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 기고·임영진> ‘전라도 천년사’ 식민사관 비판, 타당한 것인가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테마칼럼
[전남일보] 기고·임영진> ‘전라도 천년사’ 식민사관 비판, 타당한 것인가
임영진 마한연구원장
  • 입력 : 2023. 06.11(일) 14:19
임영진 원장
3년 남짓 수 많은 불편을 초래하였던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자 새로이 많은 분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일이 생겼다. 출판을 앞 둔 <전라도 천년사>가 식민사관으로 점철되었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비판 대상은 고조선 영역에서부터 근대 동학농민혁명에 이르기까지 시대 폭이 넓고 주제도 다양하다.

작년 12월부터 무분별하게 이어졌던 여러 비판들을 더 이상 방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전국 고대사와 고고학 관련 24개 학술단체들은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였고, <전라도 천년사>와 직결되는 호남지역 학술단체와 대학 연구소들은 별도의 성명서를 추가로 발표하였다.

이와같은 상황에서 개인적인 표명이 필요할까 싶기도 하지만 가장 많이 회자되는 비판이 필자의 원고와 관련된 내용이면서 원고 내용과 크게 다르게 왜곡되어 있기 때문에 정확한 내용을 알려드릴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비판의 핵심은 광주·전남지역에서 확인되는 몇몇 고분의 주인공에 대한 것이다. 왜인을 그 주인공이라 하면서 야마토 왜가 이 지역을 지배했다는 소위 ‘임나일본부설’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의 고분들은 전남 도서지역을 중심으로 5세기 초에 축조된 석곽묘와 영산강 외곽을 중심으로 5세기 말부터 6세기 중엽에 걸쳐 축조된 장고분이다. 이 고분들은 당시 영산강유역에서 성행하였던 마한의 대형 옹관묘와 전혀 다르면서 당시 규슈지역에서 유행하였던 고분들과 상통하는 것이기 때문에 학계에서도 많은 논의가 이루어진 바 있다.

짧은 지면에서 충분한 설명은 어렵지만, 필자는 학계의 다양한 견해를 소개한 다음 개인적인 견해를 제시하면서 그 어디에서도 야마토 왜가 이 지역을 지배했다고 쓴 바 없다. 오히려 그러한 견해들을 비판하였다. 예를 들면, ‘한국의 전방후원분은 국가 간의 경계가 불확실한 시기에 규슈에서 진출한 사람들이 남긴 무덤’이라는 일본 학자의 견해가 부당함을 논증하는 한편 일본식 명칭으로 인한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전방후원분’ 대신 ‘장고분’이라는 명칭을 만들어 쓰기까지 하였다.

문헌 기록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 가지 주제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문헌사학계에서는 간접적이나마 관련된 모든 문헌 자료를 종합하여 서로 상충되지 않으면서 논리적인 결론을 이끌어 내고 있지만 하나로 귀결되기는 쉽지 않다. 문헌 기록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고대 문헌 기록이 충분하지 않은 우리의 사정 속에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고학 자료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고고학 자료는 문자 자료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분석하고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고학 연구 과정을 흔히 과학수사와 비교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과학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초동수사와 법의학일 것이다. 초동수사는 고고학에서 유적 현장을 있는 그대로의 상태로 드러내서 상세한 증거를 확보하는 과정과 같고, 법의학은 고고학에서 발굴된 자료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불필요한 논란을 불식시키는 작업에 해당한다.

<전라도 천년사>에서 회자되는 필자의 원고 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다면 고고학 자료의 분석 과정과 같이 논리적으로 비판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설득력을 가질 것이다. 야마토 왜가 전라도를 지배했다고 쓰여 있다는 등 원고에서 찾아볼 수 없는 엉뚱한 내용으로 비판하는 것은 사실을 호도하는 것이고, ‘아니면 말고’식의 비논리적인 방식이라면 비판할 자격조차 없는 대단히 무책임한 일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까이 있는 집단들끼리는 서로 어떤 방식으로든 관계를 맺어왔다. 상호간에 관련 자료가 교차되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만약 전라도에는 왜와 관련된 고고학 자료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왜와 관련된 자료에 대한 논리적인 해석을 왜곡하면서까지 매도한다면 설득력을 가지기 어려울 것이다.

만약 그러한 입장이라면 규슈 후쿠오카 니시진마치(西新町) 유적에서 확인된 호남지역 관련 고고학 자료를 호남지역 주민들이 이주했던 증거라고 보는 일본 학자들의 견해를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 한때 일본에서도 그러한 견해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전라도 천년사>는 전국 팔도 가운데 전라도가 가장 먼저 그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집필된 것이고 지난 연말 배포될 예정이었다. 식민사관이라는 터무니 없는 비판 때문에 반년이 지나도록 인쇄조차 못하고 있지만 조만간 가야할 길을 찾아 갈 것이다. 하지만 근거 없는 비판으로 사회적 갈등을 야기시켰던 이들이 짊어져야 할 책임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