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톰 에고이안 감독 ‘세븐 베일즈’. 판씨네마㈜ 제공 |
![]() 아톰 에고이안 감독 ‘세븐 베일즈’ 포스터. 판씨네마㈜ 제공 |
그날 TV화면에 비친 국회에 무장한 군인들이 들이닥치는 장면이 45년 전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1980년 당시 국회로 침입하여 무자비하게 국회의원들을 곤봉으로 내리치고 끌어내던 무장 군인들 중 한 명이 바로 그 자신이었던 것. 당시 자신이 했던 행동은 군 제대 후에도 회한과 번민으로 이어져 잊으려 무던히도 애썼고 간신히 잊은 채 살아왔다. 그런데 12·3 내란 뉴스 화면은 묻어두었던 고통을 기억의 무덤으로부터 생생하게 되살아나게 하면서 귀국 후 자리 보전하게 만들었고 심지어는 정신과 치료를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몹쓸 역사적 범죄는 정치적 사회적 영향에 그치지 않는다. 일 개인이 평생 고통을 받는 트라우마를 만들어 놓는 데 이르기까지 참혹하기 그지없다.
캐나다 영화 ‘세븐 베일즈’ 역시 이와 유사한 케이스를 담고 있다. 제닌(배우 아만다 사이프리드)은 스승 찰스의 유언에 따라 스승의 대표작인 오페라 ‘살로메’의 감독을 맡게 된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살로메’(1905)는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살로메’(1893)가 원작이다. 원작은 프랑스어지만 오페라는 헤드비히 라흐만이 번역한 독일어다. 오페라에 등장하는 ‘일곱 베일의 춤’(일곱 베일을 하나씩 벗어가며 추는 춤)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아, 악명 높은 오페라로 알려져 있다. 성경 속 인물인 살로메는 유대의 왕 헤롯의 의붓딸이다. 다시 말해, 헤롯은 이복형의 아내와 딸을 취한 인물. 이 결혼을 반대한 요한을 감옥에 가뒀는데, 요한과의 키스를 거부당한 살로메는 헤롯 왕이 요구하는 일곱 베일의 춤을 추는 대가로 요한의 목을 원한다. 키스를 위해.
이렇듯 성서적 주제와 에로틱함 그리고 스릴러의 요소가 결합된 이 작품을 두고 제닌은 스승의 방향대로 연출하기가 어렵다. 기존의 스텝과 배우들이 감독의 말을 잘 안 들어주는 고통도 감내해야 하지만, 그녀의 발목을 붙잡고 끊임없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개인적 트라우마 때문이다. 작품에 몰입하면 할수록 그녀는 과거의 자신이 계부에게서 받았던 상처, 스승과의 관계 등 억눌러두었던 과거의 자신과 살로메를 동일시하게 된다. 그녀가 트라우마를 무릅써가며 연출해야 하는 또 다른 고통을 제닌식 작품 해석으로 감내하는 동안 그녀 아닌 다른 여성에게도, 현재에도 상처를 주는 일, 즉 남성들의 폭행은 계속되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제닌이나 제닌의 엄마처럼 무력하게 묻어두기보다는 공연 기획자들의 묻고 가자는 요구에도 소품 담당 클레아(배우 레베카리디어드)처럼 용기를 내보기를 감독은 암암리에 권유한다.
최근 토크 프로그램에서 1992년 발생했던 ‘계부살해사건’을 소재로 삼는 것을 보았다. 당시로서는 필자에게 큰 충격이어서 ○○○사건으로 이름까지 기억하는 사건이었다. 대학생 A양이 계부에게 10년 동안 성폭행당한 모습에 남자친구 B는 A와 함께 그녀의 의붓아버지를 살해했다. B는 여자친구 A를 살리기 위함이었다 말했고, A는 감옥에 있는 7개월이 악마로부터 벗어나 가장 편안했던 밤이었노라 말했다.
사회적 반향은 컸다. 시민단체의 구명운동과 함께 22인의 변호사가 무료 변론을 자청했다. 결과적으로는 선고 받은 3년과 5년의 징역도 특별사면과 감형조치를 받은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성폭행 범죄 처벌 및 피해자 보호에 대한 법률’이 시행되었던 계기도 되었다. 당시의 충격은 필자에게도 적지 않았다. 개인적 판단으로 ‘딸을 둔 엄마는 절대 재혼해서는 안 되겠구나, 그러자니 이혼도 안 해야겠구나’를 결심했던 폭풍 같은 사건이었다. 영화 ‘세븐 베일즈’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힘없는 약자들의 어쩔 수 없는 묻고 넘어가기, 용기를 낸 피해자를 가해자로 몰고 가기, 결코 사라지지 않는 억압된 상흔 등…. 백제예술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