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길 위에 김대중. 명필름 제공 |
다큐멘터리 길 위에 김대중 포스터. 명필름 제공 |
1997년 12월 18일,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야권에서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이날 김대중 대통령후보의 당선소식에 도올 김용옥 교수가 ‘일본도 이루지 못한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의 정권교체’라며 감탄과 감회를 새롭게 하던 TV화면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대한민국 역사상 유일하게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제15대 대통령 김대중. 한반도 평화에 대한 그의 남다른 시각은 ‘남북교류’라는 기적을 창출해냈다. 그의 일생을 연대기 순으로 나열한 다큐멘터리 영화 ‘길 위에 김대중’은 여느 다큐멘터리와 달랐다. 이는 질곡의 대한민국 헌정사를 빠짐없이 온 몸으로 겪은 한 정치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기 짝이 없는, 여느 드라마도 이보다 더 극적일 수 없는 리얼 스토리의 진실이 담겨 있어서였다.
스토리에는 민주주의를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념’과 지칠 줄 모르는 ‘행동하는 양심’이 일관되게 흐르고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정치인 김대중에게는 ‘국민의 행복’을 최선으로 삼는 정치철학이, 저간의 날선 보복정치를 화해와 용서로 풀어내는 ‘사랑’이 있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길 위에 김대중’은 신문이나 시사잡지를 통해 그리고 ‘옥중 서신1, 2’(2009)와 ‘김대중 자서전 1, 2’(2010) 등의 책을 통해 알 만큼 다 아는 이야기이겠거늘 싶었지만, 잘 알고 있는 내용과 잘못 알고 있었던 부분이 영화를 통해 정리가 되는 새로움이 있었다. 무엇보다, 추방이나 다름없던 미국에서의 행보는 잘 알 수 없었던 새로움이었다. 미국 정치인이나 지식인 층에서 갖고 있던 ‘대한민국은 정치적 후진국’이라는 선입견을 바꾸어놓기 위한 그의 설득과 부단한 노력이 결국에는 유력 정치인들에게 설파되었다. 뿐만 아니다. 미국 체류 777일 동안 수백 회에 걸친 강연을 했다. 어디에든 부르는 곳에 달려가 호소하기 위해 그는 늘 길 위에 서 있었던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한 가지의 의문이 해소된 부분이 있었다. 바로 1987년의 6월항쟁 신이었다. 6월항쟁이 아름다운 것은 때마침 퇴근길에 오른 직장인들의 자연스러운 시위합류, ‘넥타이 부대’의 등장이었다. 한승헌 인권변호사를 중심으로 플래카드를 펼쳐들고 나타난 법조인들의 시위는 이를 더한 감격이었다. 이때 신군부 정권은 왜 가만 있었을까에 대한 의문을 영화에서는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5·18과 같은 결과를 미국이 용납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5·18때 군부를 용인했다는…?) 김대중의 미국에서의 활동이 얼마나 크게 영향력을 행사했는지가 행간에 있음이 자연스레 읽혀졌다.
‘IT강국’을 만들어놓은 업적을 위시하여 영화에 빠진 이야기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금 모으기 운동’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다음날부터 IMF구제금융을 받게 된 국가부도의 위기를 헤쳐 나가야 했다. 지도자가 고군분투하면 국민이 호응을 하게 마련이다. 국민들의 ‘금 모으기 운동’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예상보다 위기를 단축하게 되었다. 국가위기 앞에서 금 모으기를 통해 외채를 갚아나가고자 온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이룬 것을 본 세계인은 고개를 갸웃했다 한다. ‘대체 어떤 나라이지? 저 나라의 국민성은 뭘까?’를 생각하게 만들고 KOREA란 이름을 긍정적으로 기억하게 되었노라는 이야기를 필자는 많은 나라에서 듣게 되었다. 그래서 정치를 잘하면 국민이 행복해지는 법이다.
소설 ‘거인의 꿈’에는 영화 ‘길 위에 김대중’에 더한 행복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김대중 부부의 ‘북한땅 한 달 살기’와 개마고원 트래킹…. 꿈같은 이야기다. 김대중 없는 대한민국은 이 꿈을 언제나 이룰 수 있을까. 1월 10일 개봉. (백제예술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