도 감자의 품종을 개량해 맛 좋고 튼튼한 무병 감자도 생산했다. 기후가 온화한 제주도에 감귤과 유채를 처음 재배한 것도 그였다. ‘씨 없는 수박’도 처음 국내에 선보였다. “내 연구의 원동력은 전 인류의 복지.”라는 게 신품종을 열망했던 우장춘의 철학이었다. 얼마 전까지 파란 장미의 꽃말은 ‘불가능’이었다. 자연계...
2023.05.11 1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