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선 작가가 23일 광주광역시 동구 은암미술관에 전시된 작품 ‘드뷔시의 달빛을 들으며 아버지의 바다를 거닐었다’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박찬 기자 |
광주광역시 동구 은암미술관에서 김혜선 작가 기획초대전 ‘고향 가는 길’이 25일부터 다음달 19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그간 작업한 그림의 정체성을 찾아 추억들을 소환하는 사진 드로잉 작품 10점을 포함해 ‘아버지’의 바다를 상징하는 유화 작품 20여점, ‘나’의 바다를 상징하는 유화 작품 30여점 등 총 60여점이 전시된다. 회화와 미디어 등으로 구성된 전시 현장에는 김 작가의 뿌리인 전라도에 대한 따뜻함, 아픔, 그리움이 색과 질감으로 표현됐다.
김 작가는 그간 거친 바다를 주로 그려왔다. 실재하는 바다도 아니며 육안의 망막에 포착된 시각적 형태의 바다도 아니다. 그 바다는 심안(心眼)만이 다다를 수 있는 작가의 마음속 심상(心象)으로서의 바다다.
작가는 이를 대형 나이프 기법을 사용해 물감마다 가지고 있는 농도 차이로 생기는 다양한 질감으로 표현했다.
그가 펼쳐낸 작업은 ‘풍경’과 ‘비풍경’ 사이를 그리는 나이프의 시선으로 다가온다. 붓이 아닌 나이프 터치로 구현된 화면 위 두터운 물감은 전통적인 풍경화나 산수화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독특한 방식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렇게 완성된 회화는 ‘대상’의 재현이 아닌, ‘물자체’에 가까운 비대상성을 지향한다. 섬세한 묘사 도구인 붓 대신, 건축용 대형 나이프를 사용해 물감의 물성을 살리고 격정적인 흐름을 표현한 것이다. 화면 속 풍경은 생생하지만 실제로는 상상과 기억, 감각이 교차된 내면의 풍경이다.
더불어 유화 물감을 활용해 조형 요소와 조형 원리를 한껏 드러낸 ‘장주지몽’ 시리즈는 두텁고 생동하는 물감층으로 인해 리듬감이 두드러진다. 작가가 유년 시절 바라본 일상의 남도 바다가 성인이 되고 나서 한참 뒤에는 고향으로 인식되고 꿈이 된 것을 투영한다.
전시장 1층이 어두운 청색을 바탕으로 한 회화작들로 구성됐다면, 전시장 2층은 ‘치유의 바다’라는 테마로 강렬한 색보다는 편안한 질감·색감을 명상하듯 펼쳐낸 작품들로 채워졌다. “물감의 성질을 꿰뚫어 보는 게 강점”이라고 자신한 작가의 설명대로 작품마다 특색이 돋보인다.
“언젠가 고향에서 개인전을 하리라 마음먹었었어요. 은암미술관에서의 전시가 확정되면서 명절에 고향 가는 설렘으로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김 작가에게 이번 전시는 고향 광주에서 열리는 첫 개인전으로 의미가 남다르다. 1987년 관훈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 작가는 40여년을 줄기차게 작업해 왔다. 김 작가는 광주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다닌 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그는 졸업 후 서울에 거주하며 인천에서 교직생활 및 작가 활동을 겸직했다. 그간 몇 차례 광주에서 단체전을 가졌지만, 개인전을 통해 더 깊이 있는 작품세계를 선보이겠다는 열망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았고 이번 은암미술관의 초대가 그 결실로 다가온 셈이다.
김 작가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몇 년간 국민들은 정치·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 왔다. 이번 전시를 통해 꿈속의 남도 바다를 감상하며 관람객들이 ‘긍정적’ 장주지몽(莊周之夢)에 빠지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전시 ‘고향 가는 길’의 오프닝 행사는 개막일인 25일 오후 5시에 은암미술관에서 진행된다.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