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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창·하정호>교육은 자유다
하정호 광주광역시교육청 공무원
  • 입력 : 2025. 07.13(일) 16:17
인문학자 고병권과 한디디가 지난달에 데이비드 그레이버가 쓴 ‘해적 계몽주의’라는 책을 번역해 내놓았다.

볼테르, 흄, 로크, 몽테스키외와 같은 유럽 사상가들에 의해 촉발된 것으로 알고 있는 계몽주의가 사실은 해적들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대담한 주장을 담은 책이다.

저자인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아나키스트 활동가이면서 저명한 인류학자였다.

세계 금융위기 당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운동의 ‘우리가 99퍼센트다’라는 슬로건도 그가 만들었다.

이런 활동 탓인지 예일대학교의 종신교수 심사를 앞두고 계약 해지당했다. 그 즈음 우리나라의 대추리 미군기지반대운동 현장을 찾아오기도 했다.

‘해적 계몽주의’는 그가 59세로 생을 마감한 3년 뒤인 2023년에 출간된 그의 마지막 저서이다.

1989년과 1991년 사이 박사논문을 쓰면서 그레이버는 마다가스카르에서 현장연구를 했다.

그때 어느 여성과 연애를 하면서 캐리비안의 해적들이 18세기에 마다가스카르에 정착해 살았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해적의 후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처음 들었다.

그 후 많은 문헌 자료를 통해 그레이버가 알아낸 마다가스카르 해적의 역사는 이렇다.

18세기 해적의 황금시대에 카리브해와 인도양 사이를 누비던 일군의 해적들이 아프리카와 인도 사이에 있는 섬인 마다가스카르에 정착했다.

당시 유럽인들은 헨리 에이버리라는 선장이 만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마다가스카르에 왕국을 세웠다고 믿었다. ‘로빈슨 크루소’의 작가로 유명한 다니엘 디포가 그에 대한 책을 쓰기도 했다. 1723년에 존슨 선장(다니엘 디포의 필명으로 보기도 한다)이 쓴 ‘해적들의 일반 역사’에는 그곳이 왕국이 아니라 ‘리베르탈리아’라는 자유로운 공화국이었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그런 나라가 실제로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이런 것은 사실로 보인다.

선상반란을 일으켜 선장을 죽인 해적들은 서로가 동등한 관계에 있기를 원했다.

투표로 선장을 뽑았고, 때로는 여자들이 해적선의 선장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선장으로 뽑힌다고 해서 다른 해적보다 더 많은 권리를 누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전투를 할 때 지휘권을 가질 뿐이었다.

선장에 대항할 수 있는 선원들의 평의회도 있었고, 노획물은 성문화된 규약에 의해 분배되었다. 선장이라 해도 언제든 고기밥이 될 수 있는 처지라는 점에서는 평등했다. 해적들뿐만이 아니었다. 해적들이 정착했던 마다가스카르 원주민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해적들과 같이 살면서 피의 형제 맹세를 하고 배를 타고 함께 바다로 나갔다.

그레이버는 마다가스카르에서 일어난 급진적 정치실험을 ‘원형적-계몽주의’라고 불렀다. 이런 해적들이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적 통치(governance)의 발전을 선도했다고 본다.

유럽에서 일어난 계몽주의는 이것보다 훨씬 못한 아류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레이버의 주장이다. 해적 공화국의 이야기가 유럽의 살롱들에서 부풀려지면서 유럽인들도 해적의 삶을 동경하게 되었고, 평등한 새 세상의 꿈을 키워갈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이런 해적들의 평등사상에서 시작한 계몽주의가 유럽의 봉건질서를 무너뜨렸다. 하지만 그 뒤로 이어진 계몽주의의 역사는 침울하다. 세상에 밝은 빛을 주려고 병원과 학교, 공장을 짓고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자기 나라의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식민지 사람들도 착취하고 노예로 삼았다. 지금 이곳에서는 노동과 같은 공부에 시달리다 결국 자살에 이르는 학생들도 있다.

요즘 ‘협치활성화 기본계획’을 세우기 위해 표적집단면접(FGI)을 하며 마을교육공동체 활동가들을 만나다 들은 이야기이다.

시의회에서 미디어 교육 관련 토론회가 있었다.

한참 동안 미디어 교육을 강화해야 다고 했는데 한 고등학생이 이렇게 되물었다.

“저희를 위해서 이렇게 많은 교육을 하고 체계를 잡고 이렇게 진행해 주시는 것 같은데 어른들은 어떤 걸 배우나요?”

계몽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깨우치는 일이 아니라 자신과 이웃의 자유를 되찾게 하는 일이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자유(Freiheit)와 친구(Freund)는 어원이 같다. 인도유럽어족에서 ‘pri’는 사랑, 함께하는 기쁨을 뜻한다. 그레이버는 그런 점에서 자유가 서로에게 예속되지 않으면서 친구가 될 수 있는 관계에 기초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궁극적인 자유는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는 무엇이 될 수 있는지” 다시 질문하고 “우리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집단적으로 또는 개인적으로) 결정하는 자유”라고 말했다. 그 자유, 그것이 교육 아니겠는가. 우리는 학생들에게 더 많은 지식을 가르치려 하기보다, 무엇이 될 수 있는지 다시 질문하고 우리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교사와 학생은 그런 관계에서 친구가 되어 함께하는 기쁨을 누려야 한다. 가르치기보다 함께 배워가야 한다. 교육의 문제는 자유의 문제이다. 협치도 이렇게 서로가 자유로운 관계일 때 가능하다.