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비색 고려청자에 아련히 새긴 모란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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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기획
천년비색 고려청자에 아련히 새긴 모란의 향기
한중수교 30주년 기념 차이 나는 남도-중국 인연자원 ⑤ 강진에서 꽃핀 천하제일 고려청자||천공의 경지 천년비색 고려청자 중국 극찬||청자에 무늬 상감, 독창적인 도예기법 발달||韓 강진, 中 용천, 日 하사미 3국 도예 교류||청자의 보고 강진, 국보·보물급 80% 생산||중국인들이 사랑하는 ‘국색 천향’ 모란꽃||영랑 생가·세계모란공원 만개, 관광자원화||한·중 문화교류 관광코스로 육성 바람직
  • 입력 : 2022. 08.17(수) 15:29
  • 최도철 기자

국보 제116호 '청자 상감 모란무늬 표주박모양 주자'

2010년 태안 마도2호선에서 출수된 보물 제1783호 '청자 상감국화모란유로죽문 매병'(사진=문화재청)

중국인들이 부러워했던 비취빛 고려청자는 장인의 예술혼과 하늘의 조화로 빚어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도자예술품이다. 특히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이는 고려청자의 비색상감무늬는 천공의 경지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한중수교 30주년 기념 남도-중국 인연자원 시리즈 다섯 번째로 '국색 천향' 모란과 함께 '강진에서 꽃핀 천하제일 고려청자'를 싣는다.

신안선에서 출수된 청자상감넝쿨무늬잔과받침

강진은 중국인들이 부러워했던 '천년비색' 고려청자의 본향이다. 또한 중국인들이 사랑하는 '국색천향' 모란의 시인 김윤식의 고향이기도 하다. 강진군은 영랑 생가 인근에 세계모란공원을 만들어 새로운 지역 문화자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강진은 대한민국 청자의 보고이다. 강진의 청자 가마터는 모두 188곳으로 이는 우리나라 청자요지의 절반에 해당한다. 1963년 강진군 대구면 고려청자 도요지 일원을 국가사적 제68호로 지정한 이유이다.

강진은 우리나라 국보와 보물급 청자 중 80%가 생산된 곳으로, 전 세계 명품들 대부분이 강진 제품들이다. 이처럼 강진이 청자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던 점은 해상교통의 발달과 다른 지방에 비하여 태토, 기후 등 여건이 적합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가마터는 10~11세기에 성립된 초기 요지로서, 중국의 월주요·요주요·여요와의 관계를 살필 수 있는 조각들이 발견됐다. 가마터에서 해무리굽(日暈文) 청자의 조각들이 발견돼 청자의 기원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고려청자는 9세기 후반~10세기 때부터 강진에서 제작되기 시작했다. 초기 청자인 해무리굽 청자요지는 대구면 용운리와 계을리 등 중국과 가까운 서해안과 남해안 일대에 분포되어 있다. 이는 신라 말 지방호족 세력이 확장되고 장보고의 해상무역이 성행하면서 중국 도자문화의 영향을 일찍부터 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해무리굽 청자는 질이 좋아 상류층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강진에서는 도자기의 겉면에 거친 흙이 섞여있는 조질청자(粗質靑磁)도 생산되지만 11세기 말까지 그릇 형태, 무늬, 제작기법 등이 세련된 청자가 생산됐다. 이어서 12세기 전반부터는 유명한 비색의 순청자가 제작됐다. 이 시기에는 얼음처럼 갈라지는 가는 금 모양의 무늬가 거의 없는 우수한 비색 유약을 완성하여, '고려도경'에 기록된 것처럼 중국에서도 절찬을 받았다.

또한 12세기 중엽부터는 청자에 무늬를 상감하는 독창적인 상감청자가 발달했다. 상감기법 초기에는 부분적으로 새겨지다가 점차 전체적으로 양각․ 음각 무늬가 새겨지면서 한 단계 진화했다.

고려청자 문화는 바다를 건너왔다. 한국은 중국에서 청자 제작 기술이 넘어왔고, 일본은 한국으로부터 이를 다시 전수받았다. 모두 뱃길을 통한 문화의 전파였다. 또 이 뱃길은 청자의 제작 기술뿐 아니라 생산된 청자가 왕래한 곳이기도 하다. 한국과 중국, 일본은 좁은 바다를 끼고 있으면서 다양한 문화가 소통된 지역이며, 이중 한국 강진과 중국 용천, 일본 하사미 지역은 고대 뱃길의 핵심 지역으로서 청자가 집중적으로 발전한 곳이다.

대체로 세 지역의 도자기 교류는 통일신라 하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8세기 후반 완도 청해진을 중심으로 중국과 일본을 상대로 국제 삼각무역을 하던 장보고의 선단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한국과 중국, 일본을 잇는 해상 무역로의 존재가 확실히 드러난 것은 1975년 신안군 증도 해역에서 발견된 신안선 발굴을 통해서다. 이 배에서는 도자기가 무려 2만661점이 실려 있었는데, 그 가운데 청자가 1만2359점이나 되었다.

