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고은 개인전 ‘Cracks, Ripples, and What Not’이 열리고 있는 서울 영등포구 Hall 1 전경. 독자 제공 |
설고은 개인전 ‘Cracks, Ripples, and What Not’이 오는 24일까지 서울 영등포구 Hall 1에서 열린다. 2025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 지원사업 선정 프로젝트로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총 53점의 대형 드로잉과 17점의 신작 회화로 구성돼 전통적인 회화 감상 방식에서 벗어난 배치로 관람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드로잉들은 얇은 트레이싱지에 옅은 하늘색 선으로 구성된 작품들로 벽면에 수직으로 설치된다. 탈색된 듯한 옅은 회색조의 회화 작품들은 바닥의 현무암 블록 위에 설치돼 마치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배치는 전시 공간인 Hall 1 바닥에 실재하는 크랙과 회화의 표면이 서로 호응해 관객에게 회화 또한 하나의 흔적이나 잔해처럼 읽히는 경험을 유도한다.
설 작가는 지난해 9월부터 베니스, 서울, 광주 등 여러 도시에서 벽면의 균열, 도로의 틈, 부식된 페인트, 자연에 의한 침식 등 물리적으로 남겨진 흔적들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그의 작품들은 상실을 떠올리게 한 건물, 바닥, 돌, 나무 등 거리 곳곳의 흔적들을 사진으로 찍고 디지털 툴로 편집해 단순화한 뒤, 이를 각각의 ‘층(layer)’으로 만든 결과물이다. 출처와 모양이 다른 층들은 트레이싱지를 경유해 겹쳐져 하나의 화면이 됐고, 화면들은 다시 바닥과 벽을 점유하며 모종의 사건처럼 모였다.
설 작가가 지난 개인전에서 선보인 112점의 연작은 강박에 가까운 회상으로 기억을 붙잡으려는 시도였다면, 이번 전시는 지난 과정에서 느낀 무력함을 인정하고 상실이 남긴 흔적과 공존하려는 태도를 드러낸다. 작가는 “이번 전시는 한 개인의 역사에서 빛나는 순간이 지나가고 나서 삶은 어떻게 이어지는지, 우리는 지나쳐온 시간을 어떻게 회고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서부터 출발한다”고 전했다.
전시가 열리는 Hall 1의 관람 시간은 오후 12시부터 오후 7시까지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