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준영 변호사가 지난달 29일 광주 동구 전남일보 승정문화관에서 열린 제5기 전남일보 소울푸드 아카데미 7강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김양배 기자 |
![]() 박준영 재심 전문 변호사 |
제5기 전남일보 소울푸드 아카데미의 일곱 번째 강좌가 지난달 29일 오후 광주광역시 동구 전남일보 승정문화관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서는 박준영 재심 전문 변호사가 강단에 올라 ‘사람과 삶’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강연 이후 ‘제5기 전남일보 소울푸드 아카데미’ 수료식도 개최됐다.
박 변호사는 군대 선임을 따라 사법고시를 준비해 2002년 합격했다. 수원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고, 2008년 운명의 사건인 ‘수원 10대 소녀 상해치사 사건’ 형사재판 재심에서 무죄를 끌어냈다. 2015년에는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복역 중임 김신혜의 재심 개시 결정을 이끌어 냈다. 이는 수감 중인 무기수의 재심으로는 최초 사례였다.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재심 변호사로서 ‘우리들의 변호사’로 불리며, 대한변호사협회 공익대상, 영산법률문화상을 받았다. 2023년에는 위기청소년을 지원하는 ‘등대 장학회’를 설립했다.
이날 진행된 강연은 억울한 이들의 무죄를 밝혀온 박 변호사가 풀어놓는 고백과 성찰로 가득했다. 정의란 무엇인가, 연민은 왜 필요한가, 공동체는 어떻게 한 사람을 지켜낼 수 있는가에 대한 밀도 높은 질문이 이어졌다.
박 변호사 삶의 출발선은 전라남도 완도군 노화도로부터 시작했다. 노화도에서 자란 그의 유년기는 결핍과 방황의 연속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도시가 아닌 바다 건너 섬마을에서 자란 경험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를 여의고 나쁜 짓도 꽤 하고 방황을 많이 했다. 고등학교 시절, 선글라스를 쓰고 험한 표정을 지으며 센 척에 몰두했다. 사실 겁도 많고, 눈물도 많았다. 약해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었다”며 “지금의 제가 있는 이유는 한 마디로 ‘관용’ 덕분이다. 누군가 겉모습만 보고 저를 판단했다면, 지금 변호사가 아니라 교도소를 들락날락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박 변호사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가장 큰 힘은 ‘시선’이라고 설명했다. 타인의 시선으로 한 사람의 삶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는 “어머니의 장례식 날, 마을 어른들이 보여준 눈빛이 제 삶을 바꿨다. ‘엄마 없이 어떻게 살까’하는 걱정이 담긴 그 시선이 저를 붙잡아줬다. 삶을 살아가는 힘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그 시선을 ‘사회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라고 봤다. 그리고 지금의 한국 사회가 과연 그런 시선을 지니고 있는지 되물었다.
그는 “요즘엔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가 사라진 것 같아 안타깝다”며 “회복할 기회를 주지 않고 낙인찍는 사회, 처벌 중심의 형사 시스템으론 진짜 정의에 도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사람의 변화를 믿는 것이 사회라며 미국의 엔젤 산체스 이야기를 소개했다. 불완전한 가정에서 자라 소년기에 징역 30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 공부해 변호사가 된 인물이다.
그는 “산체스는 ‘의지만으로는 해낼 수 없다’고 말했다. ‘연민과 도움이 의지와 만나야 변화가 가능하다’고 했다”며 “우리 사회는 여전히 처벌 중심이다. 범죄자에게 회복의 기회를 줄 수 있는 사회가 진짜 정의로운 사회”라고 강조했다. 형량만 높인다고 안전한 사회가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청소년 범죄에 대해 ‘엄벌’만을 외치는 사회는, 변화를 포기한 사회”라며 “교정은 처벌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람을 돌려세울 기회를 놓치는 일로, 사람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회가 더 강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사람을 판단하기 전에, ‘왜 그런 모습일까’를 먼저 물어보는 사회가 필요하다”며 “긍정적 시선이 결국 사람을 변화시키고,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어머니의 유서를 소개했다.
박 변호사는 “엄마는 돌아가시기 전 ‘열심히 공부하고 말 잘 들으면 반드시 너희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을 거다’라는 말을 남기셨다. 저는 지금도 그 말을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한 교화위원이 찾아와 1998년 대구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 제보했다. 지금 48세가 된 분이 있는데, 21살 때 살인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8년째 복역 중이었다고 했다. 기록을 어렵게 찾아내고 직접 면회를 갔다”며 “그분은 절망 속에 있었고, 말도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저를 만나고 며칠 뒤 제게 편지를 보내 주셨다. ‘살면서 처음으로 누군가가 나를 믿어주는 느낌이었다’고, ‘이제 다시 살아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쓰여 있었다”고 했다.
그는 이 경험을 통해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이 될 수 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누군가를 만나 삶의 방향이 바뀔 수 있다면, 우리는 그 가능성을 포기하면 안 되다는 믿음이다. 그는 이같은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등대장학회’를 만들고, 억울한 수감자들을 위한 재심 청구를 계속하고 있다.
박소영 기자 soyeong.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