화물에 붙여있는 표찰 등을 통해 배의 국적과 출항일자, 목적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표찰에는 '경원로(慶元路)'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경원은 현재 중국의 절강성 영파다. 절강성은 강진과 자매결연을 갖고 매년 강진청자축제 때 참여하는 용천시가 있는 도시다.

신안선은 지치 3년, 즉 1323년 6월쯤 경원항을 떠나 일본으로 향하던 중 6~7월경에 침몰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12세기 초 중국과 일본, 한국을 잇는 청자 무역항로가 존재했음을 입증한 것이다. 중국 절강성 황궁 터에서는 고려시대 강진에서 생산됐던 상감청자가 지금도 발견되고 있다. 9세기 경 중국에서 도입된 청자가 이로부터 300여 년 후에 우리나라에서 상감청자로 발전되어 역수출됐던 것이다.

중국의 절강성은 베트남~말레이시아 말라카해협~필리핀~인도 동해안~페르시아만~이라크~로마까지 이어지는 장장 1만5000km(3만7500리)의 해상 실크로드와 연결되는 곳이다. 해상 실크로드에서 상감청자가 발견된 가장 먼 곳은 필리핀 지역이다. '신라-서역 교류사'를 저술한 깐수에 따르면, 이미 서기 600년쯤에 아라비아 상인들이 강진 대구면 저두에 왔다고 한다. 이렇듯 강진청자의 무대는 지역을 넘어 전 지구촌으로까지 확대되었던 것이다.

강진군은 고려시대 이후 600여 년 동안 단절된 역사를 잇기 위해 청자재현사업과 청자촌 복원사업에 돌입해 청자사업소를 설치한데 이어 강진청자박물관을 개관, 옛 도공들의 기법을 연구하고 익히는 등의 각고의 노력 끝에 청자의 찬란했던 과거를 재현하는데 성공했다.

유려하게 흐르는 선과 단아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담은 고려청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도자 예술품이다. 특히 고려청자의 비색상감무늬는 그 기술과 아름다움의 극치로, 인공을 떠난 천공의 경지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고려청자를 두고 당대를 풍미했던 문학가 이규보가 '하늘청자'라 일컬었고, 프랑스 중견 도예작가 장 지렐은 '세계 유일의 섬세함, 은은함, 독특한 절제미'라고 극찬했던 까닭이다.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252호로 승격된 강진 영랑생가

고려청자의 산실 강진은 영랑생가, 모란공원 등 중국인이 사랑하는 '국색 천향' 모란도 유명하다. 중국 북송의 문인으로 이름 높은 구양수(歐陽脩)는 '낙양 모란기'에서 "모란에 이르러서는 굳이 꽃 이름을 말하지 아니하고 바로 꽃이라고 한다. 그 뜻은 천하의 진정한 꽃은 오로지 모란뿐이라는 것이다"라고 극찬했다. 중국인들의 지극한 모란 사랑을 잘 나타낸 싯구가운데 하나이다.

모란은 중국이 원산지로 중국 사람들로부터 가장 사랑받아 온 꽃이다. 모란은 수나라 때부터 재배하게 되었는데, 당나라 때에 이르러 크게 유행했다. 당 현종 때에는 궁중을 비롯해서 민간에서도 앞다퉈 심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장안에선 5월이 되면 온 도시가 모란꽃으로 가득 차 꽃구경하는 사람이 넘쳤다고 한다. 문필가들은 그 모습을 "장안 사람들은 성을 비우고 나와서 취한 듯 미친 듯하였다."고 표현했다.

강진에는 모란의 시인 영랑 김윤식의 생가는 물론 그 주변에 세계모란공원이 조성돼 있다. 전 세계의 모란꽃을 테마로 조성한 모란공원은 보은산의 자연경관을 활용한 친환경 생태문학공원이다.

세계모란공원에는 사계절 모란을 감상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모란 유리온실 전시관과 세계 각국의 다양한 모란의 자태를 느낄 수 있는 세계 모란원이 있다. 또 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형상화한 조형물과 약수터 물을 이용한 생태 연못, 강진만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정자가 들어서 있다.

무위사 수월관음도

불타 버린 국보 1호 숭례문 이후 목조건물로는 두번째 국보인 강진 무위사내 극락보전

강진의 중국 인연자원 가운데 중국 6대 성인 중 한 사람인 화성(畵聖) 오도자가 그렸다는 무위사 수월관음도도 빼놓을 수 없다. 무위사는 월출산 남쪽 기슭의 강진 땅에 자리한 고찰이다. 이 절은 단아한 극락보전과 불가사의한 벽화로 유명하다. 법당 안 아미타삼존도가 그려져 있는 수월관음도는 예술적 가치가 높은 걸작이다.

수월관음도란 달이 뜬 배경으로 바닷가 바위에 관음보살이 앉아있는 모습을 그린 것을 말한다. 무위사의 수월관음도는 산수화의 시조로 불리는 당나라 화가 오도자(吳道子)가 그렸다고 한다. 오도자는 당나라 궁정 화가로 '소화(疎畵)의 체'라는 서화일치의 화체를 확립했으며, 화려하고 섬세한 필치를 자랑했다.

최도철 기자 docheol.choi@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