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17> 역사를 기억하는 예술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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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17> 역사를 기억하는 예술의 무게
  • 입력 : 2021. 04.04(일) 14:11
  • 편집에디터

얼마 전 제13회 광주비엔날레가 개막했다. 다양한 국가의 작가 작품들을 광주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아시아 최대 미술축제로 다시한번 확인되는 순간들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특히 이번 '인류 공동체 치유와 회복의 장'의 주제에 맞게 광주의 과거 역사적 공간들과 동시대 예술의 미래적 시선을 교차시킨다는 지점에서 더욱 풍성하고 흥미롭다.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특별전시 프로젝트 장소도 1964년에 개원하여 군사시설로 격리되어 일반인들 출입이 제한되었고 잊혀졌던, 구)국군광주병원을 전시장으로 보여줌으로써 역사와 예술에 대한 관계성에 지목하게 되었다. 우리의 공동체 역사를 기억하는 예술의 존재와 의미는 무엇으로 증명 될 수 있으며 증명 된 이후 어떻게 남겨질 것인가는 지금을 너머 미래에까지도 큰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어쩌면 오늘날의 예술은 동시대의 중요해진 무의식을 명명하고 잊었던 과거의 의미를 찾아주는 과정 중에 있고 예술가는 그것들을 실행하여 연결하는 사람들인지 모른다. 과거 역사의 증거와 장소는 예술과 시대적 배경 뿐 만 아니라 슬픔과 상처의 예술에 있어서 뗄 수 없는 관계를 각인시킨다. 예술은 망각에 저항하는 기억의 투쟁을 다양한 의미의 죽음, 공포, 삶, 인간, 역사, 기억 등으로 확장되며 층위적 방식으로 표현되어 보여지게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과거 역사의 아픈 기억을 자신 작업의 주제로 다루는 작가 중 지금 4월, 올해 73주년 제주 4.3사건을 알린 강요배 작가와 작품들을 소개한다.

[사진1, 강요배 사진, 2020,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강요배(b.1952.4.18.~ )는 제주 출신 서양화가이고. 1980년대 초 미술그룹 <현실과 발언>의 동인으로 걸개그림 등을 처음 선보이면서 대중과 교감했던 민중미술운동의 1세대 대표 작가이다. 1992년 3월 '제주민중항쟁사-강요배의 역사그림전시회'로 한국 사회에 제주 4.3사건(1948년 4월 3일)의 실체를 바로 알리는 큰 계기가 되었다. 그는 국내 리얼리즘 회화와 역사 주제화에서 새로운 지평을 펼쳐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제주에 정착하여 제주의 역사 체험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는데 진력하였다. 자연 풍광을 단순한 객체가 아니라 주체의 심적 변화를 읽는 또 다른 주체로 다루며 시대와 역사에 충실하고 다기한 화풍의 변모를 감행했으면서도 따스하고 촉감적인 작가의 인물, 풍경화들은 지금도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 2020년 제21회 이인성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그의 작품에서는 제주 풍경과 신화적 아픈 역사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민중들의 삶의 정서와 방식이 함축적으로 담겨있다.

[사진2, 강요배, 동백꽃 지다, 1991,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6x162.1cm]

작년, 자신의 산문집 <풍경의 깊이> 출판기념회 인터뷰에서 "내가 지금까지 평생 그려온 작품은 약 2000여 점 정도이고, 그 중 4·3을 주제로 한 작품은 70~80점 정도이다. 제주 4·3 연작은 내가 역사를 배우고 민심의 흐름을 짚기 위해 공부한 결과물이었다. 4·3은 아직도 다른 각도에서 다뤄질 여지가 매우 많다. 비극의 역사를 마주하는 일은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 일을 통해 작가로써 인간으로써 힘을 얻기도 했다." 고백하기도 했다.

[사진3, 강요배, 불인(不仁), 캔버스에 아크릴릭, 333×788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그가 지난 30년간 제주 4.3를 주제로 그린 연작의 (시기적으로) 마지막 완결한 대작이라 불리 우는 <불인(不仁)> 작품은 4.3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 '북촌사건'을 담고 있다. 당시 군인 2명이 무장대 기습을 받아 숨지자 '빨갱이 색출'을 명목으로 주민 300여명을 사살했고, 가옥 1000여채를 불태웠다.

작품 안에서는 주검도, 총칼, 피가 드러나 있지 않지만 겨울바다와 불에 그슬린 거칠고 묵직한 팽나무, 풀밭에 사그라지는 불꽃과 희미한 연기로 사건이 일어난 장소의 풍경을 전면에 채우며 당시의 잔인하고 가슴 아픈 학살 현장임을 암시하게 한다. 또한 거칠고 두터운 마티에르의 정점에서 사건에 관한 증거의 숫자나 기록이, 불꽃 속에 사그라지는 죽음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강요배 작가의 '아픈 역사 재현'이 묵직한 침묵으로 다가오고, 생략 되어진 세부 묘사는 작품을 마주한 관람자들에게 다양한 결말을 예시하고 있다.

결국 역사를 기억하려는 예술의 무게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 두려움을 무릅쓰고 지난 상처의 역사, 인간의 존엄성, 아픔의 기억과 공간을 기억하며 다시 그 고통이 되풀이되지 않는 희망적 미래를 탐구해 나가는 정동(情動)일 것이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