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열며·이승현>꽃이 질 일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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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열며·이승현>꽃이 질 일이 걱정이다
이승현 강진 백운동 원림 동주
  • 입력 : 2024. 05.08(수) 18:02
이승현 강진 백운동 원림 동주
한때는 자신에게, 또는 누군가에게 꽃봉오리였을 노인들의 부음이 연이어졌다. 한 달 새에 다섯 분의 조문을 다녀왔다. 꽃 피는 계절에 생명이라는 꽃이 지는 것을 보는 것은 괴롭다. 다시는 같이 밥을 먹을 수도, 목소리를 들을 수도, 손자 손녀를 안아볼 수도 없는 영원한 작별이 내게도 기어코 올 것임을 예감하기 때문이다. 단명했다거나, 고생만 하다 돌아가셨다거나, 병치레로 힘든 노후를 보내다 임종했다는 고인의 초상집에서는 마음이 더욱 애잔하고 무겁다. 칙칙한 마음을 지우고 싶어 봄 향기 머금은 샛노란 프리지아 꽃 한 다발을 사서 안고 왔지만 상가(喪家)의 기분은 두고두고 스멀거린다.

상가(喪家)에서는 ‘이제는 내 차례다’, ‘우리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들을 한다. 죽는 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노령인구가 급격히 늘면서 노인 임종이 부쩍 늘어난 요즘 죽음이라는 문제가 한 개인을 넘어 가족, 국가의 채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최근 노령인구가 많은 일본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플랜 75’라는 영화를 관심 있게 본적이 있다. 어느 날 한 노인 요양원에서 충격적인 총격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범인은 노인들이 나라 재정을 축내고 그 피해를 청년들이 다 받는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자살한다. 이후 노인을 표적으로 삼는 범죄 사건이 잇따라 일어난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 정부는 청년층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75세 이상 노인의 죽음을 적극 지원하는 정책 ‘플랜 75’를 발표한다. 의료비와 사회보장 지출 등 노인을 부양하는 비용은 증가하지만, 그들이 경제에 기여하는 바는 없다는 인식하에 국가가 75세 이상의 노인의 안락사를 권장하고 안락사를 선택한 노인에게는 마지막 여행과 장례를 지원하는 것이다. 안락사를 선택하게 되어서 행복하다는 노인들의 증언도 등장한다.

‘플랜 75’는 국가가 75세가 넘는 노인에게 죽음을 권유한다는 설정을 통해 고령화 사회의 문제를 제기하고 존엄사 문제를 제기한다.

하야카 치에 감독이 ‘플랜 75’를 만들게 된 모티브는 2016년 20대 남성이 장애인 시설에 침입, 19명을 살해하고 26명에게 중상을 입힌 ‘가나가와현 장애인 시설 집단 살인 사건’이다. 이 남성은 해당 시설 근무자였으며 ‘장애인은 차라리 죽는 편이 가족에게 편하다’라는 혐오 발언을 일삼았다. 더 심한 것은 ‘중증 장애인들이 활동이 힘들면 보호자 동의를 얻어 안락사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드는게 목표’라는 내용의 자필 편지를 썼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장애인에서 노인으로 바꿨지만 일본 사회에서 노인 문제, 노인 혐오 문제의 심각성을 고발한 것이다.

‘플랜 75’를 선택한 노인들의 대다수는 혼자 사는 노인들이거나 경제력이 없는 노인들이다. 이들은 힘든 삶을 버틸 힘이 없기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 사회적 복지와 보상을 받아야 할 이들이지만 정부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고 사회안전망을 견고히 하기보다는 이들을 죽음으로 인도한다. 영화는 단순히 노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 사회공동체에 대한 현실도 돌아보게 한다.

‘플랜 75’의 이야기는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20%. 천만 명이 넘는 우리나라에도 닥친 현실이기도 하다. 나이 든 부모가 해외여행을 다니면 ‘왜 내게 물려줄 돈을 가지고 마음대로 쓰는지 모르겠다’라고 한다는 극단적인 우스갯소리도 들리고, 70세, 80세 국회의원 당선자에게 노익장을 축하 하기보다는 ‘나이 먹어서 뭐 하러’ 식으로 폄하 하는 것이 세태다.

늙었다는 것 자체가 죄송한 일이 되고 쓸모없으므로 치부된다. 노인들이 많아지면서 죽음이라는 문제는 꼭 초상집이 아니더라도 동년배를 만나거나 어르신들을 만나면 일상적으로 나오는 주제라 낯설지도 두렵지도 않다. 하지만 자신, 가족이나 사회에 폐를 끼치지 않는 노후나 죽음은 쉽지 않다. 그래서 ‘늙으면 어서 죽어야지’ 라고 자조(自嘲)하는 것이다.

아프지 않게 건강하게 늙을 것, 타인을 힘들게 하거나 괴롭히지 않을 것, 너무 오래 살아서 가족들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는 등의 각오를 노후 십계명으로 지켜 보려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죽음의 종착역이 된 요양병원에서만은 죽기 싫다거나 나 스스로 내 삶을 존엄하게 마무리할 수 있길 바라는 것도 대다수 노인의 바람이다. 이것은 ‘노후 준비’를 넘어 영원한 작별을 위한 마지막 단계이자 인생의 최종계획인 ‘사후 준비’다. 내가 어디에 묻혀 영면할지, 자식들은 성묘라도 올지 걱정이고 수목장할지, 봉안당이나 매장을 할지도 미리 선택해야 한다. 선산이 있음에도 지방이나 도로에서 멀거나 높은 산은 피하겠다고 한다. 특히나 조상님 산소 벌초와 이장 문제는 내 대(代)에서 매듭지어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무겁다. 그런 염려 때문에 풍수사를 부르고 손 없는 날을 잡아 자신들의 선대 조상들의 산소를 파묘 하여서 한 곳에 모으거나 시설에 모시는 것이 요즘 노인 세대들의 뺄 수 없는 버킷리스트가 되었다. 이런 현상이 천만 관객을 모은 영화 ‘파묘’와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 생계조차 힘겨운 노인들이 많다고 한다. 고물가 시대에 수입이 뻔한 노인들의 삶은 갈수록 팍팍하다. 운전기사나 건설 현장으로 벌이를 나간 친구들도 있고 골프 모임에 발걸음을 끊는 친구도 늘어 간다.

노인빈곤, 인권, 질환 치료, 디지털 서비스, 돌봄 전문가 양성 등 국가와 지자체, 공동체가 어떤 철학이나 정책, 적시성을 갖추어 노인 문제나 죽음의 문제를 풀어낼지 걱정이다.

팔십 육년 동안/ 이 한마디뿐/ 여러분 잘 있게나/ 부디 잘못 살지 말게나/. 어느 선승의 임종게(臨終偈)처럼 혼자서 초연히 임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